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역시 석가탑 위에 있었다. 일을 한창 바쁘게 하느라고 주만과 털이가 탑 가까이 왔건마는 까맣게 모르는 듯하였다.
달무리한 흐릿한 달빛이건만 공사가 놀랄 만큼 일자리가 난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며칠 안 되는 그 동안에 아사달은 무서운 공과 힘을 들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뭘 하십쇼."
털이가 소리를 쳤건만 정소리에 들리지 않는 듯.
"여봅시오, 여봅시오."
털이는 연방 소리를 쳤다. 그제야 아사달은 뒤를 돌아 보아 주만과 털이가 온 줄을 알고 정과 마치를 놓고 탑 가장자리로 걸어나왔다.
그는 무엇이 무안이나 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이 없다.
두 눈길이 마주치는 찰나 주만이도 고개를 숙여 버렸다. 자기 가슴속 깊이 품은 비밀을 다 알려 바친 그이어니 전보다 몇 곱절 더 무관하고 살뜰할 줄 알았더니만 정작 딱 마주치고 보매 새삼스러운 부끄러움이 앞을 가리어 차마 바로 보기가 면난스러웠다.
아사달도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을 뿐.
남의 눈에 유표하게 뜨일 것을 꺼리어 지니고는 왔지만 불도 다리지 않은 사초롱을 휘휘 돌리며 털이는,
"그럼 쇤네는 또 차돌이한테나 갔다 올 터예요. 아가씨는 이 사다리로 또 탑 위에나 올라가시고."
라고 재잘거렸다.
의미 깊은 '또'란 털이의 말에 아사달과 주만은 그제야 마주보며 괴롭게 웃었다.
그 말을 남긴 채 털이는 제 아가씨의 명령도 기다릴 것 없다는 듯이 휘적휘적 제 갈 데로 가버리고 주만은 하는 수 없이 탑 위로 올라갔다.
마주앉은 두 사람은 얼굴만 이따금씩 바라볼 따름이요, 피차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침침한 광선 가운데도 아사달의 모양이 너무도 수척한 것이 눈에 뜨이었다. 눈썹이 유난히 검어 보이는 것은 눈두덩이 꺼진 탓이리라. 가뜩이나 깊숙한 눈자위가 더욱 기어들어갔는데 그 다정스럽던 눈매도 어쩐지 날카로워진 듯하였다. 본래도 여윈 뺨이지만 더욱 쭉 빨리어 광대뼈가 내밀고 관자놀이도 누가 살을 우벼간 듯하다. 전번 혼절을 하고 앓아 누웠을 적보담도 더 살이 내린 것 같았다.
'아아, 내가 그를 너무 괴롭게 하였구나.'
주만은 속으로 부르짖고 그의 앞에 그대로 엎드려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저만 골머리를 바수어 내는 듯한 무서운 고민으로 몸둘 곳을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이도 저만 못하지 않게 뼈와 살을 저며 내었구나.
주만은 억색하여 더욱 굳게 말문이 막히었다. 그렇듯 괴로워하는 그이에게 다시 무슨 말을 할 것이랴.
"구슬아기님, 많이 파리하셨습니다그려."
마침내 아사달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 음성은 어쩐지 처량한 가락을 띠었다.
"저야 괜찮습니다마는 아사달님 신관은 정말 말 못 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은 또다시 끊어졌다. 그린 듯이 마주앉아서 애연한 눈초리로 한동안 피차에 여윈 자죽을 어루만지고만 있었다.
"저렇게 수척하신 것은 너무 공사를 서두시는 탓이 아녜요. 병환이 쾌히 소복도 되시기 전에 또 지치시면……."
이번에는 주만이가 침묵을 깨뜨렸다.
"서둘지 않고 어떡합니까. 한시가 급합니다."
'저도 한시가 급해요.'
주만은 입 밖에까지는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 맞방망이를 쳤다. 이 지긋지긋하고 위태위태한 경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아사달보다도 주만이가 더 급하였다. 금량상이 찾아까지 왔으니 이 딱한 혼인도 금일금일 작정이 될 모양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치이는 그 파란의 날이 오기 전에 하루바삐 이 서라벌을 떠나야 한다.
"아무리 급하시기로 만일 병환이 또 나시면 늦어질 것 아닙니까."
주만은 진정으로 걱정을 하였다. 아사달을 위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자기를 위해서도 이 아슬아슬한 고비에 아사달이 덜컥 병이 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염려 마십시오. 일을 손떼기 전에는 병이 날 리가 만무하니까요."
아사달은 힘있게 대답하였다.
"일을 끝내시고 떠나실 때에는 꼭 저를 데려가셔야 합니다."
또 한마디 다져 두려다가 저 때문에 저렇듯 살이 내린 그에게 그런 말로 또 괴롭게 하기는 차마 못 할 일이었다.
'내가 자주만 오면 설마 그의 떠나는 날을 모를까. 내일부터 하루에 한 번은 꼭 와야…….'
주만은 속으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