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장이 계집 노릇은 너무 아까웁다."
아사녀는 다른 말은 다 흘려들었지마는, 이 말만은 뼈가 저리도록 새겨들리었다.
그렇듯 좋고 착하고 보살님의 현신인 듯하던 이 늙은이가 그 언사와 거동이 오늘 밤따라 어떻게 천착스럽고, 수상한 생각이 와락 일어나는 것을 걷잡을 수 없었다. 주름살이 메이도록 분을 덕지덕지 올린 것도, 시들어진 뺨에 발그스름하게 연지를 칠한 것도 망측스럽고 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건 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야요."
아사녀의 두 뺨도 뾰로통해지고 절로 말소리도 날카로워졌다.
노파는 말끄러미 아사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제 말이 너무 지나친 것을 깨달았음이리라.
"어규 젊으신네, 잘못 되었구려. 늙은것 말이 어디 종작이 있소. 원 지껄이기만 하면 말이 되는 줄 알고, 킁 킁. 원 망할 년의 입주둥아리가……."
제가 저를 여지없이 나무라다가,
"여보 젊으신네, 늙은것이 그저 입버릇이 사나워서 그렇지 무슨 다른 뜻이야 있었겠소? 킁 킁. 젊으신네가 하도 아름답고 의젓하기에 웃느라고 한 소리가 아니오. 그만 일에 그렇게 화를 낼 거야 무엇 있소. 내가 젊으신네 영감을 보기나 하였기에 헐뜯어 말할 거요. 하도 젊으신네가 잘나서 이 늙은것이 반은 미치다시피 되어 말이 함부로 나왔구려."
너스레를 놓는 바람에 아사녀는 이렇듯 신세 많이 진 늙은이에게 괜히 촉바른 소리를 하였구나 후회하였다.
노파는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한동안 무엇을 생각하다가,
"여보, 젊으신네, 일인즉은 매우 수상하구려. 젊은 아내가 천리 원정을 멀다 않고 찾아왔는데 안 만나는 까닭이 무슨 까닭이란 말이오, 킁 킁. 사람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듯 매정할 수가 있소. 그야 말짝으로 필유곡절이지."
"제 남편이야 제 온 것을 어디 알기나 해요. 문지기가 가로막고 들이지를 않으니 그렇지."
"그럴상도 싶지마는 그렇지 않은 까닭도 또 있다오. 젊으신네 영감이 미리 문지기에게 일러두지 않은 다음에야 그 문지기가 억하심정으로 들이지를 않는단 말이오, 킁 킁."
"어떻게 저 올 것을 알고 미리 부탁을 해둔단 말씀이야요."
노파는 매우 딱한 듯이,
"어규 딱해라, 저렇게 고지식하게 생각을 하니까 나타나지도 않을 그림자를 찾아보라고 어리더덤한 수작으로 돌려세웠구려, 킁 킁. 말하기는 안되었지만 만일 젊으신네 영감이 젊으신네같이 잘났다면."
"저보다 여러 갑절 잘나셨답니다."
"그러면, 그러면, 킁 킁, 큰일이로구려. 그래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되었소."
"삼 년이나 되었어요."
"삼 년! 어규, 삼 년 동안에 그래 새파란 젊은이가 독수공방을 할 것 같소, 킁 킁. 벌써 탈이 난 거요. 더구나 불국사 같은 대찰에는 대갓집 마마들의 불공이 잦고, 그렇게 잘난 젊은이가 그들의 눈에 띄었다면 그대로 둘 것 같소. 여불없지, 여불없어."
"설마……."
"여보, 설마가 다 뭐요. 설마가 사람을 죽인다오, 킁 킁. 큰일났구먼. 어규 가엾어라. 저렇게 예쁜 댁네를……."
아사녀의 가슴엔 무엇이 탁 맞치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팽개와 싹불의 말이 과연 참말이었던가. 딴은 그 문지기가 처음에는 그렇게 물풍스럽게 굴지를 않더니 아사달을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 천길 만길 뛰지를 않았던가.
노파는 아사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는 것을 보고,
"어규 가엾어라, 어규 딱해라. 그야 젊으신네 남편이야 문지기를 보고 그런 부탁을 안 했는지 모르지, 킁 킁. 보아하니 두 분의 금실이 여간 좋지 않았던 모양이니, 킁 킁. 어느 년인지는 모르지만 그 계집년이 죽일 년이지. 필경은 그년이 그 문지기를 돈푼이나 주고 본여편네가 오거든 절문 안에 들어서지도 못하도록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지도 모르지. 원 세상에 원수엣년도 있지그려. 몹쓸 년도 있지그려."
아사녀는 흑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여보 젊으신네, 너무 상심을랑 마시오. 꼭 그런 줄야 낸들 알 수 있소, 킁 킁. 세상에 못 믿을 건 사내의 마음입네다. 계집한테 미치기만 하면 그대로 환장이 되는 게니, 킁 킁. 그걸 다 속을 썩여서야 어디 사람이 배겨날 수가 있소. 어디 저 아니면 세상에 사내 씨가 말랐답디까. 유들유들하게 생각을 해야 된단 말이거든, 킁 킁. 자아 일어나오. 우리집으로 들어가서 잠이나 잡시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무얼 한단 말이오. 살이나 내렸지. 내일이라도 또 좋은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아오, 킁 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