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이 집 뒷문을 빠져나온 아사녀는 사나운 짐승에게 쫓기는 사람 모양으로 한동안 허방지방 줄달음질을 쳤다. 뒤에서 누가 씨근벌떡거리고 잡으러 오는 듯 오는 듯하여 발길 닿는 대로 들숨날숨없이 달아나기만 하였다. 물론 어디로 간다는 지향조차 없었다.
얼마를 뛰어왔는지 숨은 턱에 닿고 댓 자국을 옮길 수 없어, 마침 길 옆에 우거진 갈밭을 발견하고 그 속에 뛰어들어 은신을 하고 눈을 내어 바라보매, 벌써 어슬어슬한 저녁 안개에 싸이어 콩콩이 집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 있는 지척에서 또 이런 변을 당할 줄이야. 오는 도중에는 뜨내기 못된 젊은 것들의 성화를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모면하기가 쉬웠던 셈이다. 어엿한 구종을 늘어세우고 버젓한 수레에 높이 앉은 명색 '대감'이 이런 불측한 출입을 할 줄이야. 애숭이 이리떼보다 이 늙은 이리가 여러 백 갑절 더 무섭고 더 치가 떨리었다. 더구나 그 소중한 남편을 개새끼보다 더 우습게 아는 것이 절통절통하였다.
'이것도 내 탓이다. 나 때문에 공연히 남편까지 욕을 보이는구나.'
하매 아사녀는 몸둘 곳을 몰랐다. 그때 죽어 버렸을 것을. 그 사자수 푸른 물결에 몸을 던져 버렸던들 그 몹쓸 고생도 아니하였을 것을. 몸은 비록 어복중에 장사를 지냈을망정 혼이라도 고장의 하늘에 남아 있다가 아사달님이 돌아오시는 것을 보았을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두가 제 잘못이었다. 한번 죽음을 결단한 다음에야 무서울 것이 무엇이며 어려울 것이 무엇이랴 하고 길을 떠난 것부터 잘못이었다. 죽음보다 몇 갑절 더 무섭고 더 어려운 고비를 얼마나 겪었는가.
그 흉물스러운 콩콩이를 태산같이 믿은 것은 잘못 중에도 큰 잘못이었다. 아무리 의지가지가 없는 형편이라 하기로 아무리 하루 이틀만 지나면 탑그림자가 나타나고 곧 남편을 만날 수 있다기로 턱없이 남의 신세를 진 것이 불찰이다.
그러면 어찌하랴. 지금 새삼스럽게 또 어디로 달아날 것이랴. 전자에는 이런 변을 당할 적마다 서라벌로 서라벌로! 이를 악물고 내달았거니와 이제는 갈 길조차 없지 않으냐.
그렇다고 한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만일 붙들리기만 하면 이번이란 이번이야말로 빼쳐날 길이 없다. 어디든지 좀더 멀리라도 피신을 해야 한다.
아사녀는 깜틀 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언뜩 불국사 생각이 떠올랐다.
'옳다, 좌우간 또 불국사로나 가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는 벌써 떨어지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여 길을 찾기가 아득하였으나, 아무튼 불국사 방향을 어림잡고 질팡갈팡 걷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어떻게 돌았는지 아사녀 제 자신도 알 수는 없었으되 으스레한 가운데에도 훤하게 트인 큰길이 보이었다. 아사녀가 문지기에게 쫓기어 그림자못을 찾아가던 좁은 길과는 딴판으로 크고 넓은 것을 보면 서라벌에서 불국사로 바로 뚫린 대로가 분명하다.
아사녀가 그 길로 휘잡아들어 얼마 걷지 않아서 과연 불국사 대문의 붉은 기둥이 그리 멀지 않게 뚜렷이 바라보이었다.
아사녀는 딴 길로 나온 것이 오히려 다행하였다.
불국사 문을 바라만 보고 허둥지둥 발길을 옮기고 있을 제 문득 등뒤에서 말굽 소리가 들리었다.
아사녀는 몸을 흠칫하며 길 한옆으로 비켜서는데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나를 잡으러 오는가 부다.'
길가라 으슥한 숲도 없으니 은신할 도리도 없고, 그렇다고 달아나자 하니 저편에서 말을 달려오는 다음에야 몇 걸음을 안 옮겨 놓아 잡힐 것은 정한 이치였다.
아사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 옹송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뚜벅뚜벅하는 말굽 소리는 과연 아사녀 있는 곳으로 가까워 왔다.
아사녀의 등에서는 찬 소름이 쭉쭉 끼치었다.
별안간 동이 좀 뜨게 난데없는 숨찬 여자의 음성이 들려 왔다.
"애구, 애구, 아가씨, 구슬아가씨, 좀 같이 가요. 쇤네는 죽겠는뎁시오."
"어서 오너라, 어서 와! 왜 네 말은 절룸절룸 저느냐."
하고 앞장을 섰던 말굽 소리가 바로 아사녀의 등뒤에서 멈춰지는 듯하였다.
아사녀는 여자의 말소리에 적이 마음을 놓고 제 뒤를 힐끗 돌아다보았다. 두 간통도 안 떨어진 곳에 웬 젊은 여자가 마상에 높이 앉은 뒷모양이 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