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녀는 사자수 푸른 물결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아사달의 이름을 부르짖고 나선 길에 서라벌을 향하였다.
남편이 있는 동쪽 서울을 멀리 바라보고 첫 발자국을 내어디딜 때 지금까지의 절망과 번민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감격과 희망에 그의 마음은 뛰었다. 노자 한푼 없는 외로운 여자의 홀홀단신으로 천리 안팎 머나먼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근심과 걱정도 그의 불 같은 희망을 흐리진 못하였다. 한 걸음 두 걸음 남편 있는 곳이 가까워 온다는 것만 어떻게 신통하고 고마운지 몰랐다.
하룻밤 하룻낮을 그는 꼬박이 걸었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걷는 것이 남편 만날 때를 다가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좀이 쏠아서도 한만히 쉴 수도 없거니와, 팽개 일파가 자기 뒤를 쫓아오는지도 모른다. 만일 머뭇머뭇하다가 그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또 무슨 욕을 어떻게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서라벌로 어서 가자! 불국사로 어서 가자!
그는 염불이나 외듯 하루에도 몇백 번 몇천 번을 '서라벌' '불국사' 하고 속으로 외고 또 외며 아픈 다리를 채찍질하였다.
그러나 사흘, 나흘 지나갈수록 젊은 여자의 먼 길 걷기란 죽기보다 더 어려운 줄 절절이 느끼었다.
갖은 슬픔과 번민과 근심에 부대끼고 쪼들리고, 마지막엔 병에까지 지친 몸이라 아픈 다리도 다리요 부르튼 발도 발이려니와, 첫째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발을 옮기다가 쓰러지고 두 발을 떼어놓다가 고꾸라졌다.
반 나절 한 나절 넘어진 채로 갱신을 못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까무러쳐 가는 기운을 모진 마음으로 얼마든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지닌 것이 없으매 어엿한 주막은 못 들 값에 노자 없는 것은 그의 처음 요량보다는 오히려 큰 고통이 아니었다. 물 한 모금 밥 한 술이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탓도 탓이려니와, 처음에는 입 떼기가 어려웠을망정 요기할 거리를 얻기는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였다.
먹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잠자리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서서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면 더러는 몰인정하게 거절하는 집도 없지 않았으되, 세 집 중에 한 집은 선선히 승낙을 해주기는 해주었다.
"젊으나젊은 이가 어떻게 홀몸으로 길을 떠났소. 아무리 남편이 보고 싶기로 어떻게 그 먼 길을 간단 말이오."
늙은 아낙네 중에는 그의 사정을 들어 보고 측은한 눈물을 떨어뜨리며 반찬 있는 밥을 주고, 일부러 자는 방에 불까지 더 지펴 주는 이도 있었다. 겨우 칠월로 접어들었으니 추울 철도 아니지만, 노독을 푸는 데는 더운 방이 반갑지 않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친절이 값없을 때가 많지를 않았다.
전신만신이 바수어 내는 듯하여 채 깊은 잠은 이루지 못하고 어릿어릿하게 눈이 감길락말락할 적에 찌걱 하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리었다. 언뜩 눈을 떠보면 사내의 그림자가 나타나기가 일쑤이었다.
악을 쓰고, 달아나고…….
팽개와 작지는 부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젊고 예쁜 여자의 살점을 노리는 아귀의 떼는 어디든지 우글우글 끓었다. 그 지긋지긋한 놀람과 고통은 끝끝내 그를 쫓아다니었다.
아사녀는 인제 밤이 되어도 인가에 찾아들지 않았다. 밤은커녕 해가 어둑만 해져도 산모퉁이로만 길을 잡아들어야만 한다.
산등 벗겨진 황토흙 바닥이나, 운수가 좋아야 포근포근한 잔디밭을 얻어 하룻밤을 밝히게 되었다.
호랑이나 이리의 떼보다도 사람이 몇 곱절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니 가뜩이 때묻은 단벌 옷이 이슬에 젖고 풀물이 묻고 흙물이 들어서 갈 데 없는 상거지가 되고 말았다.
가다오다 맑은 시내를 만나도 손으로 움켜 한 모금 해갈은 할지언정 결코 손등도 씻지 않았다. 더구나 얼굴에는 물 한 추기를 올려 보지도 않았다. 될 수 있는 대로 얼굴을 보기 싫도록 흉하도록 하는 것이 이 흉측한 아귀떼의 눈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줄 터득한 것이다.
머리가 아무리 흩어지고 가려워도 손을 대지 않았다. 머리만 반지르르해도 그들의 눈에 뜨일까 보아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저절로 미친년 꼴이 되었다.
이러구러 하루에 십 리 이십 리도 걷고 어떤 날은 사오십 리도 해내어 불국사까지 득달하기에 달포가 걸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