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과 주만이 석가탑 그림자 속에서 낙성의 감격에 겨웠을 제 아사녀는 콩콩이에게 붙들리어 푸줏간으로 끌려가는 양 모양으로 꾸벅꾸벅 따라갔다.
지금 와서 앙탈을 한다 한들 왁자지껄만 할 뿐이지 놓아 줄 것 같지도 않고, 설령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다 하더라도 또다시 펄떡거리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풀밭과 산기슭에 이리저리 몸을 숨기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의 길로 들어설 뿐. 생각만 해도 이에 쓴물이 돌았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모든 걸 단념해 버렸다.
대공을 이루고 찬란한 영광에 싸인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기쁨도, 두 손길을 마주잡고 고장으로 회정하는 아기자기한 꿈도, 그 몹쓸 가지가지 경난을 정담 속에 넣어 두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 어여삐 여기는 꿀 같은 사랑생활도 무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그이에게는 저보다 더 높고 더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이 있지 않으냐. 찌들고 여위고 볼품 없는 이 시골뜨기 아내보담 호화롭고 씩씩한 서울 아가씨가 따르지 않았느냐.
인제 와서는 내란 이 몸은 그이에게 도리어 폐가 되고 누가 될 따름이 아니냐.
이런 때 저승의 차사 같은 콩콩이를 만난 것이 도리어 무딘 결심을 재촉해 주었다.
콩콩이는 아사녀가 저를 보기만 하면 몸부림을 하고 뺑소닐 칠 줄 알았더니 이렇게 고분고분히 따라오매 얼마쯤 마음이 누그러졌다. 막상 '대감'이 불러오라 하여 찾으러 나갔다가 아사녀가 가뭇없이 사라져서 발을 동동 구르던 생각을 할 것 같으면 아사녀를 잡기만 하면 바수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듯하였다. 그렇게 꿀을 담아 붓는 듯해서 그 '대감'이 제 집에 행차까지 하셨는데 정작 당자가 없어 놓으니 이런 꼴이 어디 있느냐. 더구나 끼니마다 고량진미에 중값든 옷까지 입혔으니 밑천도 이만저만 들지 않았는데 만일 줄행랑을 쳤다면 이런 손해가 또 어디 있느냐. 그림자못을 열 바퀴나 더 돌다가 허허실수로 불국사엘 와본 것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은 만행도 만행이려니와 당자가 앙탈도 않는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만일 그 '대감'이 조맛증이나 내시지 않고 눈을 껌벅껌벅하며 기다리고 있다면야 일은 되었다. 오래간만에 얻어걸린 이 큰 콩을 놓쳐서 될 말인가.
"여보 젊으신네, 하필 오늘 저녁따라 불국사엘 오셨소. 그래 그 석가탑인가 뭔가 탑 그림자가 비칩디까."
"아녜요."
아사녀는 고개를 다소곳한 채 성가신 듯이 간단히 대답하였다.
"그것 보구려. 먼 곳에서 어떻게 거기 그림자가 비친단 말이오, 킁 킁. 백주에 거짓말이지."
하고 콩콩이는 속으로 이 계집애가 아직도 모르는구나 생각하고 슬슬 마음을 돌려 보려 들었다. 정작 '대감'과 상면을 시킬 때 발버둥을 치면 가뜩이나 남편 있는 계집이라고 꺼리는데 일이 순편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남편을 만나 보셨소."
번연히 못 만난 것을 알면서도 짐짓 물어 보았다.
"아녜요."
"원 그런! 세상에 매정한 사내도 있구려, 킁 킁. 천리 원정에 찾아온 아내를 어떡하면 만나 주지도 않는단 말이오."
하고 콩콩이는 바로 흉격이나 막히는 것처럼 칵 하고 침을 뱉고 나서,
"여보 젊으신네, 그런 사내를 어떻게 바라고 산단 말이오. 내 참 좋은 자리에 중매해 주께, 으흐흐. 바로 상대등 되시는 어른, 말하자면 임금님 다음가는 어른이야. 그 어른이 자식이 없어서 마마님을 구하시는데 젊으신네가 들어가 보시려오. 쇠뿔한 마마님이면 귀비 부럽지 않게 호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젊으신네가 들어가서 아들만 하나 쑥 낳아 보시구려. 귀염과 굄을 독차지할 게고 아드님이 대까지 잇게 된단 말이거든."
수다 늘어놓는 콩콩이의 말낱은 마치 아사녀의 명을 재촉하는 주문과 같았다.
아사녀는 콩콩이보다도 더 빨리 걸었다. 한 걸음이라도 속히 걸어야 모든 슬픔과 모든 괴로움을 한시바삐 벗어날 것처럼.
저만큼 그림자못이 보인다.
달빛어린 그림자못은 거울같이 맑았다. 찰랑찰랑 뛰노는 은물결은 아사녀에게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하였다. 그 물결을 바라보는 순간 아사녀의 설레던 가슴도 맑고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인제 다 왔구나.'
아사녀는 속으로 속살거리고 호 하고 가쁜 숨길을 내쉬었다.
그들의 발길은 그림자못가를 스쳐가게 되었다.
아사녀는 불국사 쪽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는 털끝만한 원망하는 빛도 없었다. 맑고 부드럽게 약한 슬픔을 머금은 양이 마치 보살님의 자비에 가득 찬 눈동자와 같았다.
'나는 가요, 저 물 속으로. 내 시신 위에나마 당신의 이룩한 석가탑의 그림자를 비쳐 주어요.'
이것이 마음으로 속살거리는 남편에게 대한 마지막 부탁이었다.
콩콩이가 악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아사녀는 나는 듯이 몸을 빼쳐 그림자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