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15

주만은 바늘방석에나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사달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자기 때문이 아니었던들 그런 곤욕을 당할 까닭이 만무한 노릇이 아니냐. 차라리 그런 줄 알았으면 그날 밤에 회정을 말 것을. 아무리 기막힌 망신이라도 같이 겪을 것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이의 앞에 막아설 것을!
새록새록이 살이 떨리기는 금성의 행동이었다. 저와 나와 무슨 업원이 그대도록 맺히었던고. 한번 그만한 창피를 보았으면 으레 단념을 할 것이거늘, 끝끝내 남의 뒤를 밟고 안타까운 사랑에까지 헤살을 놓으려는 것은 그 무슨 못된 심청인고. 분한 대로 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필마단도로 저의 집에 지쳐 들어가, 그 구축축하고 더러운 생각이 도는 머리를 뎅겅 베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
"애규, 아가씨, 무슨 눈을 그렇게 무섭게 뜨십시오."
앞에 앉았던 털이는 질색을 하였다.
"금성이 소위가 분해서 견딜 수 없구나."
주만은 쓴웃음을 웃고 꼿꼿이 세운 눈썹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누이었다.
"아무리 분하신들 어쩌자는 수가 있어얍지요."
"그도 그렇다마는……."
"쇤네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더 걱정되는 일이 있는뎁시오. 금성 서방님이……."
"금성 서방님이 다 뭐냐. 금성이라고 마구 불러라. 그런 위인을 위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구나."
"그럼 금성이갑시오. 아사달 서방님과 아가씨가 그렇구 저렇다는 소문이나 퍼뜨리지 않을깝시오."
"소문쯤 퍼뜨리는 거야 하상대사냐."
"저희들이 들이쳐 보아도 알마침 아가씨께서 계시지를 않으셨으니까 말썽을 부릴래야 부릴 건덕지가 없지마는 얼마 동안 불국사 행차는 정침을 하셔야 될걸입시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구나. 아사달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 어디 견딜 수 있느냐."
"안 됩니다, 안 되고말곱시오. 단 며칠이라도 지나서 그 소문이나마 쑥진 뒤면 몰라도 지금 만약 행차를 하셨다가 혹시 중의 눈에나 띄어 보십시오. 당장에 해괴한 소문이 퍼질 것 아닙시오. 그 유부녀라는 게 아가씨로 지목이 될 것 아닙시오."
"딴은 네 말도 그럴듯하다마는 어디 궁금해서 견딜 수 있느냐. 그럼 너 혼자라도 잠깐 다녀올 수 없느냐."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쇤네가 가도 유표하게 보일 것은 마찬가지 아닙시오. 더구나 아가씨를 안 모시고야 그 어두운 밤길을 어떻게 갈 수 있어얍지요."
털이는 그 동그란 눈을 더욱 호동그랗게 떠서 무서움에 떠는 시늉을 해보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주만의 생각은 석가탑으로 살같이 닿건마는 털이가 종시 말을 아니 듣고 말리기도 하였거니와, 더구나 사초부인이 혼인 옷마름질을 조용한 별당으로 가져와서 밤늦도록 하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루는 저녁 나절 주만은 털이를 보고 간청하다시피 하였다.
"얘 암만해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구나. 오늘은 세상없어도 좀 가봐야겠다."
"글녓시오."
하고 오늘따라 털이는 굳이 말리지를 않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글쎄가 뭐냐. 가면 꼭 가야지."
주만은 일부러 화증을 더럭 내었다.
"벌써 여러 날이 되었으니 혹시 올까 하곱시오."
하면서 털이는 고개를 탁 숙이었다.
"오기는 누가 온단 말이냐. 아사달님이 온단 말이냐?"
"아닙시오, 저어……."
웬일인지 털이는 숙인 목덜미가 발그스름해진다.
주만은 수상쩍다는 듯이 털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니까 털이는 더욱더욱 고개를 외우시는데, 그 뺨 언저리가 꽃불을 담아 부은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하였다.
"누가 온단 말이냐. 말을 해야 알 것 아니냐."
주만은 더욱 괴이쩍어하며 또 한번 채쳐 물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매정스러울깝시오. 벌써 여러 날이 되어 쇤네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
하고 털이는 아주 얼굴을 뒤로 돌려 버린다.
"누가 매정하단 말이냐."
주만은 다시 채쳐 묻다가,
"오, 옳지, 차돌이 말이로구나."
스스로 깨우치고 오래간만에 얼굴을 펴고 웃었다.
"우리는 못 갈 사정이 있어 못 가나마 저는 어연듯이 와볼 수 있을 것 아닌갑시오. 그런데 당초에 올 생각도 않으니 그런 매몰한……."
"호호, 딴은 차돌이가 왔으면 얼마쯤 궁금한 생각이 풀리기도 하겠다마는……."
주종이 이런 수작을 주고받을 때에 별당문을 가만가만히 뚜드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