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이가 다녀간 이튿날 저녁때, 털이는 안에 갔다가 또 종종걸음을 치고 들어오며,
"아가씨, 아가씨!"
하고 물에 빠진 사람 같은 소리를 내었다.
"왜 또 방정을 떠느냐. 차돌이가 또 왔단 말이냐."
여러 번 털이의 경풍에 속은 주만은 시들하여 놀라지도 않았다.
"오늘은 참 정말 큰 손님이 드셨다납시오. 온 집안이 벅쩍 괴고 야단법석인뎁시오."
털이의 눈은 더욱 호동그래진다.
"또 무슨 허풍이냐. 늘 드는 손님인데 번번이 놀랄 거야 뭐 있단 말이냐."
"아닙시오, 이번 손님은 아가씨께 큰 계관이 계실 손님이라납시오."
"내게 계관 있는 손님. 그 애는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오늘 오신 손님이 바로 경신 서방님이라납시오."
"너보다 먼저 나는 짐작을 하고 있었단다."
"어규, 아가씨는 참 이인이시어. 미리 다 알고 계시니."
"벌써부터 오신다 오신다 소문이 난 터이고, 또 저번 밤에 불국사에 나타나셨으니 으레 집에 들르실 것 아니냐."
주만은 겉으로 태연하나마 두 뺨이 불같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 속으로는 흥분에 떠는 탓이리라. 언제라도 한번 만나야 할 그이. 제 속에 숨은 비밀을 쏟아 버리려고 작정한 그이. 하루바삐 찾아오기를 마음 그윽이 기다린 그이건마는 정작 오고 보니 가슴은 까닭 없이 두방망이질을 한 것이다.
어젯밤에 차돌이를 만나서 자세한 경과는 들었지만, 경과를 듣고 보니 더욱 궁금증이 나서 오늘 밤에는 기어코 아사달을 찾아볼까 하였더니 경신이가 정말 왔다고 하면 자리를 뜰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괴롭고 부끄러운 어색한 노릇이라도 이왕 작정한 일은 귀정을 내어야 한다.
주만은 벌써 경신과 만나는 장면을 생각하고 마음이 찢어지도록 긴장해짐을 느끼었다.
"오실 줄 번연히 아셨다면서 왜 신색이 붉으십시오, 오호호."
털이는 벌써 제 아가씨의 기색을 살피고 또다시 버릇없는 소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주만이가 대척도 않는 것을 보고 제 말이 빗나간 것을 깨닫고 다시 근심스러운 얼굴로,
"아가씨, 어떻게 하실 작정입시오. 정말 이 혼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겝시오. 마당과 뜰에 황토까지 깔고 정말 초행 손님이 드신 듯이 야단이던뎁시오."
"듣기 싫다. 작작 떠들어라."
하고 주만은 성가신 듯이 쥐어지르듯 한마디하고 허공을 노려보며 덤덤히 입을 닫아 버린다.
"오늘 밤 불국사 행차는 또 틀리셨고……."
털이는 혼자말같이 중얼거리고 목을 움츠린다. 꿈에 본 것같이 다녀간 차돌이를 생각하고 오늘 밤에 또 못 만나게 되는 것이 섭섭함이리라.
"얘, 안에나 들어가 봐라. 손님이 드셨다면 좀 바쁘겠느냐. 무슨 일이라도 거들어야 될 것 아니냐."
주만은 조용히 털이에게 일렀다. 그는 제 홀로 끝없는 생각에 잦아지고 싶었다. 바늘끝같이 날카로워진 신경은 털이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그 얼굴이 눈에 뜨이는 것도 까닭 없이 제 생각을 흔들리게 하였던 것이다.
"쇤네 없으면 사람이 없는갑시오. 사람이 발길에 채일 지경인뎁시오."
털이는 종알종알하면서도 몸을 일으켜 나갔다. 저는 저대로 차돌이 생각을 하고 있는 판에 쫓아나 내는 듯해서 골이 잔뜩 난 것이었다.
얼마 안 되어 털이는 구는 듯 또 돌아왔다.
"어규, 그때 아가씨께서 쇤네를 안 보내셨더면 더 큰 꾸중을 모실 뻔했는뎁시오. 일이 이렇게 바쁜데 털이년은 뭘 한다고 별당 구석에 자빠져 있느냐고 마님께서 야단야단을 치시겠습지요."
"그러기에 봐라, 일은 바쁜데 잘캉하게 들어박혀 있어야 될 노릇이냐."
"어규, 마님께서 그렇게 역정을 내실 줄은 정말 몰랐는뎁시오."
"그런데 왜 또 왔느냐. 일은 거들지 않고……."
"아무튼 이년 오기는 잘 왔다. 너 아가씨께 냉큼 가서 다시 세수를 하고 새옷 갈아입고 기다리라고 여쭈어라 하시던뎁시오."
"그건 또 무슨 까닭일까."
"대감님께서 사랑에서 진둥한둥 들어오시더니 마님께 무슨 분부를 내리신 모양이던뎁시오. 처음에 마님께서 무에 그리 급하냐고 하신 눈치였는데, 대감께서 펄펄 뛰시며 그 사람이 며칠 묵어 갈 줄 알았더니 내일로 당장 떠나겠다 하니 오늘 저녁에라도 저희 둘을 만나 보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역정을 내시던뎁시오. 그러니 아마 아가씨 선을 보이실 모양이던뎁시오. 아가씨도 경신 서방님 선을 보시고……."
주만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조만간 상면을 해야 될 줄 알았지만, 그 기회가 이렇게 속히 닥칠 줄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