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53

아사달은 그림자못에 다다랐다.
한참 만에야 뒤쫓아온 콩콩이가 행길에서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은 곳, 가을풀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곳을 가리키며,
"여기요, 바로 이 어림이오. 잡고 가던 내 손을 홱 뿌리치고 몸을 던지기는, 킁킁. 그래 내가 기급절사를 하며 허방지방 뛰어들어 그 치마 뒷자락을 움켜잡으려 했으나 내가 손이 미처 닿기 전에 그의 몸은 벌써 떨어져 풍덩 하는 물소리가 들리었소. 하마터면 이 늙은것까지 휩쓸려 들어가 수중고혼을 지을 뻔하였다오. 에구 원통해라. 에구 불쌍해라. 나는 못둑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가로 뛰며 모로 뛰며 사람 살리오, 소리소리 질렀지만, 이 호젓한 산골에 어느 뉘 하나 대꾸나 해주어야지, 킁 킁."
콩콩이는 그때 광경을 수다 늘어놓다가 흉격이 막힌다는 듯이 잠깐 말을 끊었다.
"미친년 본으로 날뛰다가 집으로 올라가서 그 없는 돈을 있는 대로 툭툭 털어 내어 군정을 사가지고 횃불에 관솔불에 초롱불에 저마다 들리고 밤새도록 시체나마 찾아보았으나 킁 킁, 어디 떠오르기나 해야지. 일찍이만 건져 내었으면 그래도 살려 볼까 하고 그 애를 썼지마는 하늘도 무심하고 귀신도 야속하지."
하고 콩콩이는 못둑에 펄쩍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치고 엉엉 목을 놓아 운다.
기실 콩콩이는 아사녀가 물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제 집을 향해 소리를 쳐서 그 '대감'의 구종들을 불러 가지고 건져 보려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제 손아귀에 쥐었던 큰돈 생길 보옥을 놓친 것이라 그도 애절복통을 하며 서둘렀으나 휘넓고 깊은 못 속에 한번 떨어진 아사녀를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골이 머리끝까지 오른 판에 또 그 '대감'에게는 톡톡히 꾸중을 모시었다.
"그것 보아, 어디 사람이 없어서 하필 사내 있는 계집을 거천을 한단 말이야. 어, 악착한 일이로군. 이훌랑은 내 집에 발그림자도 말어."
'대감'은 매우 역정이 나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천하절색이라고 입에 침이 없이 칭찬받던 계집을 한번 보지도 못한 것이 앵하기도 하려니와, 점잖은 체모에 하인 소시에 오입을 왔다가 이런 망신이 또다시 없었던 것이리라.
콩콩이야말로 꿩 잃고 매 잃은 격이 되었다. 크게 먹을 줄 알았던 것이 틀린 것도 원통하거든, 제 단골 '대감'의 노여움까지 사게 되었으니 장래의 밥자리조차 하나를 잃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색골 대감이 퉁퉁 부어서 장히 못마땅한 듯이 술잔이나 얼근해진 구종들을 호령호령하여 부랴부랴 수레를 타고 돌아간 뒤에, 홀로 남은 콩콩이는 분이 턱밑까지 치밀어올랐다.
"방정맞은 년, 배라먹을 년."
수없이 아사녀에게 욕을 퍼부었다.
"어쩌면 남을 요렇게 망쳐 주어, 망할 년, 매친 년."
제 먹을 반찬도 안 먹고, 배를 따고라도 넣다시피 한 것이 치가 떨리었다. 더구나 말짱한 비단옷 한 벌을 결딴낸 것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하늘이 아득하였다.
"계집년이 고렇게 얌치가 없어. 인정머리가 없어."
콩콩이는 뇌고 또 뇌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을 아무리 욕지거리를 한들 쓸데가 무엇이랴.
내일 훤하기만 하면 세상없어도 그 시체를 건져 내어 뺨이라도 한번 치고 그 값진 옷을 벗기리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미 다 휘질러 놓고 게다가 송장에게 감겼던 옷을 벗겨 낸다 한들 그리 신통할 것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오장육부가 있는 대로 썩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날밤을 고스란히 밝히다가, 생각 생각 끝에 아사녀에게 남편이 있다던 것이 언뜻 머리에 떠올랐다.
"옳지, 옳거니, 참 그년에게 사내가 있구나."
누웠던 콩콩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석수장이라도 우습게 알 것이 아니다. 부여라는 그 먼 두메에서 뽑혀 오고, 탑을 둘씩이나 혼자 맡아 지을 적엔, 상당한 석수일 것이고 그 상금도 적지 아니할 것이다.
"옳다, 그놈에게 물러 받자."
그놈이 무슨 까닭으로 멀리 찾아온 제 계집을 따고 안 만났는지 모르지만, 제 계집이 진 밥값, 옷값을 안 내고는 못 배길 것이다.
"어디, 이놈 안 내었단 봐라."
콩콩이는 마치 아사달을 대한 듯이 벼르고 뽐내었다.
그래서 날 밝기가 무섭게 콩콩이는 마치 성난 뱀이 지나가듯 쐐 하고 길을 쓸며 불국사로 뛰어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