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파가 자랑한 것만큼 청동대야는 과연 어떻게 크고 넓은지 거의 물두멍만하였다.
미리 방문을 지쳐 주며,
"활활 벗고 어서 씻으시오."
아사녀 혼자만 남겨 놓고 자기는 슬쩍 나가 버린다.
알맞게 뜨듯한 물은 때너겁을 빼기에 넉넉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웃통만 벗고 씻다가 나중에는 필경 온몸을 그 큰 대야 안에 잠그고 말았다.
거의 다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쯤 하여 노파는 다시 문을 빠끔히 열고 들여다보면서,
"어유, 인제 다 씻었구려. 저렇게 곱고 어여쁘고 옥 같은 살을 땟국에 파묻어 두다께, 킁 킁. 어유 저렇게 잘난 얼굴을, 어유 손길도 곱기도 해라. 발꿈치가 달걀 같다고 흉이나 볼까, 킁 킁. 이 늙은이도 홀딱 반하겠구려."
노파가 입에 침이 없이 추어올리는 바람에 아사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었다.
"왜 내어준 옷은 가져오지를 안했소, 킁 킁. 저 얼굴에 저 몸꼴에 그 옷을 입으면 얼마나 더 어울릴까, 킁 킁. 그럼 내가 가서 옷을 갖다 드리께. 불안스럽게 알지 말고 입어 두구려. 그까짓 옷 한 벌을 뭐 그렇게 어렵게 안단 말이오."
하고 노파는 부리나케 나가더니 한옆에 옷을 끼고 한 손에는 걸레를 들고 들어와서 마룻바닥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훔치고 옷을 내려놓는다.
그 아늘아늘한 무늬와 혼란한 빛깔에 아사녀의 눈은 어리었다. 몸도 목욕까지 하였으니 그 새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야 불 같았건만, 하도 시장하던 판이라 요기나 할까 하고 들어왔을 뿐인데, 얼토당토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옷까지 얻어 입을 염의는 없었다. 옷이라도 어디 이만저만한 좋은 옷이 아니다.
아사녀는 헌털뱅이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려 하니 노파는 질색을 하며,
"여보 젊으신네, 젊은이 고집이 어떻게 그렇게 세단 말이오. 그래 기껏 씻은 고운 살에 염치에 또 그 누더기를 꿸 생각을 한단 말이오, 킁 킁. 이리 주오. 그 헌옷을랑 빨아서 걸레나 하게시리."
하고 노파는 재빠르게도 헌옷을 뺏어 가지고 그대로 나가 버린다. 아사녀는 어쩔 줄을 모르고 한동안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발가벗은 몸으로 뛰어나가 제 옷을 찾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요, 그렇다고 남의 중값진 옷을 마구 입자는 수도 없었다.
"왜 이러고 앉아 있소. 원 아직 춥지는 않지만 오래 벗고 있다가 지친 몸에 또 감기나 들면 어떡하자고, 킁 킁."
노파는 다시 들어와서 또 푸념을 하고 대어들어 손수 아사녀에게 굳이굳이 새옷을 입히고 말았다.
"자 인제 안방으로 가서 거울이나 좀 보구려. 아까보다 아주 딴사람이 되지를 않았나. 그야 말짝으로 꽃도 같고 달도 같구려, 킁 킁. 저런 인물은 서라벌이 넓다 해도 없겠구려, 으흐흐."
노파는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세상에 제 것을 주고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사녀는 그 노파의 선심이 눈물을 흘릴 만큼 고마웠다.
"이젠 그만하면 참뼈〔眞骨〕귀인 아가씨라도 뺨치게 더 어여쁘게 되었소, 킁 킁."
노파는 아사녀를 당경 앞에 데리고 와서 모로도 세워 보고 바로도 세워 보고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매우 만족해하였다.
"여보 젊으신네, 그 먼 길을 왔다니 노독인들 좀 나셨겠소, 킁 킁. 보다시피 우리집에야 누가 있소. 나는 자식도 없는 불쌍한 늙은이라오. 어미같이 알고 우리집에 있구려. 나도 딸같이 며느리같이 젊으신네를 여길 테니. 그래 다리를 쉬어 가지고 어디 갈 데가 있으면 다시 가도 좋을 것 아니오."
"고맙습니다만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원 나중에는 별소리를 다 하는구려, 킁 킁. 폐가 무슨 폐란 말이오, 킁 킁. 늙은 것이 혼자 있자니 고적할 때도 많고, 심심할 때도 많고. 피차에 의지삼아 지내 봅시다그려……."
"이렇듯 고마우신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잘 갚을는지……."
아사녀는 진정으로 사례사례하였다.
"은혜 갚을 것을 어떻게 생각한단 말이오, 킁 킁. 내가 어디 받을 것을 생각하오. 그저 조그마한 사피를 보아 주는 게지. 우리 신라는 인정의 나라, 곤란한 형편에 있는 이를 구해 주는 게 떳떳한 일. 그걸 무슨 은혜니 뭐니 애당초에 염두에도 두지 말란 말이오, 킁 킁."
아사녀는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석가탑이 이룩될 때까지 몸담아 있을 데를 얻은 것이 어떻게 다행한지 몰랐다.
그 노파는 서라벌에 유명한 뚜쟁이 '콩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