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30

아사녀가 그 노파의 집에 묵은 지도 어느덧 사나흘이 지나갔건만, 주인 노파의 친절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끼니마다 고량진미와 포근포근한 비단 이부자리는 노독을 흠씬 풀어 내고 지친 몸을 소복시키기에 넉넉하였다.
그 해쓱하게 여윈 뺨에도 발그스름하게 화색이 돌았다. 분결 같은 손등에는 포동포동하게 부어오른 것이 그대로 살이 되고 말았다. 거울 속에 나타내는 제 얼굴은 제가 보아도 며칠 전과는 아주 딴판으로 고와 보이었다.
노파는 이따금 홀린 듯이 물끄러미 아사녀를 바라보다가,
"킁 킁, 예쁘기도 하올시고, 의젓도 하올시고, 으흐흐. 천상선녀는 마치 몰라도 지상에는 저런 인물은 다시 없겠구려."
무슨 노래나 읊조리는 가락으로 칭찬칭찬을 하였다.
"옥으로 새겼는가, 꽃으로 그렸는가, 킁 킁. 귀빗감도 훌륭한 좋은 얼굴, 쇠뿔한 마마님이 되어도 귀염받기는 혼자 할 이가 그 고생을 하다니, 그 거지 중에도 상거지 꼴을 하다니, 으흐흐."
노파는 연방 콧소리, 웃음 소리를 뒤섞어 내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여보, 젊으신네, 한다하는 재상가의 마마가 되시려오, 어엿한 귀공자의 알뜰한 사랑 노릇을 하시려오, 킁 킁. 열두 대문에 남종, 여종 수백 명을 거느리고 능라주단을 휘감고 치감고 옥주발, 은탕기에 진수성찬이 썩어나고 눈이 부신 황금 팔찌, 가락지, 구슬 목걸이, 귀걸이를 끼고 달고 걸고, 나가면 침향목 수레에 수없는 구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에라 치워라, 벽제성도 호기롭고, 들면 호피방석에, 당나라 비단금침에, 원앙몽을 달게 꿀 자리를 내 한 군데 지시해 드릴까, 으흐흐."
노파는 신들린 사람이 넋두리하듯 한바탕 늘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사녀는 그 푸념 가운데 뼈가 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음 좋은 노파가 자기를 놀려먹느라고 농담을 지껄이는 줄로만 알고 흘려들었다.
이따금 너무 불안스러워서 설거지라도 거들러 나갈라치면 그 노파는 질색을 하였다.
"킁 킁, 그 고운 손에 왜 물을 묻힌단 말이오. 그 옥 같은 손등이 거칠어지면 어쩌자고. 젊은이란 열 손 재배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거라오, 킁 킁. 가꾸고 꾸며도 가는 청춘이야 잡을 수 없지마는 왜 일새로 겉늙힌단 말이오. 젊으신네 같은 이는 분세수 단장이나 하고 고이고이 그 어여쁜 얼굴을 아끼셔야 됩네다. 일을 거든다께, 원 천만에 될 뻔이나 한 말인가, 킁 킁. 그저 일은 늙은것이 해먹어야지. 알아볼 눈퉁이 없고 쥐어 볼 젖통이 없으니 어느 나비가 다시 찾아들겠소. 그저 마른일 진일로나 세월을 보낼 것 아니오, 킁 킁. 더군다나 내 눈두덩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야 왜 내 집에 온 손님의 손끝인들 까딱을 하게 한단 말이오. 킁 킁."
"어떻게 노인네를 일을 시켜요. 일은 젊은 사람이 해야지요."
하고 아사녀가 웃으며 반박을 할 것 같으면 노파는 천길 만길 더 뛴다.
"킁 킁, 원 이런 말 보았나. 그렇게 떡먹듯이 일러 듣겨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오, 킁 킁. 그건 시골 무지렁이나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오. 그 서방이란 게 서방이요, 건방이지. 여편네한테 건방이나 부리고 부려먹기나 하고 걸핏하면 난장이나 치고 그래서 여편네의 아까운 청춘을 다 늙힌단 말이오, 킁 킁. 젊으신네도 이왕 서울 왔으니 그 서방이란 게 있거든 하루바삐 떼어 버리시구려. 그 무지막지한 것들이 어디 인간이오. 우리 서라벌 사내야 다들 제 계집 귀애할 줄 안다오. 어디 일을 시킬까, 손찌검을 할까, 킁 킁. 또 그 늙은 시부모라는 것들은 젊었을 때 고생한 건 잊어버리고 며느리만 보면 들볶기나 하고 일만 시켜 먹으려 들지 않소. 그래서 젊으신네도 그런 말을 하는가 보오마는, 사람이란 나이가 젊었을 때 흥청도 거리고 고이 가꾸어야지 다 늙은 내야 아무리 꾸민들 주름살이 펴질 거요, 악센 뼈마디가 몰씬몰씬해질 거요. 그러니 일을 암만 해도 상관이 없단 말이거든. 그런데 젊은이를 왜 일을 시킨단 말이오."
아사녀는 빵긋이 웃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 노파가 시골뜨기는 사람이 아닌 듯이 휘몰아세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 적이 마음에 불쾌는 하였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끝끝내 고집을 세워서 그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없었다.
이렇게 자기를 얻들고 받들고 위해 주는 그의 고마움을 생각한들 어떻게 조금이라도 그의 뜻을 받지 않고 불쾌하게 할 것이랴. 그러나 그 노파가 그렇게 시골 시부모를 미워하는 것이 다른 까닭이 붙은 줄이야 아사녀는 멍충이같이 몰라들었다. 시집살이를 못 해본 아사녀이매 시부모가 아무리 그악스럽다 한들 자기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요, 더구나 그 노파가 아무리 시골 사내를 욕을 해도 아사달을 빗대 놓고 하는 말이거니 생각할 까닭이 없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