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돌과 경신은 나이로 말하면 용돌이가 위지만 문벌로 보든지 재주로 보든지 더구나 낭도(郎徒)의 지위로 보든지 경신이가 훨씬 높기 때문에 용돌은 경신을 서방님이라고 깍듯이 위하고 경신은 용돌에게 하게를 하였지만 두 사람이 다 같이 국선도를 숭상하는 동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누추하나마 제 처소로 들어가 보실까."
용돌은 던진 칼을 다시 주워 들고 그대로 제 바지에 쓱쓱 문질러 칼집에 꽂고는 경신을 쳐다보았다.
"여길 왔다가 자네 처소에 아니 들르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경신은 친구끼리의 무관한 투를 말씨에도 나타내며 용돌의 뒤를 따라섰다.
"다녀가신 지가 벌써 이태가 되셨는데 그래도 용하시게 제 있는 데를 찾아오셨군요."
"자네 방에 들러 보아 없으면 으레 그 자리로 검술공부하러 간 줄 알지. 설마 젊은 기억에 이태 전 일을 그새 잊으려구."
"그 캄캄한 생소한 산길을 찾아내신 것은 정말 어려우신 노릇인데."
"뭘 자네가 시근벌떡거리고 칼 휘두르는 소리가 산 발치에서도 들리던걸 뭐, 허허."
"그렇게 멀리 들렸을까. 원 서방님은 귀도 밝으시군. 그래 한번 겨뤄 보실 생각이 나셨군요."
"나도 칼 써본 지가 하도 오래고, 또 자네 검술이 얼마나 늘었나 꼬나보았지."
움펑진펑한 산비탈을 그들은 평지를 걷는 것보담 더 수월하게 내려오며 주거니 받거니 수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아까 말씀한 신신치 않은 성가진 일이란 무슨 볼일입니까."
용돌은 예사로 던진 경신의 말이 다시금 궁금한 듯이 잼쳐 물었다.
"뭘 자네는 아랑곳할 일도 못 되는 걸세, 허허."
경신은 쾌활하게 웃어 버리고 종시 그 성가시다는 볼일을 바로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다.
"저한테 감추실 일이 무엇일까요. 갈수록 궁금하군요."
"원 그 사람은 다심도 하이. 자차분한 중살이를 하더니만 사람까지 잘게 되는 모양일세그려."
"어느 건 흉기스럽긴 중이라고 산중생활이 하도 심심하니까 자연 갖은 꿍꿍이속을 다 꾸며 내고 제한테 상관없는 일에도 괜히 마음이 키어요."
"허, 자네도 인제 찰중이 되어 가는 모양일세그려."
얘기는 어느결엔지 딴 데로 쏠리고 만다.
"왜 검술을 쓸 때처럼 슬쩍슬쩍 몸을 피하시오. 성가시다는 게 암만해도 무슨 좋은 일 같은데."
"허, 그 사람은 기어코 메주알고주알 캐려만 드네그려. 아따 왜 저 유종 이손이 계시지 않나."
"녜, 이손 유종 알고말고. 지금 조정에 남은 오직 한 분의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지신 어른 말씀이지요."
"자네도 아네그려. 그 어른이 좀 만나자고 해서……."
"그러면 무슨 중난한 일거리가 생겼나요."
어두운 가운데도 용돌은 눈을 크게 떠서 경신을 바라보았다. 조정에 서 있는 단 한 사람인 국선도의 우두머리와 청년 낭도를 대표하는 인물이 서로 만나자고 할 적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분명하다. 바라고 기다리던 풍운은 인제야 일어나려는가. 거추장스러운 장삼을 영영 벗어던질 날도 얼마 남지가 않았구나. 용돌은 제 지레짐작에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짐을 느끼었다.
그러나 경신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야,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신신치도 않은 가간사야. 형님께서 어서 올라가서 뵈라고 성화같이 독촉을 하셔서!"
"조그마한 가간사?"
용돌이가 의아해하며 뇌자 경신은 단도직입적으로 내던지듯,
"그이에게 딸이 있대!"
"오, 옳지 그러면 혼담이 있어서 올라오셨군, 어허허."
용돌은 거침없이 너털웃음을 내놓았다.
"어떡하나. 형님이 자꾸 가보라시니, 허허."
경신도 따라 웃으며 스스로 저를 변명하듯,
"그야 꼭 그 일 때문만이야 아니지. 오래간만에 서울 형편도 좀 살펴보고 여러 친구들도 만나 보고……."
"그러면 선을 보러 오셨소, 선을 보이러 오셨소."
"보기도 할 겸 보이기도 할 겸. 그야말로 겸사겸살세, 허허."
"아무튼 태평성대군요. 천하영웅이 색시 선이나 보러 다니니, 으흐흐."
용돌은 아무에게라도 빈정빈정하는 제 입버릇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들의 발길은 어느덧 용돌의 처소에 다다랐다.
용돌은 먼저 제 방으로 성큼 들어와서 벗어던진 장삼과 가사를 주섬주섬 주워서 똘똘 말아 한옆으로 치우고 소리를 쳤다.
"자 서방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제 사는 꼴은 이 모양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