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31

아사녀는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림자못을 찾았다. 그 노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얼마나 다행한지 몰랐다.
한낮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닌밤중에나 꼭두아침이라도 남편 그리운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불현듯 뛰어나오기에 가까운 것이 무엇보다도 좋고 편하였다.
여러 번 돌아보고 들여다본 탓으로 인제 물 속에 일렁거리는 그림자란 그림자는 낯이 익다시피 되었다.
해가 어디만큼 떠오르면 어느 그림자가 어떻게 가로눕고, 또 그 길이가 얼만큼 된다는 것까지 짐작하게 되었다.
수멸수멸하는 물 얼굴도 정이 들었다.
그러나 탑 같은 그림자는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눈에 서툰 그림자가 얼찐하면,
"옳지 인제야."
하고 가슴을 두근거렸으나 흘러가는 구름 조각이 그를 속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도 그 탑이 덜 되었구나."
발길을 돌릴 적마다 아사녀는 실망한 듯이 혼자 속살거렸으나, 그러나 그 탑이 완성만 되면 그림자가 비칠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제법 달이 밝았다.
아사녀는 꿈꾸는 듯한 걸음걸이로 휘넓은 못가를 돌고 또 돌며 탑 그림자를 눈여겨 찾아보았지만, 새파란 하늘이 가로눕고 별들이 한들한들 춤추며 지나갈 뿐.
지친 듯이 풀밭에 주저앉아 은사실을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또 어디를 가셨나 하고 찾았더니, 킁 킁, 또 여길 나왔구려."
등뒤에서 콩콩이 소리가 났다. 오늘은 또 무슨 볼일이 있다고 다 저녁때나 되어 잔뜩 꾸미고 나가더니 어느결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킁 킁, 오늘은 달이 꽤 있구려. 젊으신네 같은 이는 심회도 날 만하구려."
하고 아사녀 곁에 와서 나란히 앉으며 어깨를 툭 친다.
"볼일은 다 잘 보셨어요."
"잘 보고말고, 참 잘 보았다오, 으흐흐."
콩콩이는 연방 웃어 보이며 기뻐서 못 견디는 눈치였다.
"이번 볼일이 쩍말없이 들어맞기만 하면, 킁 킁, 나한테도 좋지만 젊으신네한테 더 좋은 일이라오, 으흐흐."
아사녀는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이 수상스러웠다.
"저한테 좋을 일이 무슨 일일까요."
"글쎄 가만 있구려. 이 늙은것한테 만사를 맡기구려, 킁 킁. 내가 젊으신네를 이롭게 했으면 했지 설마 해야 붙이겠소. 그런데 그 그림자는 인제 찾았소."
"아녜요, 아직 그 탑이 덜 되었는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요."
"여기서 거기가 어디라고……."
하다가 콩콩이는 아사녀에게 실망을 줄까 보아 슬쩍 말허두를 돌리었다.
"도대체 그 탑이 완성되기를 왜 그렇게 바라시오. 필경 곡절이 있겠구려, 킁 킁."
아사녀는 벌써 며칠을 콩콩이 집에 있었지만 자기 속사정은 아직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그 노파 또한 굳이 알려 들지도 않았다.
"입때까지 참 말씀을 못 여쭈었습니다마는 그 탑을 짓는 이가 제 남편이랍니다. 그 탑이 완성이 되어야 그이를 만나게 해준대요. 여자의 부정한 몸으로 절 안에 발을 못 들여놓게 한답니다."
"아니 그러면 그 탑 쌓는 석수장이가 젊으신네의 남편이 된단 말이오. 이름이 무어라 하오."
"아사달이랍니다."
"오 그래요. 그래서 이 못에 그림자를 찾는 게로구려. 오, 옳지, 옳아, 킁 킁."
콩콩이는 몇 번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그러면 진작 그런 말을 할 게지, 킁 킁."
하고 매우 못마땅해하다가 다시 생각을 돌리는 듯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그 어른 마음에 든 다음에야 남편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단 말인고."
"그건 무슨 말씀이야요."
아사녀는 차차 콩콩의 말씨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이 좋은 늙은이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구나 생각하매 마음이 섬뜩해짐을 느끼었다.
"아니오, 젊으신네 알 것은 아니오, 킁 킁. 혼자 무슨 딴생각을 한 거라오. 주책머리없는 늙은이란 이럴 때 알아본단 말이거든. 무두무미하게 그게 무슨 소리람. 아무튼 아깝소, 아까워……."
"뭣이 아깝단 말씀이에요."
아사녀는 더럭 의증을 내며 채쳐 물었다.
"그러면 아깝지 않고, 그 옥 같은 얼굴로 석수장이 계집 노릇은 아깝지, 아까워, 으흐흐."
하며 콩콩이는 능갈지게 또 웃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