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튿날 저녁 나절 아사녀는 못가를 또 한 바퀴 휘돌아오니까 콩콩이 집 문 앞에 으리으리한 좋은 수레가 한 채 놓이고 홍달모 달린 벙거지를 젖혀쓴 구종 몇몇이 두런두런 지껄이고 있었다.
콩콩이 집에 손님이 들기도 처음이요, 손님이 든대도 이런 굉장한 손님이 들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아사녀는 어쩐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어서 곧 발길을 돌려서려다가 그래도 자기가 신세지고 있는 집에 별안간 손님이 들어 그 노파가 혼잣손에 쩔쩔맬 것을 생각하고 조심조심 걸어들어와 보니 바깥에 들리는 것과는 딴판으로 안에는 조용한 게 인기척도 없는 듯하였다.
아사녀가 가만히 마루에 올라서매 안방에서 영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은밀한 수작이 새어흘렀다.
"그래 자네 말마따나 그 천하절색은 어디로 갔나, 허허."
점잖으나마 꺽세디꺽센 목소리는 아마 노파를 찾아온 사내 손님의 음성이리라.
"이제 고대 들어오겠지요. 어규 대감께서도 그렇게 급하십니까, 으흐흐."
갈 데 없는 주인 노파의 흐무러진 수작이 분명하다.
"그래, 오기는 어디서 왔다던가. 자네가 근지를 분명히 아는가."
"벌써 몇째 마나님이 되실 텐데 근지를 캐시면 무얼 하십니까. 인물만 무던하면 고만입지요."
"원 자네는 인물 인물 하고 인물만 추지마는, 내 집사람을 만들자면 첫째 근지를 알아야 될 것 아닌가."
"뭐― 성골, 진골의 정실부인을 구하시는 것 아니겠고, 대감의 눈에 드시면 고만이지 근지는 알아 무엇 하십니까, 킁 킁. 아무튼 한번 보시기만 하십시오. 당명황의 양귀비도 저만큼 물러앉으라 하실 테니, 으흐흐."
"아따, 추어올리기는. 양태진만할 말로야 황금 만 냥도 아깝지 않지마는."
엿듣던 아사녀는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과연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지 또는 다른 수작인지 분명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온몸이 귀가 되어 한 걸음 두 걸음 안방 옆으로 다가들어섰다.
"그런데 여봅시오 대감, 한 가지 난처한 일이 있답니다. 그 사람이 서, 서방이 있대요."
콩콩이는 어떻게 목소리를 낮추는지 하마터면 몰라들을 뻔하였다.
"응, 서, 서방이 있어. 그러면 유부녀란 말이지. 그러면 안 되지 안 돼, 될 말인가."
사내 손님의 성난 듯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안 될 것이 뭐입시오. 그까짓 시골뜨기 서방이 백 명이 있은들 무슨 상관입니까. 한번 서슬 푸른 대감 댁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제가 하늘 위에 별 쳐다보기지, 무슨 별수가 있겠습니까, 킁 킁. 그래서 저도 근지도 알아보지를 않았답니다. 엊저녁에야 말말끝에 서방 있는 계집이란 소리를 들어 알았지요."
아사녀는 머리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하였다. 갈 데 없는 제 이야기다.
'어서 달아나야, 어서 달아나야.'
속으로 외치면서도 웬일인지 발을 동여매 놓은 듯 움직일 수 없는데, 회오리바람이 설레는 듯한 귓속으로는 방 안의 가만가만한 말낱이 마치 화살촉 모양으로 들어박히었다.
"서방 있는 계집을, 안 될 말, 안 될 말."
사내는 종시 으레를 한다.
"원 대감도 딱도 하십니다. 그까짓 서방은 생각하실 것도 없대도 그러시네. 그까짓 돌이나 쪼아 먹고 사는 위인을 정 말썽을 부리거든 돈냥간이나 두둑히 주면 저도 새장가들고 좋아할 것 아닙니까."
아사녀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하여 살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오 그러면 그 서방이란 자가 석수장이란 말인가."
"그렇대요. 바로 저 불국사에서 탑을 짓는 석수래요, 킁 킁. 그 석수의 짓는 탑그림자가 비친다고 해서 하루에도 몇 번을 그림자못으로 간답니다. 지금도 아마 거길 간 듯합니다. 여기서 거기가 어디라고 우두머니 못가에 앉아서 그림자 나타나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꼴은 아닌게아니라 불쌍도 해요."
"그러면 숫배긴 아주 숫배긴 모양이나 석수장이 계집이 오죽할까."
"아닙시오. 천만에 그렇지 않습니다……."
아사녀는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살그머니 마루를 내려서서 나는 듯이 뒤꼍으로 돌았다. 앞문으로 나가다가는 그 감때사나운 구종들에게 잡힐 듯한 염려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집에는 뒤꼍에도 조그마한 중문이 하나도 아니요 둘씩이나 있었다. 남의 눈에 뜨이지 않고 드나들기에는 막상이었다.
아사녀는 그 중문 하나를 열고 진둥한둥 뛰어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