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58

아사달이 어제 나가 아니 들어왔다는 차돌의 대답에, 주만의 서 있는 자리는 지동이나 일어난 듯 술렁술렁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 너도 어디 가신지를 모른단 말이냐."
주만은 핑핑 내어둘리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채쳐 물었다.
"글녓시오. 가실 데는 별로 없으신 어른이라 일이 끝났으니 어디 서울 구경이나 나가신 줄 알고 고대 돌아오실까 하고 왼종일 기다려도 오시지를 안해요."
차돌의 대답도 모호하였다.
"그러면 부여로 가신 것 아니냐."
주만은 제 마음에 먹은 대로 쏘아보았다.
"연장과 행리도 안 챙기시고 길을 떠나실 수야 있겠습니까. 소승은 혹시 구슬아가씨 댁에나 들르셨나 하였지요."
제아무리 똑똑하고 영리하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이런 어림없는 수작이 또 어디 있을까. 그가 우리집을 찾을 수 있는 형편이라면 작히나 좋을까. 암만해도 혼자 발정을 한 게로구나. 내가 굳이굳이 따라가겠다고 하니까, 행장도 꾸리지 않고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길을 떠나 버린 게로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어제 올 것을. 당장 일이 탄로가 나서 곧 잡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얼굴이나마 한번 더 보았을 것을! 주만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방문 밖에서 문지기의 소리가 났다.
"구슬아가씨 여기 계십니까. 아사달님이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지요."
주만은 귀가 번쩍 뜨였다. 펄쩍 방문을 열고,
"그럼 대사는 아사달님의 간 곳을 아시오."
"녜, 대강 짐작은 합니다마는 아까 들어오실 때에도 그 말씀을 여쭈려니까, 하도 빨리 가셔서 소승의 부르는 소리도 못 들으시는 듯합니다. 그렇게 급하십시오, 허허."
남은 속이 졸여서 죽겠는데, 문지기는 능글능글하게 웃는다.
"아사달님이 어디로 가셨소. 빨리 말을 하오."
주만은 초조한 듯이 서둘렀다.
"그 어른 간 데는 소승밖에 아는 이가 없지요."
문지기는 주만의 앞에서는 아사달을 깍듯이 위해 올렸다.
"불국사에 승려가 수백 명이 들끓지만 사람 들고 나는 거야 아는 놈이 누가 있단 말입니까. 첫째 그 어른을 모시고 있다는 이 차돌이란 놈도 그 어른의 가신 곳을 모르니……."
문지기는 쓸데없는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 어디를 가셨소. 얼른 일러주오."
"글쎄올시다. 그것 일러드리기야 어렵지 않지만, 소승은 그 어른 때문에 까닭 없는 말까지 듣고…… 또 이번에 그 어른 간 곳을 일러드렸다가……."
하고 매우 난처한 듯이 주저주저하며 그 뻔뻔한 머리를 긁적긁적한다.
주만은 문지기의 뜻을 알아차렸다. 재빠르게 황금 가락지를 빼어 넌지시 손에 쥐어 주었다.
"녜, 녜, 이건 너무 황감합니다. 일러드리고말곱시오. 저 그 어른은 그림자못으로 가셨습니다."
"그림자못? 그림자못엔 왜 가셨을까."
"그 까닭은 소승도 잘 모릅니다."
문지기는 아사달의 아내가 찾아왔다가 그 못에 빠져 죽었단 말은 차마 하기 어려웠다.
"어제 아침, 새벽같이 웬 늙은 여편네가 들어닥치더니 다짜고짜로 그 어른을 모시고 갔는데, 곁에서 듣자 하니 그림자못으로 가는 듯합디다."
"그러면 대사가 그 못을 잘 아시겠구려. 같이 좀 가주실 수 없을까."
"소승이 모시고 가도 좋지만 저 차돌이란 놈도 길을 잘 압니다. 저 애를 데리고 가시지요."
문지기는 딱장대 콩콩이를 또 만날까 겁이 나서 꽁무니를 빼었다.
주만은 차돌을 재촉하여 부랴부랴 그림자못으로 달리었다.
못가가 워낙 휘넓어서 한눈 안에 거둘 수도 없거니와, 샐녘과 아침의 어림을 뒤덮는 젖빛 안개가 뽀얗게 끼어 얼른 아사달의 모양이 띄지 않았다.
"어디 여기 계신가."
주만은 차돌을 돌아보았다.
차돌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더니,
"저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천연 아사달님이 돌을 쪼으시던 소리 같군요."
주만은 걸음을 멈추자, 고요한 공기를 흔드는 귀에 익은 그 소리를 몰라들을 리 없었다. 소리나는 곳으로 쫓아 들어가매, 저만큼 못둑 아래 헤실헤실한 안개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릿거리는 것이 보이었다.
주만은 죽었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그는 진둥한둥 뛰어갔다. 몇 걸음 남겨 놓지 않고 소리를 쳤다.
"아사달님! 아사달님!"
꽤 크게 지른 소리었건만, 아사달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주만도 나는 듯이 못둑 밑까지 내려와서 아사달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거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아사달님, 아사달님!"
또 한번 불렀건만, 아사달은 들은 척도 않고 정과 마치만 번개같이 놀리었다.
차돌은 아사달과 주만의 만나는 양을 먼빛으로 바라보자 살그머니 제 갈 데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