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은 자기의 우스갯말에 부끄러워서 땅으로 기어들어가는 줄 알았던 제 장래 아내가, 무망중에 당돌하게 얼굴을 쳐드는 것을 보고 마음 그윽이 놀랐으나 그 별같이 번쩍이는 눈과 꽃봉오리처럼 쪼무린 입술이 씩씩하고도 어여뻤다.
"경신님, 제 청을 꼭 들어주시올지."
주만은 새삼스럽게 또 한번 따지고는 호 하고 입김을 내쉬었다. 가느다란 뜨거운 숨줄기가 거울 같은 달빛에 어리다가 스러졌다.
이렇듯 아름답고 안타까운 장래 아내의 청이거니 천하를 달라 한들 아낄 줄이 있으랴.
경신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었다.
"저번 날 밤에 불국사엘 가셨더라지요."
"불국사?"
하고 경신으로도 몸을 흠칫하며 서먹서먹하였다. 이 말을 물을 줄이야 참말 꿈 밖에도 꿈 밖이었다.
"가기는 갔습니다만!"
하고 뚫어지게 아냇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국사엘 가셨다가 금지 금시중 아들 금성 일파를 한 칼에 몰아내시고 아사달님……."
하다가 주만은 다시 말을 고쳐,
"그 절에 탑을 짓고 있는 석수 하나를 구해 내셨다는데 정녕 그런 일이 계신지?"
하고 고마움과 슬픔이 뒤섞인 눈초리로 살짝 경신의 얼굴을 더듬는 듯하다가 다시 눈길을 돌려 버리었다.
경신은 들을수록 놀랐다. 쥐도 새도 모르는 그 일이거늘 어찌 깊은 별당에 들어앉은 처녀의 귀에까지 들어갔을까. 그 수선쟁이 용돌이가 누구를 보고 얼마나 떠들었기에 그 소문이 이토록 왁자지껄하게 퍼지었을까. 그렇다고 큰 자랑거리는 못 될망정 어리고 살가운 장래 아내를 기일 것까지도 없는 일이라,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아셨나요."
일 자체보다도 주만이가 안다는 것이 궁금하고도 신기하였다.
"그저 들어 알았지요. 그런데 그 금성이란 이가 무엇 때문에 그런 나쁜 짓을 했대요."
이제 수작은 한마루터기에 올랐다. 만일 경신이가 계집 까닭이라는 말을 내기만 하면 주만은 그 계집이란 곧 나라고 실토를 할 작정이었다.
경신은 어느새 뉘엿뉘엿 사라져 가는 으스레한 달빛 가운데 해당화 송이처럼 새빨갛게 떠오른 장래 아내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았으나, 저이가 대번에 이렇게 상기가 된 것은 전부 이 의문 때문이거니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앳되고 깨끗한 장래 아내에게 그런 상스러운 사실을 가르치기가 싫었다.
"그건 자세히 모르지요. 이러쿵저러쿵들 하니까……."
"모르실 리야……."
"몰라요, 몰라요."
하고 경신은 손까지 내저어 보이었다.
주만은 대번에 경신의 속을 살피었다.
'이분은 그런 소리를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구나.'
저편이 의젓하고 점잖을수록 말하기는 더욱 거북살스러웠다.
"여보세요, 그날 그 금성이란 이가 어떻게 달아났어요. 그렇게 수많은 군정을 데리고 왔더라는데……."
주만은 다시 말을 다른 데로 돌렸다. 암만해도 제 흉중에 품은 말이 쉽사리 나올 것 같지도 않은 까닭이리라.
"군정이 많다 한들 오합지졸이라 뭐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었지요. 왜 그 말은 뇌고 또 뇌십니까."
경신은 그까짓 일쯤 우습다는 듯이 신신치 않게 대답하였다.
"그래도 그 여러 사람을 한 칼에……."
주만은 경신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허허, 저런 말 보았나. 칼이란 언제든지 한 칼이지요. 쌍검을 쓰는 이도 있지마는, 허허."
경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꾸 웃기만 하였다. 장래 아내가 그만 일에 이토록 흥미를 가지는 것이 귀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칼은 한 칼이라 하시지만, 어떻게 혼자서 여러 사람을……."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칼로 여러 칼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한 칼의 대적은 언제든지 한 칼이지요. 이 한 칼이 저 한 칼을 이기는가 지는가를 겨눌 뿐입니다. 천 칼 만 칼이 들어온들 어디 낱낱이 대적하는 건 아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거나 결국 대적은 한 사람뿐이지요. 한 사람을 이기고 또 한 사람을 이기는 것을 곁에서 보면 혼자서 여럿을 이기는 듯이 생각되지요."
경신은 검술의 한 가닥을 타이르듯 알리었다.
"그러시다면 천만 사람이라도 결국 대적은 한 사람이란 말씀예요."
하고 주만은 경신의 검술논란에 잠깐 흥미를 느끼었다.
"그렇지요. 언제든지 적은 꼭 하나뿐이지요."
하고 경신은 또다시 빙그레 웃었다. 장래 아내에게 제 득의의 검술 얘기를 하는 것도 바이 성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덧 달은 지려는지 사면은 컴컴해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