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42

유종은 물론 금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불국사 사단이니, 석수장이니, 장래 아내의 서방이니, 실행한 처녀는 불에 태워 죽이는 법이니, 하는 것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요, 괴이한 수수께끼 같았으나, 그 모질고 독한 말씨가 납덩이처럼 그의 귀 밑바닥에 꺼림칙하게 처지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로 아무튼 주만을 불러 물어는 보려 하였으나 마침 손들도 있고 해서 저녁밥을 먹은 다음에야 안으로 들어왔다.
사초부인은 남편의 불쾌한 안색을 보고 놀라는 빛으로,
"신관이 갑자기 틀리셨으니 어디 편치나 않으시온지."
"아니오, 뭐 불편한 데는 없지마는 좀 상심되는 일이 있어서 그러한가 보오."
"무슨 상심되는 일이 있사온지."
유종은 조정에서 일어난 일은 한마디라도 집안에 와서 이렁성거리는 성미가 아니었으나 오늘 일은 딸에 관한 일이라 간단하게 금지의 아뢰던 말과, 길거리에서 자기를 잡고 이러쿵저러쿵 변죽을 울리던 이야기를 일러 듣기었다.
"망측도 해라. 그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예요. 거혼당한 앙심으로 지어낸 것이겠지만 어쩌면 남의 천금 같은 귀한 딸에게 그런 음해를 뒤집어씌운단 말씀예요. 어규 분해라."
사초부인은 대번에 소름이 끼치고 위아랫니빨이 딱딱 마주치었다.
"제가 아무리 악독한 마음을 품고 우리를 해치려 하지마는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없는 다음에야 무슨 계관이 있겠소마는……."
"없고말고, 원, 세상에 그런, 그런 고약한 소리가……."
하고 사초부인은 흉격이 막히는 듯이 말끝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 마누라도 그럴싸한 소문도 듣지 못했단 말이오."
"소문이 무슨 소문입니까. 그런 입길에도 못 올릴 소리를……."
"불국사 사단이라 하니 불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왜 마누라는 아들 발원한다고 이따금 불국사엘 가지 않소."
하고 유종은 조롱하는 듯이 자기보다 훨씬 젊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전에는 더러 갔지마는 요새는 그 애 혼사 때문에 어디 몸 뺄 틈이나 있어야지요."
"그럼 그게 다 무슨 종작없는 소리일까!"
사초부인은 이윽히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참 얼마 전에 불국사에서 이런 일은 있었대요. 그때 내가 대감께 그런 얘기를 안 했던가."
"무슨 일이오? 나는 얘기를 들은 법도 않은데."
"다른 게 아니라 왜 불국사에 석가탑을 모시는 석수장이가 있지 않아요."
"옳지, 석수장이!"
하고 유종은 무엇이 마음에 마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무릎을 일으켜세운다.
"참 대감께서도 보셨겠구먼. 왜 사월 파일날 불국사 거둥을 하셨을 때 상감께서 불러 보시기까지 하셨지."
"그래 그 석수장이가 어떻게 되었단 말이오."
유종의 묻는 말씨는 매우 급하였다.
"하루 밤에 그 석수가 골똘히 일을 하고 있노라니 웬 사람들인지 수십 명이 들이쳐서 그 사람을 탑 위에서 끌어내려 가지고 못 당할 욕을 보이려 할 제 난데없는 신장 두 분이 나타나서 서리 같은 칼을 휘둘러 여러 군정들을 쫓아 버리고 그 중에 우두머리 가는 사람을 개 꾸짖듯 하고 그 석수 앞에 꿇어앉히고 백배사례를 시킨 일이 있었는데요, 말인즉은 그 탑이 영검이 무서워서 그 짓는 이를 부처님께서 두호를 해주신 것이라고들 합디다."
"신장이 나타나다니 어디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야 모르지요. 하인들이 종작없이 지껄이는 소리를 나도 들은 것이니까요."
"신장이 나타나고 아니 나타난 거야 우리의 알 바가 아니지만 그 불국사 사단이 우리 구슬아기에게 무슨 계관이 있단 말인고."
"아기한테야 무슨 계관이 있겠어요."
"대관절 그 여러 사람들은 무슨 원혐으로 그 석수장이를 들이쳤을까."
"글쎄요, 그 까닭은 자세히 알 수 없지요."
"아무튼 구슬아기를 좀 불러다가 물어 볼까."
"물어 보시기는 무엇을 물어 보셔요. 그런 해괴한 소리를 어떻게 점잖은 딸에게……."
"좌우간 좀 불러 오구려. 보고도 싶으니."
사초부인은 계집애 종 하나를 시켜 딸을 부르러 보내었다.
얼마 만에 그 계집애 종이 돌아와서 밖에서, "마님, 마님" 하고 사초부인을 불러 내었다.
"아가씨가 계시지 않는뎁시오."
"털이년도 없느냐."
"털이년도 어디를 갔는지 없는뎁시오."
"응!"
하고 유종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