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돌은 저편의 검기에 눌리어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도,
"건방지게 누구를 놀리느냐."
하며 이를 갈았다. 저편에서 몇 번이나 자기를 찌를 기틀을 일부러 놓치는 것이 그에게 못마땅하고 아니꼬웠다. 그것은 검객으로 찔려 죽을 때 찔려 죽는 것보담 더 분한 노릇이었다.
"어디 견디어 봐라."
용돌은 용을 버럭 쓰며 있는 재주를 다 부려 보았건만 철옹성같이 막아 내는 저편의 칼 틈을 버르집을 수가 없었다.
용돌은 차차 기운이 지쳐지며 칼 쓰는 법이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저편에서도 적이 힘이 빠진 듯 바늘 한 개 꽂을 만한 빈틈도 없던 저편의 방비도 점점 허술해지고 목과 가슴을 송두리째 내어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용돌은 아까보담 백배의 용기를 가다듬어 쩍말없이 찌를 데를 찔렀건만 저편에서 용하게도 그러나 가까스로 받아 내는 듯하였다.
이편의 신이야 넋이야 하는 공격이 한동안 불꽃을 날리었으나 마침내 아무런 보람도 없었다.
"내 검술을 떠보려고 일부러 허수하게 제 몸을 내어맡기는구나."
언뜻 용돌이가 이렇게 깨달을 겨를도 없이 별안간 온몸의 기운이 빠져 달아남을 느끼었다.
이편의 칼 든 손이 허전거리기 시작하자 저편에서는 서서히 수세(守勢)에서 공세(攻勢)로 옮기어 갔다.
용돌은 가쁜 숨을 미처 돌려 쉬지도 못하고 방비에 쩔쩔매었다.
저편의 칼바람이 선득선득하게 몇 번을 이편의 목덜미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럴 적마다 용돌의 등에는 찬 소름이 솟았으되 그래도 신기하게 막아 낼 수는 있었다.
저편의 검기는 갈수록 억세고 여무지고 재빨라졌다.
"이거 큰일났구나. 이거 막아 낼 수가 없구나."
용돌의 칼은 허공만 치며, 더욱 허둥지둥하는데 저편의 칼은 더욱 신이 오른 듯하였다. 가슴을 막으려면 머리에 번득이고 머리를 피하면 목을 겨누어 어느 것을 어떻게 방비를 해야 옳을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물아물한 용돌의 눈에는 수없는 칼날이 서릿발을 날리며 이편의 얼굴, 목, 가슴, 배 할 것 없이 거의 한꺼번에 지쳐 들어왔다. 제 몸뚱어리의 요긴한 자리란 자리는 일시에 저편의 칼이 곤두선 듯하였다.
용돌은 제 목숨이 위기일발에 걸린 줄도 잊어버리고 하도 어이가 없어 제 칼은 놀려 보지도 못하였다.
문득 저편에서 칼을 거두었다.
"용돌이 검술이 무던히 늘었네그려. 허허."
우렁차고 걸걸한 음성이 웃는다.
용돌은 귀에 익은 그 음성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칼을 던지고 엎드리었다.
"어규, 서방님 언제 오셨습니까."
"일어나게, 일어나. 거친 풀에 찔리리."
"그러기에 아무리 어둠 속이라도 칼 쓰시는 게 범상치를 않아 기연가미연가 의심은 했습니다만."
하고 용돌은 몸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자네의 검술도 늘기는 많이 늘었네마는 아직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이 조금 미흡한 듯하네. 벌써 도를 닦은 지 삼 년이 지났거든 하마하면 그 거치른 마음 자리도 잡혔을 것 같은데."
"뵈올 낯이 없습니다만 산중에 이렇게 있으니 도리어 울화만 나고 마음이 더 거칠어지는 듯합니다."
"산중이고 성중이고 마음이란 가질 탓, 어둠 속에서 난데없는 칼이 나와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그만큼 마음 공부가 착실해진 표적이 아닌가."
"뭘요, 검객이란 어느 때라도 방심을 하지 말라 하였거든 비록 심심풀일망정 칼 가지고 검술공부를 하러 나온 사람이 칼을 보고 그렇게 놀라기야 하겠습니까."
용돌은 저편이 추는 바람에 한번 뽐내 보고,
"그런데 서방님께서는 언제 행차를 하셨습니까. 댁에서 바로 이리 오셨을 리는 없고 무슨 특별한 볼일이나……."
"뭐 이렇다할 만한 볼일도 없지만 시골구석에만 노 처박혀 있자니 답답도 하고 여러 친구도 찾아볼 겸 올라왔네. 자네 형편을 들어 보아 중생활이 좋다면 얼마쯤 같이 있어서 마음공부나 해볼까……."
"말씀도 마십시오. 주리난장을 맞아도 소위 중생활처럼 좀이 쑤시고 쓸쓸하지는 않겠지요."
"그게 마음공부란 것 아닌가."
"마음공부고 뭐고 서방님은 아예 그런 생각을랑 염두에도 내지 마시오. 그러면 서울 오신 일이 단지 그 일 한 가지뿐이신지."
"자네 만나 볼 일이 첫째지만 또 한 가지 신신치 않은 성가신 일이 있어서……."
"신신치 않은 성가신 일? 그건 무슨 일이게요."
"뭐 얘기할 거리도 못 되는 일."
하고 그 검은 그림자는 빙그레 웃었다.
이 아닌밤중에 용돌을 찾아온 손님이야말로 금량상의 아우 경신으로 주만의 아버지가 세상에 으뜸가는 사윗감으로 골라 놓은 인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