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16

"누가 문을 뚜드리는 것 같구나."
털이와 허튼소리를 주고받으나마, 찢어질 듯이 긴장한 주만의 신경은 그윽한 소리라도 귓결에 울려 왔던 것이다.
털이도 귀를 기울이며,
"글녓시오, 그 문을 뚜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하고 의아해한다.
별당문이란 바로 뒷길로 통한 것이므로 한 달에 몇 번씩 쓰레기를 쳐낼 적에나 쓰는 문이요, 별로 사람이 통행하는 문은 아니었다. 이마적해서는 주만이가 집안 사람 몰래 불국사 출입에 가끔 쓰기는 하였지만.
"그 문으로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혹시나……."
주만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혹시나 아사달님 신변에 또 무슨 일이 생겨서……."
"글녓시오, 쇤네가 한번 차돌이더러 별당을 찾으려거든 이러저러한 골목으로 들어와 뒷길로 통한 중문을 넌지시 뚜드려 보라고는 일러 주었습지요만."
"그럼 차돌인지도 모르겠구나. 얼핏 나가서 문을 열어 보려무나."
"차돌이가 아니고 딴사람이면 어떡해요."
"아직 햇구멍도 막히지 않았는데 설마 무슨 다른 변이야 생기겠니."
털이는 용기를 내어 바시시 몸을 일으켜 나갔다. 뜰 위에 짤짤 신 끄는 소리가 나고 중문이 덜컹 하고 열리자마자, 털이는 뎅겁을 하고 뒤짚어 뛰어들어오며 숨찬 소리로,
"아가씨, 아가씨!"
하고 연거푸 불렀다.
주만도 몸을 소스라쳐 방에서 급히 마주 나오며,
"왜? 또 무슨 일이 생겼느냐."
하고 채쳐 물었다. 털이는 가뜩이나 달라붙은 목을 자라처럼 더 옴츠려 붙이고, 새빨개진 얼굴을 바로 들지를 못한 값에 그 촉 쳐진 뺨이 벙글벙글 피어나는 꽃과 같다.
"왜 그러느냐. 방정맞게."
"저, 차돌이가 왔는뎁시오."
"응, 차돌이가 왔어! 범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만. 왜 얼른 들어오라지를 않니."
"……"
그 재재거리던 털이도 입을 닫히고 몸둘 곳을 모르는 듯 고개만 가볍게 도리질을 한다.
"인제 새삼스럽게 무에 그리 부끄러우냐. 난 네가 너무 방정을 떠는 바람에 또 가슴이 덜석 내려앉았구나, 호호."
주만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나서,
"어서 들어오라고 하려무나."
"싫어요, 쇤네는 싫어요."
하고 그대로 섬돌에 올라서더니 나는 듯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한구석에 고개를 처박고 숨어 버린다. 마치 꿩이 제 대가리만 숨기는 격으로.
"원, 그 애는, 호호."
털이의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톡톡히 나무랄 수도 없었다.
주만이가 댓돌을 막 내려서려고 할 때에 차돌은 조용조용히 뜰 안까지 들어와 주만의 앞에 합장배례하였다.
주만은 다시 마루로 올라오며,
"오 차돌이냐, 너 참 잘 왔구나. 어서 올라오려무나."
차돌의 두 뺨도 꽃물을 들인 듯하다. 열다섯 살로는 숙성한 편이었으나 그 여상진 얼굴은 어리디어려 보이었다.
'저것들도 벌써 사랑을 아는구나.'
하매 주만이 저는 제법 노성한 듯이 자깝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그들의 사랑은 우리보다 얼마나 더 수월하고 자유로운지 모른다.'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였다.
차돌이가 몇 번 멈칫멈칫하다가 웃방으로 들어오게 되자 털이는 다시 마루로 달아났다.
"아사달님이 그래 어떠하시냐? 저번 밤 야로에 다치신 데나 없으시냐?"
주만은 차돌이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다짜고짜로 물었다.
"천만다행으로 다치신 데는 별로 없다고 하셔요. 다만 동여매인 자리가 얼얼하시어 팔 쓰시기가 전만은 못하다고 하셔요."
"그러면 결박까지 지었던가."
주만은 새로운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그러면입시오. 그 나쁜 놈들이 아사달 스님을 칭칭 동여매고, 이리 차고 저리 굴리고 하는 판에 우리 용돌 스님이 뛰어드셨지요."
"용돌 스님? 말인즉은 두 분 신장이 나타나서 아사달님을 구해 내었다는데."
"그러면 자세한 얘기는 아직 다 못 들으셨군요. 그 두 분 신장의 한 분이 곧 용돌 스님이에요. 그 스님은 워낙 검술이 도고하시어 천하에 별로 당할 이가 없다시지만, 그날 밤 마침 그 스님을 찾아오신 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어른의 검술은 또 용돌 스님의 선생님이시라니까요."
"오 옳지, 옳아. 그럼 그 두 분이 아사달님을 구하셨네그려. 신장이 아니라……."
"신장이란 말은 괜히 지어낸 소립지요. 용돌 스님과 아사달 스님께서 소승더러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쉬쉬하시기 때문에 말경엔 그런 헛소문까지 난겝지요."
"그러면 그 또 한 분은 누구시라던가?"
주만은 제 사랑의 위기를 구해 낸 은인의 명자를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