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아기님을 어떻게 할까."
아사달은 이 문제에 부닥뜨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자기는 어엿이 아내 있는 사람이라고 차마 하기 어려운 말까지 떡먹듯이 타일렀건만 회오리바람 같은 그의 정열 앞에는 아내가 있고 없는 것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걸맞는 자리로 시집을 가라고 그렇듯 권하고 달래었건만 종시 들은 체도 아니하고, 여제자라도 되어지이다 하는 간절한 청을 물리치려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딱하기만 하였다.
주만의 신변에 위험이 각각으로 절박해지는 것은 그 눈치만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하루바삐 서라벌을 떠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양이었다. 금성이 사단만 생각해도 아슬아슬했다. 만일 그 자리에 주만이가 있기만 하였더라면 일은 더 크게 벌어졌을 것 아니냐.
내일로라도 길을 떠나야 되겠는데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주만의 사정이 그러할 줄 번연히 알면서 떼치고 갈 수야 있느냐. 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발정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야멸차고 몰인정한 것이었다.
'인정은 고만두더라도 이제 너는 주만이 없이 살 줄 아느냐.'
마음속 어디선지 소리소리 외치는 듯도 하였다.
데리고 간다면 아내를 어떻게 대할까. 삼 년이나 두고 그리고 그리던 그에게 선물로 '계집'을 갖다 준다는 것은 너무도 무참한 짓이 아니냐. 그 곡하고 부드러운 창자가 고대로 찢어지지 않을까.
남편이 대공을 이루라고 그 차마 못 할 애끊는 이별의 슬픔도 지긋이 견디고 지금쯤은 밤으로 낮으로 남편 돌아오기만 고대고대할 것이 아닌가. 벌써부터 조석으로 내 밥까지 떠놓는지 모르리라. 밤중에 사립문 소리만 삐걱하여도 그 참새 같은 조그마한 가슴을 두근거리는지 모르리라.
이런 아내에게 '시앗'을 보이다니 그것은 너무 악착한 노릇이었다.
'주만이가 어디 너의 첩이냐. 어디까지 순결한 두 사이가 아니냐. 그는 참다운 너의 여제자가 아니냐.'
그는 그러하지마는 이런 줄을 누가 곧이들을 것이냐. 설령 아사녀는 남편의 말이라 그대로 믿어 준다 하더라도 늙으신 스승부터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말썽꾼이 여러 제자들과 동네 사람들이 뒷손가락질을 할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아사녀의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주만의 처지도 비참해질 것 아니냐.
쓸쓸한 나그네의 사막에 주만은 오직 한 송이 꽃이었다. 병들어 누운 몸에 내민 그의 구호의 손은 따뜻하고 곰살궂었다. 지리하고 어려운 공사도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흥을 자아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동정자, 연연한 두호인! 이 공을 생각한들 그의 원을 아니 들어줄 수가 있느냐. 그는 그 좋은 지체도 버리고, 호강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이 나를 따르려 하지 않느냐.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노릇.
생각에 잦아진 아사달의 발길은 다보탑 가까이 다다랐다.
운명적인 사월 파일 밤 일이 선뜻 머리에 떠올랐다.
주만의 모양을 어림없이 아내의 환영으로 속던 기억이 뚜렷이 살아났다. 흑 하고 그의 앞으로 넘어질 듯하던 열에 뜨인 제 자신을 생각하고 아사달은 어이없이 웃었다.
스승과 아내를 위해 발원을 올린 것이 주만과 만나게 되는 첫 기회가 될 줄이야. 그 밤에 만일 탑돌기를 않았던들 주만과 그는 영원히 만날 까닭이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 와서 이런 고민의 씨를 장만하지 않았을 것을.
달이 기울고 밤이 이슥한 연후에야 생각에 지친 아사달은 제 처소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운 뒤에도 흥분된 신경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샐녘에야 눈을 붙였다가 동창이 훤한 것을 보자 곧 이불을 걷어치고 일어났다.
그는 정과 마치만 들고 다시 일자리로 올라갔다. 세상없어도 오늘로 길을 떠나야겠는데 어젯밤에 마지막 손은 떼기는 하였지마는 그래도 미진한 데가 없지 않은가 하여 밝은 날 다시 한번 둘러보려는 것이었다.
탑은 이슬에 촉촉히 젖어서 새로운 정 자리가 더욱 깨끗해 보이었다.
아사달은 이모저모를 뜯어보고 훑어보았으나 손댈 데가 다시는 없는 듯하였다.
그는 어젯밤에 맛본 감격과 만족을 또 한번 느끼었다.
이만하면 오늘 길을 떠난대도 공사에 관해서는 마음에 남는 것이 없었다.
행장이라도 꾸려 두려고 막 제 처소로 돌아가려 할 제 왁자지껄하는 인기척이 이리로 향해 올라온다.
그것은 콩콩이가 문지기를 끌고 아사달을 찾아 올라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