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와 벼락이 때려붓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밤, 아사달과 탑 위에 단둘이 앉아서 불을 뿜는 듯한 사랑을 하소연한 후 주만은 격렬한 제 정에 지치기도 하였거니와 밤비를 노박으로 맞은 탓에 며칠은 된통으로 앓기까지 하였다.
앓으면서도 잠꼬대에도 아사달의 푸념이요 헛소리도 아사달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무병하던 외동딸이 앓으매 사초부인은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고 이손 유종도 조정을 들고 날 적마다 별당을 들러 갔다.
주만이가 헛소리를 하고 딴청을 부릴 때마다 털이 혼자서 혹시나 아사달과의 비밀이 탄로될까 보아 애간장을 졸이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딸을 믿는, 믿느니보담 자기 딸에게 그런 비밀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늙은 부모는 다행히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하고 예사 헛소리로 흘려들어 버렸다.
그러나 주만의 병이 차차 소복이 될수록 아사달 그리운 정이 불같이 일었건만 밤늦도록 사초부인이 자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아사달을 찾을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찔이었다.
주만은 아직도 몸이 찌뿌드드해서 쾌하지를 아니하였으되 일부러 쾌활한 체를 하고 인제 병은 아주 멀리 갔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났지만 그래도 사초부인은 노상 마음을 놓지를 아니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염려도 너무 많으시어. 인제 다 나았다는데두 왜 성가시게 자꾸 머리만 짚으세요, 글쎄."
나중에는 머리 짚는 어머니의 손을 떠다밀며 주만은 짜증까지 내었다.
"얘가 무슨 소리냐, 아직도 속머리가 더운데 나은 게 다 뭐란 말이냐. 괜히 방정을 떨고 오늘도 바람을 쏘이더니만 기예 병을 덧치는가 부다."
하고 어머니는 구박맞는 손으로 굳이굳이 딸의 머리를 만지며 걱정을 마지않았다.
"원 어머니는 괜찮대도 웬 걱정이시어. 머리가 눌리어 안 아픈 것도 되아프겠네."
주만은 역시 제 머리에 닿은 어머니의 손을 떼느라고 애를 썼다.
"어미의 손이 그렇게 싫으냐. 왜 말을 안 듣고 네 고집만 세우느냐. 그럼 네 손으로 만져 보려무나. 이게 더운가 안 더운가."
"어디 더워요, 싸늘하기만 한데."
"그래 이게 덥지를 않단 말이냐. 괜히 약 먹기가 싫으니까 나중에는 생판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하고 모녀끼리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언제든지 철부지의 어린 딸이었다.
주만은 앓는 것보담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가 도리어 병이 되었다. 그다지도 아사달이 그리웁고 몸을 빼쳐 나갈 수 없는 것이 심술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름해야 길기야 길지마는 어쩌면 이렇게 지리할까. 일각이 삼추 같다 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이렇듯 긴 하루를 가까스로 다 보내 놓고 어둑한 땅거미가 내리는 걸 보면,
"오늘 밤에야 설마 빠져나갈 수 있으려니."
하였다가 역시 뜻을 못 이루고 그 밤을 고스란히 밝히게 되매, 오뉴월 단열밤도 가을밤 뺨치게 길었다. 아무리 정열에 뜬 주만이기로 어머니가 주무신 후 자정이 넘어서야 장근 이십 리가 되는 길을 갔다가 돌쳐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구러 열흘나마를 보내노라니 앓고 난 몸살쯤은 오히려 뒷전이요 정말 살이 내릴 지경이었다. 남의 눈을 꺼리는 사랑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것인 줄 주만은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이 느끼었다.
파리한 딸의 얼굴은 가뜩이나 어머니의 발길을 자주 머무르게 하였다.
그래도 필경 기회는 오고야 말았다. 하루는 큰 손님이 드셨다고 집안이 벅적 괴고 주안상 준비에 사초부인은 눈코를 못 뜨게 되었다.
"이번에 오신 손님은 이만저만한 손님이 아니신가 봐요. 대감님께서 들락날락하시며 마님께 분별이 장히 바쁘시고 음식간에도 숙수를 둘씩이나 불러 대어 바로 무슨 큰 잔치나 하시는 것 같은뎁쇼."
털이가 갔다가 오더니 아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손님이 많이 오신대."
"아녜요, 단 한 분이시래요."
하고 털이는 의미 있게 웃어 보인다.
"단 한 분, 그래 손님은 누구시라든."
"쇤네보다 아가씨께서 더 잘 아실걸입쇼."
"매친 것, 내가 가보기를 했니, 어떻게 안단 말이냐."
"금량상 대감이시라나 누구시라나 장래 아가씨 시아주버님 되실 분이래요."
"응!"
하고 주만은 놀랐다. 제 혼인이 정말로 굳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아사달 만나기가 더욱 급하지 않으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