햇님다리를 조금 비켜 놓고 모기내 천변 큰길에는 장작과 솔단이 집채같이 재이었다.
황을 덤석 묻힌 긴채 관솔에 불을 붙여 군데군데 꽂아 놓으매, 검은 연기가 구름장 모양으로 뭉게뭉게 떠오르자, 그 밑에서 시뻘건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늘이 마침 팔월 한가위 신궁 앞 넓은 마당과 서울 거리거리에 구경거리가 덤북 벌어져서 사람들은 많이 빠져나갔건만, 그래도 이 참혹한 광경을 보려고 모여든 군정들은 천변 한길이 비좁도록 개미떼같이 덕시글덕시글하였다.
마른 나뭇가지가 타서 꺾이는 소리가 후닥툭닥 근처의 공기를 뒤흔들며 화르르 하고 타오르는 불길은 무명의 업화인 양 반공을 향하고 그 너불너불하는 어마어마한 혓바닥을 내어두를 제, 주만은 여러 하인들에게 옹위되어 그 장작더미 앞에 와서 섰다.
외동딸이 타죽는 모양을 차마 볼 수 없었음이리라, 유종과 사초부인은 그 자리에 모양을 나타내지 않았다.
유종은 사랑문을 겹겹이 잠그고 혼자서 방 안엘 왔다갔다하며 머리끝까지 치민 격분과 극통을 걷잡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 고이한 년, 에이 고이한 년, 내 딸이, 내 딸이!"
하고 이따금 힘줄이 우글쭈글한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사초부인은 남편을 끝끝내 속일 수 없어 이실직고는 하였으나 설마 딸이 잡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자기 잠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으니 지금쯤은 멀리 서라벌을 떠나 있을 터이고, 또 잡으러 간 사람들이 제 집에 부리는 하인들이니 기를 쓰고 잡으려 들 것 같지도 않아서 실상은 마음을 놓았다. 그래도 미심쩍어 털이를 보내기까지 하였으나, 간 곳을 모른다는 털이의 기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천만 뜻밖에 자기 딸이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기색하고 말았다. 얼마 만에야 겨우 깨어는 났으나 자리보전하고 누워서 헛소리만 하고 있었다.
불길이 웬만큼 타오르는 것을 보자, 주만은 천천히 불 앞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애구 아가씨, 애구 아가씨."
털이는 울며불며 질색을 하고 뒤에서 제 아가씨를 부둥켜안았다. 여러 하인들도 고개를 숙이었다.
"놓아라, 놓아라."
주만은 조용히 털이를 타일렀다.
"네 정은 고맙다만 질질 끌수록 나에게는 고통. 한시바삐 저 불 속으로 뛰어들어 모든 슬픔과 원한을 잊어버려야……."
"애구 아가씨! 애구 아가씨!"
털이는 더욱 제 아가씨의 허리를 단단히 부여잡으며 울며 부르짖었다.
주만은 털이에게 안긴 채 한동안 그린 듯이 서 있다가,
"대감님과 마님께 못 뵈옵고 간다고 사뢰어라. 그리고 내 죽은 뒤에 타고 남은 재가 있거든 그림자못 아사달님이 새기신 돌부처 발 아래 묻어 다고."
말을 마치기 전, 여러 사람이 악! 소리도 지를 겨를도 없이 주만은 불 속으로 나는 듯이 뛰어들었다.
"애구구!"
털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지며 울었다.
그때였다. 쏜살같이 말을 달려 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람은 말 위에서 그대로 껑충 몸을 날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다음 순간엔 벌써, 불덩이 다 된 주만의 몸을 들이쳐 업고 선뜩 땅에 내려서는 모양이 보이었다.
땅 위에서 번개같이 주만의 옷에 붙은 불을 손으로 비벼 끄는 듯하더니 주만을 업은 채 비호같이 달려가 버렸다.
모였던 군정들은 와글와글하였다.
"그게 누구야, 누구야."
옆사람의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이 별안간 나타난 용사의 근지를 알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동작은 너무 빠르고 또 검은 연기가 부근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람의 정체를 자세히 알아본 이는 없었다.
여럿의 시선이 말 닫는 곳으로 바라볼 때에는 벌써 그 사람의 모양은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 바람결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결같이 사라진 인물은 과연 누구이었던가.
"하늘이 구하신 게다, 하늘이 구하신 거야."
"아무리 법이 엄하기로 외동딸을 태워 죽이다니 말이 되나. 신명이 도우신 게지."
"어여쁜 그 얼굴과 의젓한 그 태도만 보아도 비명횡사할 이가 아니거든."
"뭘 제 고운 님이 와서 구해 간 게지."
"어쩌면 그렇게 대담하고 말을 잘 탈까."
"아무튼 예삿사람은 아니야."
모였던 군정들도 악착한 꼴만 구경을 할 줄 알았다가 뜻밖에 좋은 구경 한 가지를 덤으로 더 하게 된 데 매우 만족한 모양으로 제각기 떠들며 헤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