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중 집 작은사랑에는 헙수룩한 위인들이 여남은 주안상을 가운데 놓고 죽 둘러앉아 있다.
으리으리한 자단향 교자상에 번쩍이는 금기명 은기명부터 이 으시시해 보이는 손님들과 걸맞지를 않았다. 더구나 모양과 본새를 차릴 대로 차린 음식은 볼품도 없이 그들의 염치 코치 없는 입 안으로 아귀아귀 사라졌다.
큼직한 구자틀에 거들먹하게 찼던 건더기는 어느결엔지 가뭇도 없어지고 맨 말국만 바지짓바지짓 마지막 비명을 올리고 있다. 통으로 삶아 놓은 아저(어린 돼지) 한 마리도 살이란 살은 감빨고 홈빨아 한 점 붙어 있지 않고 앙상한 뼈다귀만 가로세로 지저분하게 흩어졌다.
일부러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만든 듯한 두툼한 방자고기도 두 양푼이나 내어 온 것을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들어 내고 말았다.
어떤 위인은 생전복회가 매끄러워서 젓가락으로 잘 집히어지지를 않으니까 접시째 들어다가 손가락으로 마구 훔켜 넣기까지 하였다.
짝짝 쩝쩝, 울겅 볼강, 후루룩 꿀떡! 씹고 마시고 입맛 다시는 소리로 온 방안의 공기는 어수선하게 흔들리었다.
말하는 사람은 물론 없었다. 말은커녕 먹기에 걸신이 들려서 숨쉴 여가조차 없는 듯하였다.
휘휘 젓는 술총이 끈끈하게 걸리도록 뻑뻑한 막걸리라야만 제 격에 맞을 그들이거늘 기름같이 맑은 소흥주와 눈알만한 옥잔은 입술도 채 추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주인 금성의 호령이었다.
"술을 더 내오너라. 안주를 더 내오너라."
"녜, 녜."
하고 놀이는 쩔쩔매며 거행에 눈코를 못 떴건만 술이며 안주가 내어오는 대로 날개가 돋힌 듯 달아나 버렸다.
인제는 김치 말국까지 말라들어 갔다. 교자상 위의 그릇은 말 그대로 씻은 듯 부신 듯하게 되었다.
"어 무던히들 먹는군."
안주라고는 몇 저름 집지도 않고 술만 들이켜서 벌써부터 얼근해진 금성은 늘 겪는 일이지만 이 훌륭한 제 친구들의 무서운 식욕에 새삼스럽게 놀라며 감탄하였다.
"허 출출도 한 판이지만 자네 집 음식은 언제 먹어 보아도 천하진미거든."
주독이 올라서 잔등이가 시뻘겋게 벗겨지고 엄청나게 넓은 콧구멍을 벌룸벌룸하는, 좌중에 제일 낫살이 든 듯한 위인이 장국물이 번지르르하게 묻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사 비스름하게 금성의 말대꾸를 하였다.
"코벌룸이 말이 하던 중 잘 하였네. 산해진미니 진수성찬이니 말은 들었지만 이런 맛난 음식은 생후 처음인걸."
거무스레한 얼굴이 얽둑얽둑 얽은 곰보가 지금까지 맛나게 빨고 있던 돼지 발톱을 배앝으며 맞장구를 친다.
"이런 대접만 받고 우리의 할 일을 못 하니 주인께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이번에는 강파르게 마르기는 말랐지만 톡 불거진 눈알맹이 하며 모질디모질게 생긴 위인이 말참견을 하며 금성을 바라본다. 이 중에 누구누구 해도 정말 너를 위해 일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라 하는 듯하였다. 그는 '샛바람'이란 별명을 가졌다.
"아따 그 사람 급하기는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네. 설마 일거리야 생기겠지그려. 한가한 동안에 이렇게 얼근하게 먹어 두는 게 말하자면 기운을 기르는 것이거든, 헛허."
코밑과 뺨과 턱이 온통 구레나룻과 수염으로 뒤덮이어 겨우 눈과 코 언저리만 빤하게 보이는 텁석부리가 수염 속에 파묻힌 입을 떡 벌리고 너털웃음을 웃어 보인다.
"옳아, 옳에. 텁석부리 말이 옳에, 허허."
좌중은 모두들 찬성을 하고 껄껄댄다.
샛바람은 그 불거진 눈을 더욱 까뒤집으며,
"이녁들은 얻어먹기만 하고 볼일은 안 생겨도 좋단 말이지, 이 걸신들아."
하고 못마땅한 듯이 텁석부리를 노려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네. 어디 자네는 안 먹고 배를 쪼루룩쪼루룩 소리가 나도록 굶겨 가지고 일만 좀 해보게나, 에헤헤."
텁석부리가 빈정거린다.
"어헛허."
좌중은 샛바람을 놀리듯 한바탕 웃어 대었다.
샛바람은 새뚝하게 성이 치받쳐 올랐으나 여럿이 욱대기는 바람에 대항거리도 못 하고 입술만 발발 떤다.
"여러분이 그렇게 웃을 것도 아니거든. 암 일을 해야지. 일을 해야 되고말고."
코벌룸이가 샛바람을 두둔하는 척을 하고 나서,
"대관절 이 고두쇠란 놈은 한번 가더니 어째 감감소식이람."
하고 금성을 바라본다.
"그 녀석도 어디 가서 술이나 처먹고 자빠진 게지."
샛바람은 빗대 놓고 한마디를 쏘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