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젊으나젊은 이가 길바닥에서 이게 무슨 잠이란 말이오. 킁 킁."
누가 등을 흔들며 자꾸 깨우는 바람에 아사녀는 겨우 잠을 깨었다. 턱없는 안심으로 지치고 지친 피로가 잠을 퍼부어 밤새도록 나무등걸같이 내처 자고 만 것이다.
어느덧 곤한 눈시울이 섬벅섬벅하도록 햇발은 부시게 떠올랐다.
아사녀는 눈을 비비면서도 뎅겁을 하고 일어앉으며 첫밗에,
"그림자!"
하고 소곤거렸다.
"킁 킁, 그림자? 여보 일어나는 맡에 그림자는 뭐요, 으흐흐."
웃는 소리에 아사녀는 힐끗 제 옆을 보았다. 거기는 늙수그레한 여편네가 빨던 걸레를 쥔 채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사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털은 희끗희끗하나마 육색 좋은 얼굴은 기름기가 질질 흐르고 관자놀이는 옴쑥 파고들어갔으나 두 뺨은 이들이들하다.
"킁킁, 그래 얼토당토 않은 그림자는 왜 찾소. 에그 가엾어라. 저렇듯 옥 같은 얼굴이 아까워라, 킁 킁."
늙은이답지 않게 눈웃음을 쳐가며 연신 콧소리를 내었다.
아사녀는 잠이 완전히 깨자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듣는 데서 다짜고짜로 그림자를 찾은 것이 무색하였다.
"그래 그림자는 무슨 그림자요, 킁 킁."
그 늙은이는 짓궂게 아사녀를 놀리는 듯한 눈초리로 연거푸 묻는다.
"아녜요, 잠꼬대예요."
하고 아사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상긋 웃었다. 초대면한 이분에게 그림자 내력을 일러 들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도 저렇게 어여쁘고 목소리도 저렇게 상냥스럽고…… 킁 킁…… 그러면 내가 잘못 생각을 하였나."
늙은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유심히 아사녀를 훑어보았다.
"여보 젊으신네,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하고 다시 정중하게 묻는다.
"부여에서 오는 길이에요."
아사녀는 제 본색을 감출 까닭은 조금도 없었다.
"킁 킁, 부여에서?"
그 늙은이는 깜짝 놀랐다.
"젊으나젊은 이가 그 먼 길을 어떻게 오셨단 말이오, 킁 킁. 그래서 옷꼴이 그 모양이었구먼. 난 그 옷꼴 하며 언덕배기에 자는 꼴 하며 실성한 인 줄로 알았구려.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깨워나 볼까 하고 흔들어 본 거라오. 그러면 지나가는 나그네로 서라벌에는 아는 집도 없는가 보오구려."
하고 그 노파는 제 혼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생후 처음 온 곳이라 아는 집이라곤 없어요."
"오 그렇구먼, 오 그래, 킁 킁. 아이 가엾어라. 젊으나젊은 이라 잘 데도 만만치 않아서 한동을 한 거로구려, 킁 킁. 아이 가엾어라. 그 좋은 얼굴이 저렇게 파리한 걸 보면 굶기도 많이 굶었겠구려. 아이 딱해라. 지금이라도 시장치 않으시오, 아이 불쌍해라."
그 노파는 애처로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뿐만 아니라 온 얼굴까지 찌푸려 보이었다.
아사녀는 시장치 않으냐 하는 말을 듣고 나니, 그 말이 떨어지기를 등대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일어났다.
어제 낮에 밥 한술을 얻어먹고 여태까지 빈속이니 허기가 아니 날 수 없었다.
"참말 배가 고파요."
아사녀는 기이지 않았다. 비록 처음 보는 이라도 어떻게 친절하고 다정스러운지 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듯이 생각되었다.
"킁 킁, 배가 고프고말고, 아이 가엾어라. 자, 그러면 우리집으로 가요. 여기서 얼마 되지를 않으니, 킁 킁."
하다가 노파는 일어서서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길 봐요. 저기 수양버들이 보이지 않소. 벌써 잎사귀가 누렇게 된 저 버드나무 말이오, 킁 킁. 그 뒤에 조그마한 집이 보이지 않소. 그게 바로 우리 집이오. 자, 어서 갑시다. 찬 없는 밥이나마 요기를 하시게, 킁 킁."
노파는 성화같이 재촉을 하였다. 아사녀는 선뜩 몸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이젠 날이 다 밝았으니 첫째는 석가탑 그림자를 찾아보아야겠고, 둘째는 도중에 하도 여러 번 겪어 본 노릇이라 이 지나친 동정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어서 일어서구려. 왜 오금이 붙어서 잘 일어나지지를 않소, 아이 딱해라, 킁 킁. 자아, 내 손을 잡고 일어서구려."
하고 노파는 아사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손은 늙은이 손으로는 너무 덥고 힘이 세었다.
"꺼릴 건 조금도 없소. 젊은 몸이라 염려가 안 될 리도 없지만 우리집에는 아무도 없소. 영감도 없고 자식도 없는 불쌍한 늙은이라오. 우리집에는 사내꼬불이란 약에 쓰려도 없다오, 킁 킁."
그 노파는 화경같이 아사녀의 속을 꿰뚫어보는 듯 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