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쇠는 제 주인의 명색을 내세우기만 하면 여간한 사람쯤이야 찔끔을 하고 칼을 거둘 줄 알았었다. 나는 새라도 한번 호령에 떨어뜨릴 만한 서슬이 푸른 금시중의 세도가 아니던가. 이렇게 당당한 세도객의 아드님이란 말을 듣고도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치를 떨며 덤비는 이 난데없는 인물들이야말로 제 상전보담 더 무서운 양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추상 같은 호령과 번개보다 더 빠른 칼끝에 고두쇠의 혼은 반나마 허공에 뜨고 말았다. 선 그 자리에서 오금도 못 떼고 벌벌 떨었다.
"네 말을 듣자 하니 이놈 집 종놈일시 분명하구나. 냉큼 가서 저 석수의 매인 것을 끌러 드려라."
경신은 금성의 머리 위에 칼을 빗기고 선 채 이번에는 고두쇠를 호령하였다.
"녜녜, 지당하신 분부올시다. 끌러 드리고말곱시오."
"이놈 잔말이 무슨 잔말이냐. 이른 말이나 어서 거행을 못 하고."
"녜, 녜."
고두쇠는 연거푸 대답을 하고 인제 제 목이 아니 떨어질 것을 알아차리고 천방지축으로 아사달의 곁에 가서 동여매인 것을 끄르기 부산하였다.
"금성이 듣거라. 너 무슨 원혐이 있관대 저 석수를 엄습하였느냐. 천리타향에 외로운 나그네를 보호는 못 할지언정 깊은 밤에 십여 명씩 오마작대하여 그를 해치려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금성은 제 머리 위에 번쩍이는 칼날을 치어다보며 소태나 먹은 듯이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왜 말이 없느냐. 너도 적이 생각이 있는 놈 같으면 잘못된 일인 줄 모르느냐."
금성은 무어라고 대꾸도 할 수 없고 무어라고 변명할 도리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제가 끌고 온 '장안호걸'들이 원망스러웠다. 이날 이때까지 돈에 술에 밥에 흥껏 한껏 먹였거든 정작 자기가 위태한 경우를 당할 적에는 그대로 꽁무니를 빼고 말다니, 금성은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아무런 쓸데가 없었다. 주만과 아사달을 꼭 잡으려 한 노릇이 제가 도로 잡히고 말 줄이야.
"이놈이 벙어리가 되었느냐. 왜 말을 못 할꼬."
"잘못되었습니다. 그저 살려만 줍시사."
마침내 금성은 비대발괄하고 말았다.
"허허. 나는 금지의 아들이라기에 그래도 그 못된 가시라도 센 줄 알았더니 이런 겁쟁인 줄 몰랐구나. 오냐 살려 주마. 너 같은 인생을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허허."
경신은 한번 껄껄 웃고 나서 빼어 들었던 칼을 칼집에 꽂았다.
칼을 꽂는 것을 보고 다 죽게 된 금성은 조금 피어났으나 너무 놀란 것이 아직 가라앉지를 못하고 새삼스럽게 부들부들 떤다.
고두쇠는 아사달을 끌러 주느라고 한창 곱이 끼이었다.
경신과 용돌은 금성을 내어버리고 아사달과 고두쇠의 앞으로 왔다.
"이놈 어째 입때도 다 끄르지 못했느냐."
용돌이가 허전거리는 고두쇠의 손길을 들여다보며 재촉하였다.
"매듭이 너무 단단히 매어져서 얼른 끌러지지를 않사와요."
"이놈 무슨 소리냐. 저리 비켜나서 관솔불이나 다려라."
"녜, 녜."
하고 고두쇠가 굽실거리는 허리를 채 펴지도 못하고 관솔불을 잡히고 있는데 용돌은 동여매인 이에게 달려들어 칼을 넣어 밧줄을 동강동강 끊어 버렸다.
"어 몹쓸 놈들, 단단히도 동여매었군."
경신은 제 수건으로 아사달의 입과 코에 묻은 피를 닦아 주고 나서,
"자, 일어서 보오. 어디 다른 데 다친 데나 없나."
아사달은 경신의 말을 따라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웬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 좀 걸어 보시오. 절리는 데나 없으신가."
경신은 비호같이 날뛰던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여간 자상하지 않았다.
아사달은 몇 걸음 걸어 보고,
"다친 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 뜻밖에 큰 봉변이오."
하고 저만큼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금성을 돌아보며,
"금성아, 이리 와서 이분께도 잘못했다는 사과 말씀을 드려야 될 것 아니냐."
금성이가 채 오기 전에 고두쇠가 아사달의 앞에 넙죽이 엎드리며,
"그저 죽을 때라 잘못했습니다. 천만 용서하옵시기 바라옵니다."
"옳지 그래, 금성이 너도 네 종의 본을 받아 엎드려 빌어라."
"그저 소인이 서방님 몫까지 한꺼번에 사과를 올립니다."
"안 된다, 안 돼. 염불도 몫몫이란다, 허허."
경신이가 미처 말하기 전에 용돌이가 가로채고 나섰다.
금성은 할 수 없이 아사달의 앞에 꿇어 엎드리고야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