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을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산기슭에 부유스름하게 깃들인 달그림자만 보아도 대담하던 주만이답지 않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누구에게 쫓겨나 가는 듯이 허둥지둥 말을 달려 가다가도 슬근슬근 제 뒤를 밟는 인기척이 나는 듯 나는 듯하여 오마조마하는 마음을 진정하려야 진정할 수 없었다.
벌써 몇 달 동안 거의 수없이 아사달을 방문하였건만 털이와 차돌을 빼놓고는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킨 적이 없거늘 오늘 밤따라 뜻밖에 나타난 그 수상쩍은 그림자는 과연 무엇일까.
제 방에 들어오자 문을 겹겹이 닫고 잠갔건만 울렁거리는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웃옷을 벗는데 땀이 어떻게 흘렀는지 속옷에서 웃옷에까지 친친하게 배어 나와 옷고름을 끄르는 대로 김이 물씬물씬 올라왔다. 아래옷자락은 몸에 휘감기어 처근처근한 것이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그 이상한 그림자가 제 몸에 휘감기어 따라온 것과도 같았다.
'내가 마음이 어려서 헛것을 보았나.'
주만은 흔들리는 제 생각을 스스로 물리치며 이렇게도 고쳐 생각해 보았으나 불전 그늘에서 이쪽을 노리던 양이 역력히 머리에 살아오고 더구나 제 뒤를 따라오다가 흠칫하며 몸을 피하던 광경은 더욱 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헛것을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 괴상한 그림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 정체를 알려야 알 수가 없는 것이 더욱 궁금하고 더욱 마음에 키이었다.
자기의 사랑과 행복을 노리는 무서운 눈이 어둠 속에서 번쩍이고 있는 것만 같다. 인제 한 달 정도만 곱다랗게 넘기면 만사가 귀정이 날 이 아슬아슬한 고비에 심술궂은 야차는 기어이 헤살을 놀고야 말 것 같다.
주만은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를 쳤다.
집안 사람들의 눈만 피하면 마음놓고 알뜰한 님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인제는 경계할 일이 또 한 가지 늘게 되었다. 집안 사람을 피하기는 오히려 쉬웠으되 이 정체 모를 괴상한 그림자를 피하기는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어느 산기슭, 어느 목장에서 그 괴물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불전의 그늘, 어둑한 숲속에 그 괴물의 은신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것을 피하자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아사달을 만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나 아사달을 만나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그의 얼굴을 그리고도 배길 수 없는 일이거니와 더구나 공사가 얼마쯤 되어 갔는지 궁금하여 참을 수가 없다.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주만은 이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변을 어떻게 당하고 무슨 버력을 어떻게 치르더라도 불국사엘 아니 가든 못 하게 되었다.
그래도 미심다워서 오늘 저녁은 털이를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둘이 나란히 말을 달려 갔지만 나중은 역시 주만의 말이 앞서고 털이는 뒤떨어지고 말았다.
"아가씨, 아가씨, 구슬아가씨."
등뒤에서 나는 털이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만의 마음은 너무 급하였고, 또 길거리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도무지 불길한 듯해서 주만은 그대로 말을 달리었다.
"아가씨, 아가씨, 저걸 좀 봅시오. 저걸 좀 보아요. 아가씨, 아가씨, 제발 좀 같이 가요."
털이가 물에나 빠진 듯한 소리를 떨기 때문에 주만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멈추었다.
털이는 쌔근쌔근 죽을 판 살 판 달려와서 숨이 턱에 닿은 목소리로,
"아가씨, 저, 저걸 좀 봅시오. 저 등불을!"
하고 손가락으로 제가 달려온 길 쪽을 가리키었다.
"응, 등불이?"
주만은 깜짝 놀라며 털이의 손가락질하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장고등 등불 한 개가 반짝반짝하며 줄달음질을 쳐 달아나는 것이 보이었다.
"그래 저 등불이 어떡했단 말이냐."
주만의 목소리도 허전허전하였다.
"왜 언젠가 고두쇠란 놈을 만나신 길목장이가 있지 않습니까. 아가씨는 먼저 달려가시고 쇤네가 뒤쫓아오려니깐 그 등불이 그 목장에서 반짝반짝하고 있다가 아가씨가 휙 지나치시니까 그때 그 불이 탁 꺼져 버리겠습죠. 그러더니 쇤네가 올 때는 그 등불이 다시 켜져 가지고 저렇게 달아를 납니다. 암만해도 수상치가 않아요."
주만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저번에 본 그 수상한 그림자가 오늘 밤엔 또 등불로 나타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