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란 저편이 쌀쌀히 굴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것. 차마 못 당할 그 망신을 당한 뒤에도 금성은 주만을 단념하기는커녕 도리어 잊을 날이 없었다. 그 추상 같은 호령과 쌀쌀한 비웃음이 눈 속에 어리고 귀에 스미어드는 듯 도무지 떼치려야 떼칠 수가 없었다.
텅 비인 마음을 부둥켜안고 술판과 꽃거리로 헤매기도 이때부터이었다. 무슨 수로 어떻게 하든지 주만을 제 손아귀에 넣어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다못해 분풀이라도 톡톡히 해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금성에게는 이 소식이야말로 하늘에서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높은 담과 겹겹이 닫은 대문과 수많은 하인들에게 옹위되어 깊고 깊은 별당 속에 들어 있으면 다시 어찌할 도리가 나서지 않았지만 휘넓은 절, 외따른 탑, 후미진 산길에서야 무슨 거조라도 얼마든지 차릴 수 있지 않으냐.
금성의 마음은 뛰었다.
그러나 섣불리 서둘렀다가 또 전번 모양으로 될 일도 안 되고 혼뗌만 할까 보아 겁이 났다. 이번이란 이번이야말로 단단히 차려야 한다. 오밀조밀하게 일을 꾸며야 한다.
궁리궁리한 끝에, 그는 제갈량이가 다시 살아나도 탄복할 만한 꾀를 하나 생각해 내었다.
그 꾀를 실행하기에 제 혼자 힘으로는 조금 벅찬 것이 흠절이었으나, 힘을 빌릴 사람이 그리 아쉽지도 아니하였다. 주사청루에서 사귀어 둔 '장안호걸'들을 이럴 때 안 쓰고 언제 쓸 것인가.
그 후로 금성의 사랑에는 거의 밤마다 먹거지가 벌어졌다. 그들은 금성의 말을 듣자 모두 팔을 부르걷고 분개하였다. 서라벌 한다하는 집 딸로 부여놈 석수장이 따위에게 미쳐 다니다니 치가 떨릴 노릇이 아니냐. 그런 계집애는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만 해도 고두쇠를 보내 놓고 하회를 기다리며 그 기다리는 동안이 무료하다고 해서 술판을 벌린 것이지 그들의 변명마따나 결코 술타령만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고두쇠가 주만이가 적실히 불국사에 가는 것을 보고 왔건만 그들은 얼른 몸을 일으키려 들지 않았다. 한창 술이 빨리듯 당기는 판도 판이지만 정작 일거리가 생기고 보니 남의 초상에 단지하는 것 같아서 될 수만 있으면 슬슬 꽁무니를 빼고 싶었다.
"그래 적실히 주만이가 불국사엘 가더란 말이지."
텁석부리는 그래도 미심다운 듯이 또 한번 다지었다.
"여불없습니다."
고두쇠도 중언부언하는 데 성가신 듯이 볼멘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허, 그래."
하고 텁석부리는 힘없이 말하고 내밀었던 턱을 움츠러들인다.
"자, 여러분들 일어들 서보시지요."
하고 금성은 지척지척 일어선다.
"잠깐만 기다리오, 잠깐만."
텁석부리는 손을 내저어 금성에게 앉으란 뜻을 보이고,
"뭐 주만인가 하는 그 계집애가 불국사에 가기만 한 다음에야, 뭐, 그야 독 안에 든 쥐지 별수 있겠소. 그렇게 서둘 것도 없거든. 자 우리 내어 온 소주나 다 들이켜고 기운을 내어 가지고 서서히 일어서도 좋단 말이거든."
"옳소, 옳아."
코벌룸이가 대번에 찬성을 하였다.
"저희들에게도 여유를 좀 주어야 어쩌고저쩌고 할 틈이 있을 것 아니오. 한창 노닥거리는 판에 우리가 지쳐 들어가야만 꼭 잡을 수가 있는 것이거든. 사냥을 해도 쫓겨가는 짐승은 슬쩍 한번 늦추어 주어야 그놈이 기진맥진해서 잡기가 쉽단 말이야."
금성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앉으며 화풀이로 놀이를 호령하였다.
"요년 놀아, 뭘 하고 있느냐. 술을 내왔거든 빨리빨리 부어 드리지를 못하고."
놀이는 입을 배쭉배쭉하며 잔에 술이 철철 넘치도록 찔금찔금 재빠르게 부었다.
"얘 찬찬히 부어라. 그 아까운 술 흘린다."
하고 곰보는 철철 넘는 술잔을 들면 더 쏟힐까 보아, 잔 가장자리에 제 입을 갖다 대어 빨아 마신다.
꽃물 소주 한 두루미가 거의 다 말랐다.
"자, 이제는 그 년놈을 때려잡으러 가야."
하고 샛바람은 그 노란 얼굴이 더욱 샛노랗게 되어 가지고 누구보담 먼저 몸을 일으킨다.
샛바람이 일어서는 바람에 더러는 엉거주춤하게 자리를 떴다.
코벌룸이도 따라 일어나려다가 말고,
"여러분 그렇게 급할 건 없단 말이지. 그 년놈을 잡는데 어떻게 잡으면 잘 잡을까, 우리 여기서 난상토의를 하잔 말이어."
하고 벌써 몇 번을 작정한 습격방법을 또다시 이렁성거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