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은 먹는 데 넋을 잃고 고두쇠를 보낸 것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참 고두쇠를 보내 놓았지. 그러면 오늘 밤이라도 톡톡한 일거리가 생길지도 모르네그려."
곰보가 코벌룸이의 말을 받는다.
"암, 그야 그렇고말고. 구슬아기가 가는 것을 정녕히 보고만 온다면야 주안상이 다 뭔가. 그래 우리들이 술타령만 하고 있을 사람들인가. 정작 일거리가 생긴 다음에야 너나 할 것 없이 목숨을 내어놓을 거란 말이거든. 그러니 자, 우리 술 한잔 더 먹어 두세나. 고두쇠가 금방 들어닥칠 줄 누가 아나베."
텁석부리가 한바탕 늘어놓은 말뿌리는 역시 술에 돌아가고 말았다.
"여보게, 놀이아가씨, 자 어서 술을 한 번만 더 내오게나."
놀이는 그 예쁘장한 눈을 한번 샐룩할 뿐이요, 말대꾸도 안 했다. 하도 같잖은 말이라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눈치다.
"고 예쁜 눈을랑 흘기지 말고, 또 뉘 간장을 녹이게. 어서 어서 여률령 시행(如律令施行)이나 하소."
하고 되우 취한 텁석부리는 제 옆에 서 있는 놀이의 등채나 밀듯이 비틀비틀 일어선다.
"왜 이래요."
놀이는 악을 바락 쓰고 몸을 빼쳐 달아난다.
"그러지 마소, 그러지 말어, 허허."
텁석부리는 비척비척 쫓아가며 놀이의 손목을 잡으려 하였다.
"원, 별꼴을 다 보아."
하고 홱 놀이가 뿌리치는 바람에 텁석부리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질 뻔하였다.
좌중엔 웃음보가 터졌다.
"원 그런 걸신은 보다 처음 보아. 저 따위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한담."
샛바람은 끝끝내 아까 앙갚음을 하였다.
"요런 북어 같은 말라깽이가 주둥아리만 까가지고. 내가 칼을 쓰면 그래 네놈만 못할 줄 아느냐."
텁석부리는 개개 풀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뇌까리었다.
"어디 그러면 한번 겨뤄 보자."
샛바람은 제 별명마따나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벽에 끌러서 걸어둔 제 환도를 떼어 든다.
"허, 이놈 봐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견디어 봐라. 네깐놈이 검술을 몇 푼 어치나 안다고."
하고 텁석부리는 대번에 서리 같은 칼날을 뽑아 든다.
좌중은 와 일어섰다.
"이게 무슨 짓이람."
"칼 쓸 데가 그렇게 없어서 친구끼리 칼부림을 한단 말인가."
여럿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뜯어말리고 텁석부리는 코벌룸이가 가까스로 제자리로 끌고 갔다.
"어, 이 사람 그게 무슨 짓이람. 낫살이나 먹은 친구가."
"원, 별 우스운 꼴을 다 보겠네. 나는 이놈아, 나는 검술공부가 십 년이다, 십 년. 네깐 놈이야 한 칼에 당장 두 동강이가 날 것을."
텁석부리는 끌려가면서도 연해 큰소리를 하였다.
"에구, 이놈아, 네깐 놈이 십 년 아니라 백 년을 칼을 배웠으면 무슨 소용이냐. 털보 얼굴이 땅바닥에 뚝 떨어져 대굴대굴 구을기나 했지 별수 있느냐."
자리에 앉기는 앉았지만 제 성에 받치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샛바람도 지지 않았다.
"원, 되잖은 녀석 때문에 주흥이 다 깨졌구나, 허허허."
텁석부리는 한번 호걸스럽게 웃고 팔을 부르걷어 연신 엄포를 놓으며 이번에는 아주 점잖게 호령하였다.
"얘, 놀아, 어서 술 좀 내오너라."
"그래도 또 술이야."
하고 누가 킥킥 웃는다. 코벌룸이가 유난스럽게 넓은 콧구멍을 더 벌룸벌룸하며,
"암, 화해주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겠나."
하고 금성을 바라본다.
금성은 고주가 되어 그 야단통에도 제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서, 아서" 하며 손만 내저어 말리었고 싸움이 가라앉자 눈을 딱 감고 흔들흔들 부라질을 하고 있다가 코벌룸이 말에 개개 풀린 눈을 간신히 뜨고서,
"놀이란 년 어디 갔느냐. 어서 술을 내어오너라, 술 술."
하고 소리를 질렀다.
텁석부리가 칼을 쑥 뽑아 드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방 한구석에 붙어 섰던 놀이는 싸움이 하도 싱겁게 끝난 것이 속으로 우스웠다.
"술을 더 잡숫고 또 싸움들이나 하면 어떡해요. 그 칼들을 빼 드시는 게 어떻게 무서운지, 호호."
"잔말 말고 어서 들어갔다 와."
금성은 소리를 질렀다.
놀이는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술이 없어요, 소흥주가 다 동이 났대요."
좌중은 서로 돌아보고 입맛을 다시며 흥이 깨어지는 듯하였다.
"뭐, 소흥주가 떨어졌어…… 그러면 다른 술도 없단 말이냐."
"꽃물을 받은 소주밖에 없대요."
"만물소주, 더 좋지 더 좋아."
곰보가 얼른 놀이의 말을 받는다.
"암 좋다뿐이냐."
하고 여럿은 침을 삼키었다.
이때 열어 놓은 영창 앞에 고두쇠가 나타나서 굽실 하고 숨이 턱에 닿는 소리로,
"서, 서방님 소, 소인 다녀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