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46

경신에게까지 알렸다는 말에 사초부인은 더욱 아니 놀랄 수 없었다. 정작 장래 사윗감이 이 사연을 안 다음에야 다시 어찌할 도리가 나서지 않았다.
"원 방정맞기도 해라. 그런 소리를 무슨 짝으로 그 사람에게 한단 말이냐, 후."
사초부인은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그 사람이 네 은인이 된다는 건 또 어찌 된 까닭이냐."
"그 못된 금지의 아들 금성이가 무뢰지배 수십 명을 끌고 아사달님을 들이쳤을 때 마침 경신님이 불국사에 계시다가 그 여러 군정을 한 칼로 쫓아 버리고 아사달님을 구해 내었으니 저의 은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석수장이를 구해 내었다는 신장이 바로 경신이었구나."
"그래요, 그러니 어찌 그런 이를 속일 수 있습니까. 초행을 왔다가 신부가 없으면 장가온 신랑에게 그런 망신이 또 있겠습니까. 그래 그이에게 파혼을 해달라고 청을 했지요."
"파혼을 해달라고."
사초부인의 말낱은 물에 빠지는 사람 모양으로 허전거리었다.
"그분의 말씀이 지금 와서 파혼을 한다면 두 집안이 창피만 할 테고 더구나 아버지께서 슬퍼하실 테니 자기 혼자만 알고 있겠노라고 하셔요."
"그것 봐라, 좀 점잖은 말이냐. 그런 훌륭한 남자는 이 세상에 둘도 쉽지 않을 것 아니냐.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너의 복이거늘 어찌해서 제 앞에 오는 복을 차버리고 천야만야한 구렁텅이에 떨어지려 든단 말이냐."
"저는 그런 복을 누릴 자격이 못 되는 걸 어떡합니까."
주만의 대답도 구슬픈 가락을 띠었다.
"그렇듯 바다같이 넓은 요량을 가진 그 사람이니 사정을 자세히만 얘기한다면 못 알아들을 리도 없지 않으냐. 한때 마음이 잘못 들어간 것을 그 사람이 굳이 책하지도 않을 것 아니냐. 웬만한 사내가 그런 소리를 들었으면 펄펄 뛰고 그 자리에서 파혼을 해버릴 것이로되 그 사람은 끝끝내 너를 두호하려 드니 그것만 보아도 너희 둘이야말로 하늘이 내신 배필. 전생의 연분도 지중한 탓이니 두말 말고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다오. 늙으신 아버지와 이 어미를 보더라도 어연듯이 그 사람과 부부가 되어 다오."
사초부인은 비대발괄하다시피 또다시 딸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그야 그런 말까지 벌써 하였으니 부끄럽기야 하겠지, 겸연쩍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 하루 이틀 지나고 보면 그런 흉허물은 곧 잊어버리게 되느니라."
"그렇게 너그러우시고 의젓하시니 경신님이야 저를 용서해 주실지 모르지요. 눈 딱 감으시고 초행을 오실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마음은 단 하나뿐. 한번 마음의 남편을 모신 다음에야 다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 애는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내일이라도 아버지께서 아시기만 하면!"
하고 사초부인은 차마 말끝을 맺지 못한다.
"어머니, 어머니, 무서운 운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줄 저도 모르지 않아요. 그렇지만 닥쳐오는 운명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맞닥뜨려 부서지면 부서졌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마는, 어머니, 이틀만 참아 주실 수 없으실까……."
"이틀만 참아 달라는 것은 또 무슨 뜻이냐."
"이틀 지난 뒤에 아버지께 이 사연을 알려 드리시지 못하실까."
"어젯밤에도 그렇게 역정을 내시고 너를 찾으셨는데 오늘 날 새기가 무섭게 곧 너를 찾으실걸. 어떻게 아니 알리고 배길 수 있느냐."
"그래도 어머니, 이틀만 미뤄 주시지 못할까요."
"그 이틀 동안에 어떻게 할 작정이냐."
주만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오늘이고 내일 안으로 저희들은 서라벌을 떠나게 되어요. 그 안에 이 일만 탄로가 아니 되면……."
"안 된다, 안 된다, 너희가 어디로 달아난다 해도 곧 잡혀 올 것 아니냐."
사초부인은 무서운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탑 공사가 어젯밤에야 끝이 났답니다. 그러면 오늘이나 내일은 발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틀만 참아 주시면 저희 둘의 목숨은 살아날 것 아닙니까."
"정 네 뜻을 굽힐 수 없다면!"
사초부인은 다시금 눈물을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