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22

그 노파의 집은 비록 초가집일망정 겉보기도 아담스러웠거니와, 안치장이 으리으리한 데 아사녀는 놀랐다.
아랫목과 드나드는 문만 남겨 놓고 벽이 보이지 않도록 가지각색 장롱과 세간이 그득 들어 쌓이어 크나큰 방이 좁다랗게 보이었다. 더구나 그 비싼 당경(唐鏡)이 여기저기 아무 데나 걸려 있어 이편을 보아도 허술한 제 모양이 엿보이고, 저리로 돌아보아도 제 거지꼴이 나타나는데 아사녀는 눈이 어리둥절하였다. 꽃무늬 놓은 돗자리도 어떻게 곱고 정결한지 흙과 때가 덕지덕지 묻은 옷과 걸레가 다된 버선으로 차마 앉기가 황송하였다.
"이렇게 털썩 앉아요, 킁 킁."
노파는 어쩔 줄 모르는 아사녀의 손목을 끌어 거의 잡아 낚아채는 듯이 앉히고 말았다.
"잠깐만 기디리오, 킁 킁. 내가 나가서 밥상을 가져올게."
노파는 힝하니 나가 버린다.
집은 호화롭게 꾸며 놓았지만 인기척은 없고, 과연 그 노파 말마따나 사내의 그림자란 얼씬도 않는 것이 아사녀에게 얼마쯤 안심을 주었다.
아사녀는 홀로 앉아서 무료한 김에 맑고 바르게 잘 비치는 거울을 보고 또 보았다.
거울을 본 지도 달포가 넘었다.
제 꼴이 이렇게 될 줄이야, 이 꼴을 하고 갔으니 문지기가 문전축객을 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얹은 머리가 빠져 뒤로 떨어지고, 귀밑머리조차 풀리어 푸스스 일어선 모양이 제가 보아도 정말 사나웠다. 때에 절다가 못해 헤져서 너불너불하는 옷자락. 더군다나 어젯밤에 얼굴을 씻노라고 씻었건만 목덜미와 귀밑 언저리에 물기 간 데는 지렁이 지나간 자국 같고, 그 양 가는 땟국이 지르르 흐르다가 그대로 말라붙은 꼴이란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얼굴도 환형이었다. 여윈들 이토록 여위랴. 볼이 쪽 빨아든 탓인가, 입은 새 부리처럼 내민 것 같다. 관자놀이맥이 어떻게 저렇듯 드러났으며 콧마루까지 뼈가 앙상하게 솟은 듯하다.
그러나 파리한 것은 오히려 두 번째였다. 눈살어림에 가는 금이 여러 가닥 긁히고 이마에도 잔금이 긁혀서 찌푸리지 않아도 눈에 띄게 되었다. 한 달 동안에 나이 몇 살을 더 먹은 듯. 아무리 친숙한 이라도 지나치면 몰라보게 되었다.
한 달 만에 내가 보는 내 얼굴도 이렇게 서툴거든 삼 년이나 못 보신 이 얼굴을 알아보실까. 어리고 앳된 아사녀는 간 곳 없고 슬픔과 고생에 파김치가 되어 바스러진 이 얼굴을 알아보실까. 서라벌 여자를 보시던 안목으로 이 꼴을 보면 반눈에나 차시랴. 더러운 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아사녀가 끝없는 회심한 생각을 자아내고 있노라니 그 노파는 어느결에 밥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킁 킁, 원 찬이 있어야지. 시장은 하실 테고 부리나케 하느라고 뭐 차릴 수 있어야지. 늙은이 솜씨는 다 이렇다오."
노파는 연해 너스레를 떠는데, 아사녀는 진 반찬 마른 반찬을 갖추갖추 담은 숱한 그릇만 보고도 어마 싶었다. 접시와 주발 뚜껑을 벗기는 대로 구수하고 맛난 냄새가 주린 창자를 거의 뒤틀리게 하였다.
"자, 이 국물부터 훌훌 자시구려. 마른 속에 단단한 것은 나중 자시고, 킁 킁."
"노인께서는 진지를 어떡하셨어요."
아사녀는 뱃속에서 들이라고 발버둥을 치건만, 가까스로 인사를 차리었다.
"킁 킁, 내 걱정을랑 마시고 얼른 자시구려."
아사녀는 무엇을 먹어 보아도 진미였다. 개중에는 이름도 모를 반찬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사녀는 밥을 먹는 사이에 노파는 상머리에 앉아서, 이걸 자셔 보오, 이것은 여기 찍어 먹는 거라오, 하면서 자상스럽게 먹는 법까지 일러주었다.
아사녀가 함포고복을 하고 물러앉자 노파는 또다시 늘어놓았다.
"인제 조금 쉬어 가지고 목욕을 좀 하시구려, 킁 킁. 젊으신네가 아무리 객지에 나왔기로 땟국이 줄줄이 흘러 가지고 어디 되었소. 내 물을 좀 데워 드릴까? 우리집에 왕만한 대야가 있다오. 그 대야는 사람 둘이라도 넉넉히 들어앉을 수 있다오, 킁 킁. 우리집이야 어디 올 사람이 있나. 아무리 발가숭이가 된대도 볼 사람은 나 하나뿐인걸 뭐, 킁 킁. 정 미심다우면 사립문이라도 걸어주께, 응."
그 노파는 마치 제 딸이나 된 듯이 아사녀의 등을 뚝뚝 두드리다가 별안간 코를 싸쥐고,
"에이 냄새도 흉하군, 킁 킁. 그 헌털뱅이 옷을랑 벗어 버리오. 내 옷 한 벌 주께, 응."
말씨도 벌써 무관해져서 가끔 존대와 하대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리고 선뜩 일어나 장 속을 뒤적뒤적하더니 옷 한 벌을 내어다가 대수롭지 않게 아사녀에게 안기고는 상을 들고 나가며,
"내 물 데워 놓으리다."
한다.
그 옷은 진짜 당나라 비단 웃옷과 속속들이 능라주단으로 쏙 빼낸 것이다.
아사녀는 옛이야기에 듣던 용궁에나 들어온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