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사나운 언사와 표독한 태도로 으르딱딱거리고 훌뿌려도 그대로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는 아사녀의 처지였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일어선 아사녀는 조용히 눈을 들어 날뛰는 문지기를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제가 죽더라도 여기서는 죽지 않을 테니 그런 염려는 놓으시고……."
"바로 그렇다면 몰라도."
문지기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티를 넣었으나 고개는 역시 뒤로 잔뜩 제치었다. 자기를 쏘아 오는 그 맥맥한 눈길을 마주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염렬랑 마시고 제 청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그건 또 무슨 청이란 말이오."
문지기는 얼굴을 외우신 채로 말투는 역시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욕설만은 빼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첫째 아사달님이 몸 성히 잘 계시온지."
"사대육신이 튼튼하다오."
"식사나 잘 하시는지."
"고량진미에 파묻히어 발기름이 올랐다오."
"그러면 그 어른께 전갈 한마디만 전해 주세요. 부여땅에서 아사녀가 왔더라고."
"그건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안 되오, 안 돼!"
"아니 오늘로 서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사녀가 찾아왔더라는 말이나마 전해 달란 말씀예요."
"안 되오, 안 돼. 그러면 젊은 사람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그런 대공을 반둥건둥 해버릴 것 아니오?"
아사녀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한동안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러면 그 탑이 다 이뤄진 다음에 그 말씀을 전해 주시면 어떠하실지."
"그것도 안 되오, 안 돼. 바쁜 사람이 누가 그걸 다 명념을 하고 있단 말이오."
하고 문지기는 외우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그 청쯤은 들어주어도 좋으련만 버티는 김에 그대로 내버티고 만 것이다.
"그것도 못 하신다면…… 그러면 대체 그 탑이 언제나 끝이 날까요."
"언제 끝날지 누가 안단 말이오."
하고 문지기는 또 내어밀다가 오래 실랑이를 하는 것도 귀찮아서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아마 쉬이 끝이 나기는 날 거야. 삼 년이나 걸렸으니."
아사녀는 절망의 한 그믐밤 가운데 한 가닥 광명을 얻은 듯.
"그럼 그 탑이 끝나면 제가 다시 와도 괜찮을 것 아녜요?"
"그야 그렇지만……."
"그러면 날마다라도 오지요."
"안 되오, 안 돼."
문지기는 펄펄 뛰었다. 이런 성가신 손님이 매일 와서야 배길 노릇인가.
"오늘만 해도 처음 왔기에 망정이지, 두 번만 왔더래도 벌써 십 리 밖으로 끌어내치는 거란 말이야. 여자의 더러운 몸이란 멀리 비치기만 해도 부정을 타는 거요. 그 탑이 꼭 다 된 것을 보고 오란 말이오."
아사녀도 악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제가 어디서 그 탑이 다 되고 안 된 것을 보고 온단 말씀예요. 온, 그 탑 그림자라도 보아야 알 것 아녜요."
"그림자라도 보아야……."
하고 문지기는 말책을 잡았으나, 아무리 언변 좋은 그로도 여기는 말이 막히었던지,
"그림자, 흥, 그림자……."
하며 몇 번을 곱삶다가 문득,
"오 옳지, 되었다, 되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기 깐에는 신기한 생각이 언뜻 떠오른 모양이었다.
"여보, 아주먼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여기서 훤하게 내다보이는 저 길이 있지 않소?"
하고 아주 친절스럽게 아사녀에게 언덕배기 한복판으로 뚫린 흰길을 가리켜 보였다.
"저 길로 자꾸만 내려간단 말이오. 한 십 리만 가면 거기 그림자못〔影池〕이란 어마어마하게 큰 못이 있소. 그 못에는 이 세상에 어느 물건치고 아니 비치는 게 없단 말이오. 지금 아사달이가 짓는 석가탑 그림자도 뚜렷이 비칠 거란 말이거든. 자 그 연못에 가서 기다려 보오."
하고 어떠냐 하는 듯이 문지기는 배를 쑥 내어밀며 아사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생판으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과연 거기는 둘레가 십 리에 가까운 크나큰 못이 있고, 물이 거울같이 맑아서 모든 그림자가 잘 비친다 하여 그림자못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장 가보아도 그 탑 그림자가 비칠까요?"
아사녀는 기연가미연가하여 또 한마디 재차 물었다.
"암, 여부가 있소.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문지기는 또다시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사녀는 선뜻 돌아섰다. 정녕 그렇다면 제 남편이 짓는 탑의 그림자라도 보기가 한시가 급하였던 것이다.
아사녀가 새로운 기운을 얻어 허전허전 몇 걸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문지기는 무슨 생각이 또 났던지, 등뒤에서 "여보, 여보" 하고 다시 불렀다.
아사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런데 그 못은 참으로 영검스러워서 다 된 물건의 그림자는 비치어도 덜 된 것은 비치지 않는다오. 그 탑도 그림자가 나타나야 다 된 것이지, 그림자가 비치지 않거든 아직 덜 된 줄로 아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