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이제 탑 속에서 일을 하지 않고 탑 밖에서 사다리를 놓고 한창 흥에 겨워서 다듬질에 골몰하였다. 번개같이 번드치는 그의 손아귀에는 가느다란 가슴정이 신이 나서 넘노는데 그 엷고 납작한 입부리로 나불나불 돌부리를 씹어 내었다. 은물에 적시어 놓은 듯한 돌몸에서는 반짝반짝 흩어지는 불꽃도 희었다.
주만과 털이가 사다리 밑까지 돌아왔건만 아사달은 인기척도 못 알아듣는 듯하였다.
털이가 소리를 치려는 것을 주만은 눈짓해 말리고 마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귀와 눈을 아사달의 손끝에 모으고 있었다…….
털이는 몸부림이 날 지경이었다.
차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사달님 처소 툇마루에 다리를 디룽디룽하며 걸터앉아서 달을 보고 있으리라.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그 늙은 회나무 그늘에 슬쩍 몸을 숨기고 뒤를 돌아 등뒤에서 두 손으로 눈을 꼭 감겨 주었으면! 그러면 누구야 누구야 하고 고개를 도래도래 흔들렷다. 한 나절이나 눈 감긴 손을 떼어 주지 않으면 약이 올라서 나중에는 뿔쭉 하고 성을 내렷다. 실컷 애를 먹이다가,
"아옹, 나를 몰라."
하고 깔깔대면 저도 돌아다보고 싱글벙글 나를 두리쳐 안으리라.
그러나 어쩐지 엄숙한 공기에 싸여 감히 발을 떼어 놓지 못하고 주만의 하는 대로 조용히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정소리는 뚝 그치었다. 그러자 아사달은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이가 아슬아슬한 고비를 다 겪고 마침내 절정에 득달하였을 때 내뿜는 한숨과 같았다. 가슴이 툭 트이는 듯한 시원함과 창자 밑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기쁨과 지치고 지친 피로가 한꺼번에 뒤섞인 한숨이었다.
정소리는 끊겼건만 제 귀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즐기며 주만은 또 한동안 그린 듯이 서 있었다.
"아야야, 아야야."
털이는 온몸이 비꼬이는 듯 이제 더 참으려야 참을 수 없어 필경 이 조용한 공기를 깨치고 말았다.
"쇤네는 다리가 저려서 죽겠는뎁시오, 아야야, 아야야."
아사달은 그제야 제 발밑에서 나는 인기척을 들었는지 놀란 듯이 힐끗 내려다보았다.
"오오, 구슬아기님, 구슬아기님이 오셨습니까."
아사달이 이때처럼 반겨 부르짖기는 처음이었다. 그러고 주만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우둥우둥 사다리를 내려온다.
털이는 옳다 인제 되었다는 듯이 그 틈을 타서 종종걸음을 치며 제 갈 데로 가버리었다.
아사달은 사다리를 내려오는 길로 다짜고짜 주만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었다. 그 목소리는 전에 없이 내리지르는 폭포와 같이 급하였다.
"구슬아기님, 구슬아기님, 기뻐해 주십시오. 인제, 인제야 끝이 났습니다."
대공을 이룩한 절대의 감격에 그의 몸과 넋은 소용돌이를 쳤던 것이다. 이 기쁨을 나눌 이를 만난 것이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던 것이다.
"녜, 녜! 탑이 완성이 되었단 말씀예요. 대공을 마치셨단 말씀예요."
주만도 제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흥분된 말씨로 채쳐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마지막 손을 떼었습니다. 햇수로 삼 년, 달수로 서른 달 만에."
"……"
주만은 대번에 목이 꽉 메이는 듯 말도 나오지 않았다. 쉬이쉬이 준공은 된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속히 끝이 날 줄이야. 그렇게도 지리하고 그렇게도 어렵더니만 마치려 드니 이토록 빠를 줄이야, 쉬울 줄이야. 더구나 제가 보는 눈앞에서 일손이 떨어질 줄이야.
주만의 긴 속눈썹에는 눈물이 서릿발같이 번쩍였다. 마침내 그는 감격과 정열의 회오리바람에 싸이어 단 한마디,
"아사달님!"
부르짖고 제 얼굴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던지며 소리를 내어 울었다.
"구슬아기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기뻐해 주시니."
하고 아사달도 주먹으로 제 눈물을 씻었다.
"만일 이 자리에 스승이 계셨던들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사달의 생각은 벌써 멀리 고장으로 달리었던 것이다. 스승도 스승이려니와 제 아내 아사녀인들 이 자리에 있었더면 얼마나 좋아하였으랴. 그러나 아사녀 말만은 선선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만은 벌써 아사달의 흉중을 꿰뚫어본 듯 선뜩 얼굴을 떼며,
"부인께서 보셨더면 더욱 기뻐하셨을 것을."
하고 중얼거리었다. 그 말가락엔 조금도 시새는 울림이 없고 가장 자연스럽게 동정에 넘치는 듯하였다.
뚜렷한 석가탑의 그림자는 하나로 녹아드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뒤덮는 듯이 지워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