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주만은 하루에 한 번씩은 어려웠지만 이틀을 거르지 않고 불국사에 드나들었다. 대개는 털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번번이 같이 다닐 수도 없어 혼자라도 곧잘 말을 달리었다. 길새가 익으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촛불 없이도 서슴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만의 지레짐작이 그대로 들어맞아 금량상의 이번 걸음은 그의 운명을 꽉 작정하고 말았다. 팔월 스무날로 혼인날까지 정하였다. 유월 유두도 벌써 지났으니 혼인날까지 두 달도 올곧게 남지 않았다. 집안은 벌써부터 혼인 준비에 야단법석이다. 밤늦도록 일새를 분별하느라고 별당을 찾는 사초부인의 발길도 드물었다. 그러니 집을 빠져나올 기회는 전보담 많았지만 날짜가 부둥부둥 달아나는 것이 주만의 애를 졸이게 하였다.
바작바작 명줄을 태워 들어가는 듯하였다.
아사달과 만나서도 별로 할 말도 없었다. 날마다 얼마쯤이라도 일자리가 나는 것을 보는 것이 주만에게 오직 한 가지 기쁨이요 재미였다.
"어서어서 공사가 끝이 나지이다. 하루바삐 이 서라벌을 떠나게 되어지이다."
이것은 주만의 끊임없는 바람이요 축원이었다.
저와 마주앉아 단 몇 시각이라도 일손을 쉬게 되는 것이 아깝고 원통하였다.
"어서 일을 하세요. 나 있다고 일 않으실 게 무어예요."
그는 아사달을 재촉하고 정말 제자나 된 듯이 마치도 집어 주고 이어차이어차 용을 쓰며 겨누도 들만져 주었다. 쪼아 낸 자국을 수건으로 툭툭 털어서 정질하기에 편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어느덧 유월이 지나고 칠월이 되었다.
공사는 거진거진 끝이 나 갔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거의 손을 떼게 되었다.
"인제 거의 다 되지 않았어요. 인제 부여로 훨훨 갈 날도 얼마 남지를 않았군요."
하고 주만이가 오래간만에 방그레 웃으며 아사달을 쳐다보았다.
"웬걸요, 아직도 멀었습니다. 지금도 잔손질을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마는!"
"그러면 팔월 한가위로도 끝을 못 내시게 될까요."
주만의 얼굴엔 대번에 웃음빛이 사라지고 심각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글쎄올시다. 한 달만 더 애를 쓰면 손을 떼게 될지."
"세상없어도 한가위 안으로는 끝을 내주세요. 그때 끝이 나야만 팔월 스무날 안으로는 서라벌을 떠나게 될 터이니까요."
주만은 팔월 스무날이야말로 모든 것이 파탄이 되는 제 혼인날이라고는 차마 아사달에게 알리지 못하였다. 만일 그런 말을 했다가 그가 일부러 공사를 질질 끌고 어엿한 자리로 시집을 가라고 권하는 날이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공사가 끝난 다음에야 그 이튿날로라도 길을 떠나겠지만 마치 그때까지 끝을 내게 될는지요."
"이렇게 서두시는 다음에야 그때까지 안 끝날 리 만무할 것 아녜요. 내가 이렇게 오는 것이 방해가 된다면 지금 곧 돌아가도 좋아요."
"글쎄올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곁에 계시면 암만해도 일이 손 잘 잡히지를 않습니다. 까닭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이 허전허전해지니까요."
아사달은 속임 없이 제 마음을 털어내 놓고 미안한 듯이 쓴웃음을 웃었다.
"그러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가요."
하고 주만은 사다리 있는 데로 걸어나왔다.
"내 말이 귀에 거슬리십니까."
아사달은 제 말이 너무 무뚝뚝한 것을 못내 뉘우치는 모양이었다.
"아녜요, 바른 대로 말씀을 해주시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첫째 공사가 하루바삐 끝이 나야 될 것 아닙니까. 까딱 잘못하면 그야말로 만사가 물거품이 될 것이니까요."
하고 주만은 사다리를 내려온다. 아사달은 굳이 말리지도 아니하였다.
주만이가 사다리를 내리어 탑 가장자리까지 나온 아사달에게 눈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다가 저편 그늘에 흰 그림자가 얼씬하는 것을 보았다.
초생달의 약한 빛줄이라 분명치는 않았지만 그 흰 그림자는 주만의 시선을 피하는 것처럼 그늘 속으로 후닥두닥 숨어 버리는 듯하였다.
주만이가 마굿간 앞까지 걸어나와 말을 타고 절문을 나올 때 언뜻 뒤를 돌아보니까 그 흰 그림자가 슬근슬근 뒤를 밟아 오다가 돌아다보는 주만의 눈길에 들킨 것을 매우 당황해하며 비슬비슬 몸을 옆으로 피하였다.
'누구일까?'
주만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림자가 분명히 자기의 뒤를 밟아 오는 데는 틀림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