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106

이 난데없는 호통에 여럿은 아사달을 비끄러매고 때리고 차던 것을 그치고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관솔불빛이 거물거물하는 저편에 두 그림자가 뚜렷이 나타나 보이었다.
처음에는 그 우렁찬 호통에 벼락이나 떨어진 듯 깜짝 놀라 사시나무 떨듯 경풍들을 하였으나 저편이 단둘밖에 안 되는 것을 넘보곤 텁석부리가 이 별안간 나타난 방해자들을 향해 한 걸음 내달으며,
"너희놈들은 웬 놈들이냐. 우리는 까닭이 있어 이 석수장이를 문초하거니와 만일 우리 일에 헤살을 놓으면 너희놈들도 용서를 않을 테다."
"이놈들아, 문초할 말이 있으면 조용조용히 물어 볼 것이지 열 놈이나 달려들어 한 사람을 동여매 놓고 무수난타를 하다니 그런 더러운 행동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아무리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세상이기로."
저편의 말씨도 갈수록 우락부락해 갔다.
"우리야 이 석수장이를 뜯어먹든지 삶아먹든지 너희놈에게 무슨 계관이 있단 말이냐."
뒤에 섰던 그림자가 앞으로 나서며,
"이 석수로 말하면 멀리서 오신 손님, 이 땅 이 절을 위해서 탑 둘을 쌓느라고 심혈을 뿌리는 갸륵한 사람, 내가 안 보았으면 모르지만 내가 본 다음에야 이 앞으론 이 사람에게 손가락 하나 다치지 못하게 할 터이다. 빨리 맨 것을 끌러 놓고 너희들은 냉큼 물러가라."
"원, 별 우스꽝스러운 소리도 다 들어 보겠구나. 네 말을 듣고 물러설 우리인 줄 아느냐. 너희나 목숨이 아까웁거든 어서 쥐구멍이나 찾아라."
"어쩐지 오늘 내가 칼을 쓰고 싶더니 너희들의 더러운 피를 묻히게 되는가 부다."
하고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칼을 뽑으려 할 제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앞을 가리어 서며,
"서방님께서는 잠깐만 진정을 하십시오. 저 따위 놈들은 제 혼잣손으로도 넉넉히 처치를 해버릴 테니까요."
두 그림자는 하나는 경신이요, 하나는 용돌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두 동지는 그칠 줄 모르는 서회에 밤이 이슥하도록 수작을 주고받다가 경신이가 돌 쪼는 소리를 듣고 캄캄한 밤에도 일을 한다는 그 신통한 재주를 구경하고자 둘이 나왔던 길이었다.
용돌이가 칼을 뽑아 드는 것을 보고 텁석부리도,
"야 이놈 봐라. 내가 누군 줄 알고 덤비느냐."
하고 같이 칼을 뽑아 들고 대들었다.
그러나 두 칼이 몇 번 어우러지지 않아 텁석부리는 도저히 용돌의 적이 아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자꾸 뒤로 물러서며 쫓기기 시작한다.
제 편의 형세가 불리한 것을 보자 여럿은 아사달을 내버리고 우 몰려들었다.
어지러운 칼날은 어두운 밤빛을 누비질하며 한데 부딪쳐 불꽃을 날리며 쟁그렁쟁그렁 귀가 가려운 소리를 내었다.
"인명을랑 다치지 말게."
경신은 용돌을 주의시키며 차차 그 능란한 칼솜씨를 내어놓았다. 여럿은 두 사람에게 쫓기어 자꾸 뒷걸음질만 치게 될 때 세찬 경신의 칼끝은 선뜩선뜩 지나가며 더러는 귀가 떨어지고 더러는 칼 든 손가락이 잘라졌다.
"에쿠, 에쿠."
비명을 치며 칼을 떨어뜨리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뿔뿔이 다들 헤어져 달아나고 맨 마지막으로 금성과 고두쇠가 남았다. 제 주인의 위기가 각각으로 닥쳐오는 것을 보고 고두쇠는 마지막 수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 어른을 다치면 정말 너희들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 이 어른이 누구인 줄 아느냐. 금지 금시중 댁 공자 한림학사 금성이시다."
"응, 바로 금지의 아들이냐. 이놈 참 잘 만났다. 이놈 듣거라. 네 아비는 나라를 좀먹게 하고 너는 무뢰한을 끌고 다니면서 외로운 나그네를 엄습하니 네놈의 죄는 절실가통이다. 네가 지금 당장 칼을 던지고 부복사죄하면 이어니와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놈들의 목숨은 붙여 주었거니와 네놈은 그대로 둘 수 없다. 짧은 목을 길게 늘이어 이 칼을 받으라."
경신의 호령은 산이 쩡쩡 울리었다.
"에구구."
막 제 목 위에 서리 같은 칼날이 떨어지려 할 제 금성은 칼을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두 손을 어깨 위에 쳐들고 칼 받는 시늉을 하였다.
"세상에도 비겁한 녀석. 내 칼이 더러워질까 보아 네 피를 묻히기 싫다마는 무슨 까닭으로 저 석수장이를 엄습하였느냐. 바른 대로 아뢰어라. 만일 추호라도 기이면 네 목을 붙여 두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