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의 점심상을 물려 가지고 하인청에 갔던 털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구는 듯 들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크, 큰일났는뎁시오."
"무슨 큰일?"
주만도 마음에 키이는 것이 있는 판이라 깜짝 놀랐다.
"그저께 밤에 불국사에 큰 야료가 생겼다는뎁시오."
"응!"
"그날 저녁에 아가씨께서 돌아서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큰 봉변을 당할 뻔한걸입시오."
"암만해도 그 등불이 수상쩍더니 그예 무슨 일을 내었구나. 그래 무슨 야료가 어떻게 생겼다더냐."
주만은 초조한 듯이 채쳐 물었다. 저번 밤 석가탑 사다리를 내려설 때 맞닥뜨린 사람의 그림자가 종시 마음에 키이고 꺼림칙한데다가, 그날 저녁에 또다시 그 수상한 등불을 보고 나니 섬뜩한 생각이 들어서 걸음이 내켜지지 않았었다. 더구나 겁쟁이 털이가 조바심을 하고 회정하기를 조른 탓에, 그 등불이 멀리 사라진 뒤 말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 버렸던 것이다.
"그날 저녁 쇤네가 그렇게 아가씨를 조르지 않았던들 어느 지경에 갔을지 지금 생각해도 오마조마한뎁시오."
아무리 황급한 판에도 털이는 제 공치사를 잊지 않았다.
"그 잘난 공치사는 고만두고 어서 그 얘기나 해라. 갑갑하구나."
"그러니까 쇤네가 아가씨를 모시고 막 돌아온 뒨갑시오. 수십 명이나 되는 군정이 석가탑을 에워싸고 아사달 서방님을 마구잡이로 끌어내렸다납시오."
"뭐? 아사달님을 석가탑에서 끌어내렸단 말이지."
"그래 가지고 뭇놈이 달려들어 발길질 손찌검을 함부로 했다납시오."
"무슨 까닭일까. 그 어른이 남에게 원한 살 일도 없으실 테고."
"그게 큰일이라 말입시오. 그놈들이 아사달 서방님을 치고 때리며 '계집은 어디로 갔느냐, 이놈 계집은 어따가 숨겼느냐' 소리소리 지르더라니……."
"뭣이 어째!"
주만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리었다.
"그러니 그놈들이 분명 아가씨를 욕보이려고 들이친 것이 아닙시오."
"그래 내 이름을 부르며 찾더라더냐."
"아닙시오. 그건 우스운 거짓말이 퍼졌던뎁시오."
"우스운 거짓말?"
"뭐 아사달님이 유부녀를 꾀내어 석가탑 속으로 끌어들였다납시오. 그래 그 본 사내가 그걸 알고 제 집 구종을 몰아 가지고 들이친 게라납시오."
하고 털이는 입을 배쭉 하며 웃어 보이었다. 주만은 웃을 경황도 없었다.
"그래 아사달님은 어떻게 되셨다더냐."
주만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제일 궁금하였다.
"몹시 다치지나 않으셨다더냐."
"그게 또 이상한 일이란 말입시오. 그놈들이 한창 아사달님을 윽박지르는 판인데, 난데없는 신장 두 분이 나타나서 서리 같은 칼을 휘둘러서 여러 놈을 다 쫓아 버리고 아사달 서방님을 옹위하였납시오. 그래서 아사달 서방님은 손가락 하나 다치신 데가 없으시대요."
"그렇다면 만행이지만 어째 아니 다치실 수가 있겠느냐."
"아니랍시오. 쇤네도 첫째 그 서방님 다치고 아니 다치신 게 궁금해서 여러 번 따져 보았는뎁시오. 워낙 도술이 높으신 어른이라 신장을 마음대로 부리시는 터이니 조금이라도 상하실 리 없다고들 하던뎁시오."
"그게 어디 종잡을 수 있는 소리냐."
"아니랍시오. 아무튼 그 이튿날도 탑을 지으시는 정소리가 더 우렁차게 절 안을 울렸다는뎁시오."
"바로 그 이튿날로 다시 일을 잡으셨단 말이냐. 그러면 크게 상하시지는 않으셨던가."
하고 주만은 눈을 멍하게 떠서 천장을 치어다보았다. 그의 넋은 벌써 석가탑 안으로 헤매고 있음이리라.
"대관절 어느 놈들이 그렇게 들이쳤을깝시오."
하고 털이는 주만을 바라보았다.
"쇤네는 유두 전날 불국사 가시는 길에 고두쇠란 놈을 만나신 것이 암만해도 불길한 것 같은뎁시오. 그럴싸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 저녁 등불을 들고 달아난 녀석도 그 키꼴 하며, 걸음걸이 하며 천연 고두쇠놈 비슷한 생각이 드는뎁시오."
주만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야 못난이 금성이 장난이 분명하지마는, 나는 그 신장 두 분이 누구신지 궁금하구나."
"그건 신장이라는데 누구신지를 어떻게 안단 말씀입시오. 바로 그날 밤에 목도한 중의 얘기라는뎁시오. 신장이 아니고는 칼을 그렇게 잘 쓸 수도 없고, 또 사람을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 신장의 소위가 아니냐 하던뎁시오."
"신라에 아직 사람이 있구나."
하고 주만은 혼자말같이 중얼거리고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