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돋을 녘부터 시작된 아사달의 헤매는 발길은 해가 떨어져도 멈출 줄 몰랐다.
거의 십 리나 되는 못 둘레를 쉬임없이 끊임없이 돌고 또 돌았다. 노정으로 따져 보면 칠팔십 리도 넘으련만 그는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온종일 고스란히 굶었으되 시장한 줄도 몰랐다. 뽀얀 입에 물 한 모금 들어가지 않았지만 목마른 줄도 몰랐다.
이편 둑에 와보면 저편 둑 우거진 풀잎들이 흔들흔들 흔들리는 것이 궁금하였다. 앞변죽으로 돌아 보면 뒷변죽의 어름어름하는 소나무 그림자가 수상하였다.
이쪽 못 기슭에서 물결이 출렁 하고 보라를 날리며 무엇이 솟구쳐 오른 듯하여 줄달음을 치면 저 멀리 희떡버떡 옷자락 같은 것이 떠내려간 것만 같았다.
밤이 되었다.
한가위 무렵의 밝은 달이 어젯밤과 같이 떠올랐다.
아무리 밝아도 달빛은 꿈결 같다.
한 바퀴, 두 바퀴! 아사달의 소매에 촉촉히 이슬이 내렸다.
그의 발길은 휘청거린다.
그의 눈길도 휘청거린다.
사르락사르락 치마 끄는 소리가 분명 등뒤에서 났다.
그가 고개를 돌릴 겨를도 없이 게 있을 아사녀가 안개 자락 모양으로 사라지기는 사라졌으되 그 사라진 자취가 아리숭아리숭 남은 듯하다.
"아사녀!"
아사달은 소리를 내어 가만히 불러 보았다.
"내 예 있어요, 이게 보이지 않아요, 이게."
하면서 아사녀는 자기 가까운 그 어디서 손을 내저어 보일 것만 같다. 숨소리를 죽이고 풀 속에 숨었을 것만 같다. 나무 뒤에 붙어섰는지도 모른다.
"아사녀, 아사녀!"
아사달은 또 한번 불러 보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물꽃 사이로 아사녀가 상그레 웃는 얼굴을 나타낸 듯싶었다.
"아사녀, 아사녀."
허둥지둥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한 줄기 투명체 같은 아사녀는 쭈르르 물 위를 얼음 지치듯 하여 저 건너 능수버들의 늘어진 가지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완연히 물 위에 아사녀의 발자국이 남은 양, 물결은 그 자국대로 패인 자리를 메우려는 것처럼 찰랑찰랑 굽이를 치는데, 그 늘어진 버들가지는 사람을 숨기느라고 휘영휘영한다.
"아사녀, 아사녀!"
아사달은 열 번도 스무 번도 더 가본 거기를 쫓아가기에는 지친 듯이 건너다보고만 불렀다.
아니나다를까!
"나 예 있어요."
나직한 목소리가 실바람을 타고 건너온 순간, 아사녀는 그 버드나무 밑둥을 기대고 뚜렷이 안타까운 모양을 나타내었다.
그, 고개를 다소곳하고 있는 양이 마치 그들이 마지막으로 작별할 적, 슬쩍 눈길만 오고 간 그때 그 모양과 꼭 같았다. 그러고 저 수양버들도 갈 데 없이 자기네 집 들어가는 모퉁이 개울가에 서 있는 그 수양버들과 같았다.
아사달은 지금까지 들고 다니던 마치와 정을 허리춤에 꽂고 그 수양버들을 향해 줄달음질을 쳤다.
막상 그 늘어진 가지를 휘어잡았을 제엔 누렁누렁해진 그 좁다란 잎사귀를 뚫고 달빛만 유난스럽게 아사달의 눈시울 속으로 기어든다.
"난 예 있는데, 왜 거길 가셔요."
눈을 돌리자, 아사녀는 바로 물가에 외로이 서서 아사달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 얼굴찌는 자기가 아사녀의 얼굴을 보던 가운데 가장 의젓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거룩하였다.
이번에야말로 영절스럽게 나타난 이 얼굴을 또 놓칠까 두려워하며 가만가만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다가들어갔다.
이번이란 이번이야말로 아사녀도 그린 듯이 서 있을 뿐,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두 간! 한 간! 그들의 동안은 좁아들었다.
'인제야!'
하고 아사달은 아사녀를 덥석 부둥켜안았다.
그 순간! 아사달의 불같이 뜨거운 뺨에는 차고 단단한 무엇이 선뜻하고 부딪쳤다.
그것은 돌이었다! 몸집과 키가 천연 아사녀만한 돌이었다.
한때의 환각(幻覺)은 깨어졌지만 한번 머릿속 깊이 새겨진 아사녀의 환영은 지워질 까닭이 없었다.
아사달의 눈에는 그 돌에 아사녀의 모습이 그리기나 한 듯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아사달은 허리춤에 꽂았던 마치와 정을 빼어 들었다.
그는 방장 나타난 제 아내의 환영을 그대로 그 돌에 새기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