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처녀의 순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말에 사초부인은 새 기운을 얻었다.
"아가, 구슬아가, 이 어미 말을 듣거라. 듣자하니 그 사람은 아내 있는 사람, 네 아무리 철부지라 한들 남의 첩 노릇이야 못 할 것은 적이 생각만 해도 알 것이 아니냐. 네 생각에 그 사람의 여제자가 되면 고만이라 하지마는 남 보기에야 어디 그러냐. 그러니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말, 누가 들어도 웃을 말, 몸도 허락지 않은 그 사람 탓으로 네 신세를 망칠 까닭이 무에냐……."
"몸은 허락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허락한 것을……."
주만은 울어서 부은 눈을 비비었다.
"그 마음이란 잠시 잠깐 빗들어간 마음, 다시 바로잡기만 하면 고만 아니냐, 응 아가."
사초부인은 자상스럽게 딸을 달래기에 곱이 끼었다.
"마음을 바로잡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아직도 근 열흘 남았으니 그런 일을랑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겨 버리고 시집만 가고 보면 백 허물 천 흉이 다 묻힐 것 아니냐. 경신은 너도 보다시피 훌륭한 신랑감. 그의 어엿한 아내가 될작시면 네 장래도 좋으려니와 고단한 우리 집안도 든든해질 것 아니냐, 응 아가. 그래도 마음을 돌리지 못하겠느냐."
"그러면 저도 좋을 줄 알아요. 그렇지마는……."
"그렇지마는 다 무에냐. 의당히 그렇게 해야 내 딸이지."
어머니는 딸이 자기의 말에 솔깃한 줄로만 알고 더욱 반색을 하며 다시 두말이 없도록 누르고 어루만지었다.
주만은 부숭부숭 부은 눈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건 안 돼요. 몸은 비록 더럽히지 않았지만 마음은 벌써 그이에게 바친 것. 한번 바친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야. 동에서 뜨는 해가 서에서 뜬다 해도 그것은 안 될 말씀. 딴사람에게 바친 마음을 부둥켜안고 어찌 남의 어엿한 아내가 된단 말씀입니까. 그것은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
"그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러면 경신이가 네 마음에는 들지 않는단 말이냐."
"경신님이야 이 세상에 드물게 뵙는 훌륭한 남자. 저에게는 오히려 과분한 남편감인 줄 모르는 바 아니지마는 저는 이미 작정된 몸. 가득 찬 이 마음에는 다시 다른 남자의 그림자를 들일래야 들일 수 없습니다. 녜, 어머니, 이 불효의 딸년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구구한 뜻을 이뤄 주십시오."
"그러면 금시중의 꾀에 떨어져 우리 집안은 아주 망하고 만단 말이냐."
"금시중의 꾀라니요."
금시중이라는 말에 주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참 내가 너에게 그 말을 안 했구나."
하고 사초부인은 금지가 상주까지 한 것과 길거리에서 유종을 붙들고 실랑이하던 이야기를 저저이 옮기었다.
'경신님의 말이 옳구나. 고 악독한 금지가 필경은 그 독한 혓바닥을 놀리고야 말았구나.'
주만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하였다.
"그러니 말이다, 네가 끝끝내 고집을 세우고 보면 그 못된 금시중의 술중에 떨어지는 것 아니냐. 세상에 이런 절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이 원수를 갚는 데는 오직 한 가지 길. 예봐란 듯이 네가 경신에게 시집만 가면 제아무리 악독한들 다시 우리를 해치려도 해칠 수 없을 것 아니냐."
사초부인은 딸이 분해서 부들부들 치를 떠는 것을 보고 다시 달래어 보았다.
"이 밤이 밝으면 아버지는 다시 너를 찾으실 것. 여전히 네가 고집을 세운다면 금시중의 소원대로 너는 불에 타 죽는 목숨이 아니냐. 너의 아버지 성미에 외동자식 아니라 반쪽자식이라도 고법을 아니 굽히실 것 아니냐."
주만은 흡뜬 눈으로 한동안 허공을 노리고 있었다. 금지의 부자가 제 눈앞에 서 있기나 한 것처럼.
"너는 생목숨이 끊어지고 우리 집안은 아주 쑥밭이 될 것. 그래도 너는 생각을 못 돌리겠단 말이냐. 그래도 고집을 세우겠단 말이냐."
주만은 헐헐 느끼는 소리를 떨었다.
"지원극통한 일이긴 합니다마는 인제 와서는 다시 어찌할 도리도 없는 노릇. 이 몸이 연기로 사라져도 이 뜻은 변할래야 변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경신님과는 혼인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이는 저와 아사달의 관계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니……."
"응, 경신이도 그 일을 알다니."
사초부인은 얼굴빛을 변하였다.
"저번 올라오셨을 적에 제가 저저이 일러드렸습니다. 그이는 저의 은인, 어떻게 은인을 속이고 불순한 마음으로 시집을 갈 수가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