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말씨는 갈수록 망상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분하고 악이 났던지 제 지체와 체모도 돌아보지 않는 듯하였다. 평일에 억지로 지어서나마 빼던 점잖은 가락조차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었다.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독한 칼날이 쟁그렁쟁그렁 소리를 내는 듯하였다.
불국사에서 경신에게 혼뗌을 한 금성은 분풀이를 할 궁리를 생각다가 못한 끝에 앞뒤 사연을 제 아비에게 꼬아바치고 말았다. 제 쪽에서 수십 명이 떼를 지어 지쳐 들어갔다가 경신과 용돌 단 두 사람에게 혼비백산하였거늘 제 아비 앞이라도 창피하였던지 그 사실만은 슬쩍 뒤집어 꾸미어 제가 수많은 경신의 패에 붙들리어 죽을 변을 당하였다고 호소하였다.
유종에게 혼인 거절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릴 노릇이거늘 그 소위 사윗감으로 작정한 위인에게 제 자식이 봉변까지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보매 금지는 온몸에 독이 올라서 어젯밤은 잠 한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밝히었던 것이다.
유종 부녀와 경신 형제를 갈아 마시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갖은 흉계를 궁리궁리하며 손톱 여물을 썰다가 조회가 거의 끝날 때쯤 되어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필경 그런 상주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왕께서 이내 파조해 버리신 탓으로 그 한독한 상주도 아무 보람이 없게 되었다. 도리어 제게 적지 않은 망신이 되고 말았다.
사람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맞은 독사처럼 치밀리는 독기를 걷잡을 수 없어 유종을 노상에서 붙들고 직접 독설을 놀려 본 것이었다.
"등하불명이라니 그건 또 어떻게 하는 말이오."
유종의 불쾌한 얼굴에도 살기가 등등해졌다.
"그렇게 자자한 소문을 이손만 못 듣다니 될 말이오. 이손 댁에서 난 일을 이손이 모르니 등하불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내 집에서 생긴 일? 그건 또 무슨 괴이한 말인고."
하고 유종은 소매를 떨치고 수레에 오르고 말았다. 만일 금지의 말을 더 듣고 있다가는 한길가에서 무슨 거조가 날지 자기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마하마 칼집으로 손이 가는 것을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던 것이다.
"이손도 잘 생각하였소. 어서 댁에나 가서 물어 보구려, 허허."
금지는 싸늘하게 웃으며 제 수레로 가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참 이손, 사윗감은 썩 잘 고르셨더군. 무뢰배들과 몰려다니며 아닌밤중에 문문한 절간이나 엄습해서 토식이나 하고 제 장래 계집의 서방을 알뜰살뜰히 두둔을 하니. 원 세상에 할 게 없는 놈, 어허허."
금지의 꼴같지 않은 큰 웃음 소리가 마치 독 묻은 살촉과 같이 유종의 귀에 와서 들이박히었다.
수레에 오른 뒤에도 유종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었다. 금지에 대한 미운 생각으로 그 늙은 살도 떨리는 것이었다.
"될 말인가, 될 말인가."
유종은 혼자 중얼거리었다.
제가 아무리 우리 부녀를 모함하려 한들 터무니도 없는 소리가 성사가 될 까닭이 있느냐. 내 딸과 집안을 빗대 놓고 상없는 상주까지 하였지만 아무리 한들 그런 어림없는 수작으로 성명을 가리울 수 있느냐.
우리 집안이 비록 고단하다 한들 인제 경신 형제가 있지 않으냐.
한번 경신을 생각하자 잔뜩 찌푸렸던 유종의 얼굴은 저절로 풀어졌다.
먼빛으로 보아도 천하영웅인 줄 알아보았지마는 정작 겪어 보니 얼마를 더 씩씩하고 더 의젓하고 인정스러운지 몰랐다. 이렇듯 사내다운 사내를 사위로 맞게 된 것은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사위가 있는 다음에야 금지 따위야 열명 백명이 적이 된다 해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경신에게 대면 금지의 아들 금성이쯤은 발 아래 꿈지럭거리는 벌레만도 못하였다.
한두 번 상면밖에 시키지 않았지만 저희끼리도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주만이 같은 기상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못마땅할 것 같으면 그대로 낯빛에 드러낼 것 아니냐.
경신이 떠날 때에도 저희끼리도 인사를 주고받으며 얼마 아닌 그 동안이나마 못내 이별을 아끼는 듯도 하였다.
이 혼인이 올곧게 못 된다면 동햇물이 거꾸로 흐르는 날이리라. 유종은 미쁘고 든든한 생각에 금지의 칼날 같은 빈정거림도 잠깐 잊어버리었다.
그의 늙은 눈앞에는 대화어아금(大花魚牙錦)의 활옷에 큰 낭자를 하고 아름다운 신부 모양을 차린 주만과, 공작의 꼬리를 꽂고 복두와 관대의 신랑의 위의를 갖춘 경신이 금실 좋게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이 떠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