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없어도 남편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외곬의 마음이 하마하마 끊어질 듯한 목숨을 이끌고 근근 득달한 불국사가 아니었던가.
불국사, 불국사! 그는 몇 번이나 외고 또 외었던고. 그에게는 검님보다도 부처님보다도 더 거룩하고 더 반가운 이름이 아니었던가.
"여기가 분명 불국사요?"
하는 한마디는 마치 영검스러운 주문과 같이 그의 이날 이때까지의 액운과 슬픔과 설움을 쫓아 버리고 넘치는 기쁨과 영롱한 행복을 약속하는 말이 아니었던가.
이렇듯이 믿고 바랐던 이 문전에서 또 악착한 운명이 그를 기다릴 줄이야. 무참한 거절을 당할 줄이야.
아사녀는 하도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문지기는 더욱 기고만장하게 호령하였다.
"아니, 이건 무슨 떼거리를 쓰는 거야. 남의 절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냉큼 갈 데로 가지를 못하고."
"갈 데, 갈 데."
아사녀는 앵무새가 말 옮기듯 두어 번 곱씹다가,
"갈 데가 없어요."
하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 보이었다.
"이건 제 갈 데 있고 없는 것을 뉘게 하소연이야. 냉큼 발모가지나 돌려 세우지 못해."
"……"
아사녀는 대꾸는커녕 대번에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비록 귀하고 넉넉지는 못했을지언정 무남독녀 외동딸로 고이고이 자라나서, 입때껏 외간 남자에게 이런 욕설은 처음 듣기 때문이다.
"저더러 가랬지 누가 쥐어질렀단 말인가, 울기는 왜 쪽쪽 운단 말인고. 원, 신수가 사나우려니까."
하고 얼굴을 외우시고 돌아서서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하는 것은 차마 그 우는 꼴까지는 보기 안된 탓이리라.
한번 쏟아진 눈물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원 저게 무슨 꼴이람. 젊으나젊은 여편네가 왜 남의 절 문전에서 말썽을 부리는 거야."
문지기는 말로는 빈정거려도 아사녀의 눈물만은 무서운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아사녀는 흑흑 느끼는 소리로,
"여봅시오, 여봅시오. 정 제가 들어가서 아사달님을 뵈올 수도 없고, 또 아사달님이 저를 나와 보실 수도 없다면…… 그러하다면 저는…… 저는……."
말끝은 껄꺽거리는 울음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하다면 어떡한단 말이오. 원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오."
문지기의 빗새는 말씨도 얼마쯤은 부드러워졌다. 아사달 미운 생각에, 그보다도 책망 들은 것이 분한 김에 얼음장같이 닫혀진 그의 가슴에도 실낱 같은 동정심이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제 맡은 직책상 아사녀의 소청을 들어 주자는 수도 없다.
'구슬아기 모양으로 은이나 몇 냥쭝 넌지시 집어 준다면 마치 모르지만.'
문지기는 털이를 통하여 여러 번 주만으로부터 은과 돈을 받아먹은 것을 속으로 따져 보고, 슬쩍 아사녀의 차림차림을 또 한번 훑어보았다.
꼴이 저 꼴이니 돈 한푼 지니고 있을 성싶지도 않았다.
생기는 것 없고 말썽만스러운 이런 손님은 어서 떼어 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런 판에 슬쩍 저편의 비위를 맞춰 주면 곧잘 말을 듣는 수도 있지만, 섣불리 사정을 보는 척했다가 저편에서 다시 돌아내리는 날엔 더욱 떼치기 어려운 위험이 있다.
아사녀의 느끼는 소리는 뒤를 이었다.
"정 그도 저도 못 하신다면 저는 죽는 수밖에 다시 두수가 없어요."
'아차, 큰일났구나. 이 계집에게는 조금치라도 사정을 보는 척하면 정말 죽는다고 발버둥을 치겠구나. 제야 무에라 하든 그대로 내버려둘걸. 괜히 말참견을 하였거든.'
문지기는 제 목소리 가운데 가장 몰풍스럽고 쌀쌀하고 엇먹는 소리를 골라 내었다.
"죽는다, 어 참 무서운데. 죽거나 뒈지거나 할 대로 하지. 누가 말릴 줄 아는 거야. 죽어 저승에 가서 혼이나 서방을 찾아다니지."
과연 이 말은 영절스럽게 효과가 나타났다. 첫째로 그 여자 거지의 몸이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맑은 눈동자에는 금세 눈물이 마른 듯 반짝 하고 반딧불이 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문기둥을 부여잡고 비슬비슬 일어선다.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내님의 호통에 아니 쫓겨갈 장사가 있나. 인제는 저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돌아서려나 부다.'
속으로 생각하고 문지기는 더욱 기가 나서,
"원 누가 죽는다면 설설 길 줄 아는 거야. 그까짓 목숨이야 열이 없어진들 내게 하상대사냐 말이야."
하고 눈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부릅떠서 아사녀를 부라리었다.
아사녀는 하도 억색하여 제 흉중에 먹은 대로 바로 쏘아본 것이 이토록 이 문지기를 노엽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