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녀는 그 노파에게 끌려 일어나다가 말고 다시금 물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침 햇발을 받은 물결 위엔 무수한 금별, 은별이 수멸수멸 춤을 추는데, 동쪽 언덕에 우뚝우뚝 서 있는 수양버들 몇 주가 그 축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퍼더버리고 제 본형체보다 어마어마하게 길게 가로누웠고, 건넛마을 초가지붕 몇 채가 거꾸로 떠보이었다.
아무리 눈을 닦고 또 닦아 보아도 탑 비스름한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을 이렇게 골똘히 들여다보시오, 킁킁. 그 못 속에, 원, 무엇이 있단 말이오."
노파도 덩달아 못 속을 들여다보다가 아사녀에게 물었다.
아사녀는 대꾸도 않고 휘넓은 물 얼굴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었다.
"무엇을 빠뜨렸소, 킁 킁. 저렇게 밑바닥이 환히 보이는 듯해도 그 못물이 어떻게 깊은데, 킁 킁. 무엇을 빠뜨렸다면 건져 내기는 가망 밖이오, 킁 킁."
"아녜요, 아무것도 빠뜨린 것은 없어요."
"그러면 무엇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단 말이오. 시장은 하다며, 킁 킁."
"그림자를 찾아요."
"그림자를 찾아? 킁 킁."
하고 노파는 얼굴을 번쩍 들어 아사녀를 다시금 훑어보았다. 암만해도 이 계집이 약간 가기는 갔구나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곡한 얼굴과 샛별 같은 눈매가 암만해도 미친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림자란 대체 무슨 그림자요. 아까 눈을 막 비비면서도…… 킁 킁. 그림자라길래 나는 잠꼬댄 줄로만 알았더니, 그러면 그 그림자가 무슨 곡절이 있구려. 도대체 어떤 그림자를 찾으시오."
"저어…… 저어……."
아사녀는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이렇게 정답게 굴고 마음 좋은 늙은이를 속이기도 무엇하였다.
"저어, 석가탑 그림자 말씀예요."
"석가탑 그림자?"
하고 노파는 더욱 수상하다는 듯이 아사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석가탑이라면 지금 불국사에서 이룩하는 큰 탑 말이구려, 킁 킁."
"녜, 그래요."
노파는 누구에게 눈짓이나 하는 듯이 눈을 껌벅껌벅한다.
이것은 제 비위에 틀리거나 또는 제 생각 밖의 일을 당할 때 그의 하는 버릇이었다.
"석가탑 그림자는 왜 찾으시오."
"그 탑이 다 되었나 덜 되었나 그림자를 보아야 알 것 아녜요."
아사녀는 노파와 수작을 주고받으면서도 그의 눈길은 못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제 생각만 하고 성가신 듯이 불쑥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노파의 눈은 더 유난스럽게 껌벅거렸다. 아사녀의 말은 갈수록 그에게 수수께끼요, 또 약간 비위에도 거슬린 탓이리라.
"여보 젊으신네, 그 탑이 다 되고 덜 된 것은 알아서 또 무엇 하오, 킁 킁."
그 노파는 제 비위를 누르고 다시 한번 아사녀의 속을 떠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잡고 있던 아사녀의 손목을 슬며시 놓아 버렸다.
"그럴 일이 있어요. 그 탑 다 된 것을 꼭 알아야 될 일이 있어요."
아사녀는 그래도 물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였다.
"킁 킁, 그래, 그 탑 그림자가 여기 비칠 줄 어떻게 꼭 아시오."
그제야 아사녀는 놀란 듯이 노파를 돌아보았다.
"그럼 비치지 않고요?"
"여보 젊으신네, 아니 여기가 어딘 줄 아오. 불국사에서 예까지 오자면 몇 리나 되는지 알기나 하오, 킁 킁. 말인즉은 십 리라 해도 거의 시오 리나 될 것이오. 설령 십 리만 된다 해도 십 리 밖에 있는 석가탑 그림자가 이 못에 비치다니 될 뻔이나 한 말이오, 킁 킁."
"그러면 비치지 않는단 말씀예요?"
아사녀는 열이 나서 노파의 말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이 늙은이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어림도 없는 말이오. 십 리 밖 그림자가 비치다께, 킁 킁. 바로 그 탑이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나 된다면 혹시 모르지만……."
"이 못 이름이 그림자못이 아녜요."
"못 이름이야 그렇지만."
아사녀는 이 늙은이가 사람은 좋아도 그림자못 내력은 잘 모르는구나 하였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가 다 비친다고 그림자못이라 하였거늘, 십 리 안팎 그림자가 아니 비칠 리가 있으랴.
아사녀는 이 말을 하고 싶었으나 시장기가 너무 져서 말할 기력도 없었다. 말없이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으려 할 때 그 노파는 놓았던 손을 다시 잡으며 애연한 듯이,
"여보 젊으신네, 그림자를 찾는다 해도 우리집에 가서 요기나 하고 찾으시오, 킁 킁. 허기가 너무 지면 눈에 헛것이 보여 정말 찾을 것도 못 찾는 법이라오."
아사녀도 그 말은 옳게 여기었다.
너무 허기가 진 탓에 눈이 핑핑 내어둘리어 정작 보일 그림자가 안 보이거니 생각하고 그 노파를 따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