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93

경신은 피로한 듯이 팔을 베고 누워서 한동안 무슨 생각에 잦아졌다가 다시 말허두를 돌리었다.
"그래 이 몇 해 동안에 이 절에서 생긴 가장 큰 일이 무슨 일인가."
"가장 큰 일?"
용돌은 눈을 멀뚱멀뚱하며 얼른 생각이 나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이렇다할 만한 큰 일이 없는 듯한데……."
"중들끼리 옥신각신이 생긴다든지 하다못해 불전을 새로 이룩한다든지……."
"가끔 저희들끼리 찢고 뜯고 하다가 우리네 같으면 막상 목이 오고 갈 무렵쯤 되어 흐지부지해 버리기가 일쑤니 큰 싸움이 날래야 날 수가 없고……."
"그러면 소위 당학파들이 한퇴지(韓退之)의 본을 떠서 불도를 비방한다고 울근불근한 일도 없단 말인가. 다른 절에서는 꽤 말썽이 되는 모양이던데 이 불국사도 이를테면 몇째 안 가는 대찰이 아닌가."
"그런 문제를 이렁성거릴 만한 학식을 가진 이는 오직 주지스님 아상노장 한 분뿐이신데 워낙 연만하시어 그런 문제를 들고 일어날 만한 근력도 없는 듯하고 그 외에는 다들 무식도 하거니와 제 실사퀴 장만하는 데만 눈이 빨개져서 야단이니……."
"흥, 서울 근처 중들이 더 타락이 되다니 참 한심한 노릇일세그려."
"한심하다뿐입니까. 그것 뭐 사람의 씨알머리라고도 할 수 없지요."
용돌은 경신이가 제 말을 찬성하는 데 신이 나서 또다시 승려 공격의 화살을 쏘았다.
"그건 너무 과도한 말일세. 유독 승려들만 나무랄 수야 있는가.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정말 수도하는 고승 대덕이 많겠지만 여기쯤은 너무 서울이 가까우니 중노릇을 무슨 돈벌잇속으로 아는 모양일세그려."
하고 경신은 말을 뚝 끊어 버린다.
칠월도 어느결에 그믐이 가까워 조석으로 생량하는 서늘한 바람이 벌써 우수수하게 창에 부딪힌다.
바람결을 따라 찡찡 하고 돌 쪼는 소리가 그윽이 들려 온다.
경신은 귀를 소스라치며,
"이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인가. 천연 돌 쪼는 소리 같으니."
"저번 오셨을 적에 내가 말씀을 여쭈지 않았던가요. 부여에서 석수장이를 불러다가 다보탑과 석가탑을 짓게 되었다고. 그 부여 석수장이가 아직도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캄캄한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석수장이란 녀석이 어떻게 성미가 괴벽스러운지 낮에는 별로 일에 손을 대지도 않고 꼭 밤, 새벽으로 저렇게 일을 하지요."
"허 그건 참 명공일세그려."
"명공은 무슨 명공입니까. 아무라도 손에 조금 익게만 되면 어둡다고 일을 못 할까요. 우리네가 밤에 칼을 쓰는 것이나 다를 게 없을 것 아닙니까."
하고 용돌은 울대에 피를 올리며 매우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자네 왜 그 석수장이하고 무슨 틀린 일이 있나. 그렇게 티를 뜯게, 허허."
"그래 서방님은 분하지 않으시오. 부여놈 따위가 아주 내노라 하고 서라벌 대찰에 하나도 아니요 둘 템이나 탑을 이룩하니 기막힐 노릇이 아니란 말씀이오."
"원 그 사람은 별것이 다 기가 막히네그려. 부여 석수가 서라벌 와서 탑을 이룩하기로 분할 게 무에란 말인가."
"그래 서라벌 사람이 부여놈 따위에게 비록 조그마한 일엘망정 지다니 말이 되느냐 말씀이야요."
"어 이 사람, 그게 무슨 좁은 생각인고. 거기 지고 이기고 할 까닭이 무엇 있단 말인고. 자네는 아직도 삼한통일 이전 생각을 가지고 까닭 없는 적개심을 품고 있네그려. 그때 서로 싸운 것도 생각해 보면 뼈가 저릴 노릇인데 지금도 그런 감정을 품고 있어서야 될 말인가. 아예 그런 생각을랑 버리고 객지에 외로울 테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네가 돌보아 주게나. 앞으로 큰일을 하려면 그네들과 손을 마주잡고 한 덩어리가 되어야 될 것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나."
경신의 한마디 한마디에 용돌의 고개는 차츰 차차 숙어졌다.
"옳습니다. 서방님 말씀이 옳습니다. 여태 저는 옥생각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탑 둘은 다들 완성이 되어 가나."
"다보탑은 벌써 다 되었고, 석가탑도 아마 거의 다 지어 가는 모양입니다."
경신은 울려 오는 돌 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밤에 돌일을 한다는 게 하도 신기하니까 어디 우리 구경을 좀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