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끌어도 간다. 놓아라, 놓아."
사립문 밖으로 나가면서도 악을 바락바락 쓰는 팽개의 여편네의 소리가 아직도 얼떨떨한 아사녀의 귓결을 울리었다.
아사녀는 저도 모르게 한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행길에 나간 뒤에도 왈패의 쇠된 목청이 쨍쨍하게 들려 오고 웅얼웅얼 무에라고 달래는 팽개의 소리도 섞이어 나더니 이윽고 감감하게 아무 기척도 없어졌다.
그렇게 호된 싸움도 부부끼리 다툼은 칼로 물 베기라, 흐지부지 풀리고 말았는지 또는 그들의 발자취가 아무리 떠들어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는지 모른다.
들레던 뒤끝에 휘젓한 적막은 다시 돌아왔다.
아사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도사리며 오늘 밤에 일어난 일을 되새겨 보았다.
팽개가 제 자는 동안에 저에게 무슨 볼품 사나운 짓거리를 한 것 같고 그것을 그 아낙네에게 꼭 들킨 것만은 대강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팽개가 작지 모양으로 그런 해참한 시늉을 하였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으나 아무튼 망신은 더할 나위 없는 망신이었다.
새록새록이 닥치는 무참한 변이었다.
"나는 앓아 죽을 팔자도 못 되는구나."
한탄하자 누가 뺨을 치는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울고도 있을 때가 아닌 것을 언뜻 깨달았다. 한 시각이 바쁘다, 한 순간이 바쁘다.
그는 부랴부랴 새옷을 갈아입고 허전허전하는 걸음거리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가까스로 마당에 내려와 사립문을 나서려 하매, 제가 나고 자라고 시집가고 한 정든 이 집이 다시 돌아다보여지고 또 돌아다보이었다.
삽사리가 제 주인이 나가는 걸 보고 어디선지 오르르 내달았다. 아사녀는 삽사리를 보매 또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펄쩍 주저앉아서 몇 번 삽사리의 대강이를 어루만져 주고는,
"삽사리야, 잘 있거라. 따라오지 마라."
이 세상을 마지막 떠나는데 작별인사를 할 데는 오직 삽사리 한 마리뿐이었다. 삽사리는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제 주인의 하는 것이 수상하다는 듯이 킹킹 하고 치맛자락 냄새를 맡으며 발길에 휘감기어 좀처럼 떼칠 수가 없었다.
"삽사리야 들어가거라, 들어가."
하고 때리는 시늉을 해보이니 삽사리는 주춤 걸음을 멈추고 멍하게 제 주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아사녀가 돌아서 가면 슬근슬근 뒤를 밟아 온다.
"들어가, 들어가."
아사녀는 또 돌쳐서며 개를 쫓는 소리는 목이 메이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받아 보는 참된 정은 오직 저 개뿐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삽사리는 얼마쯤 따라오다가 텅 빈 집 안이 궁금한지 다시 돌아서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사녀의 발길은 사자수의 강둑에 다다랐다.
스무날 가까운 다 이지러진 달은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에 빛깔 없는 흰 얼굴을 둥둥 띄웠다.
사방엔 개미 그림자도 없고 쏴 하고 이는 강바람에 귀에 익은 물소리만 출렁출렁할 뿐.
아사녀가 막 굽이치는 물결을 향해 몸을 번드쳐 떨어지려는 순간, 문득 그의 입에서는,
"아사달님!"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의 아물아물한 눈앞에는 아사달의 모양이 번개같이 번쩍 하였던 것이다.
아사녀는 앞으로 쏠리려는 몸을 주춤하고 바로잡았다.
아사달! 아사달! 아사달의 얼굴을 다시 한번 못 보고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다. 딴 계집을 얻었거나 말았거나 자식을 낳았거나 말았거나 그이는 둘도 없는 내 남편 내 임자가 아니냐. 그에게 알리지 않고 그의 말을 들어 보지 않고는 끊으려도 끊을 수 없는 이 목숨이 아니냐.
다시 생각하면 그이가 첩을 얻었다는 것도 종작없는 소리인지 모르리라. 싹불이가 헛들은지 모르리라. 계집을 얻었든지 자식을 낳았든지 내 눈으로 보아야 한다.
아까 들은 왈패의 소리가 띄엄띄엄 잉잉 귓가에서 운다.
"이 표리부동한 놈, 이 능글능글한 놈…… 병구완을 한답시고 잠든 친구 여편네를 끼고 자빠져서 마구 입을…… 싹불이하고 두 놈이 짜고 무슨 꿍꿍이속을 하는지 네년은 모를 게다……."
아사녀는 반짝반짝 새 정신이 나는 듯하였다. 새 눈이 뜨이는 듯하였다. 그러면 오늘날까지 팽개의 지나친 친절과 공손이 도무지 불측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던가.
'서라벌, 서라벌!'
아사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서라벌로 가자! 서라벌로 가자. 서라벌이 아무리 멀다 해도 보름 가고 한 달 가면 못 갈 리가 있느냐. 죽기를 결단한 목숨이거니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설마 죽기밖에 더하랴.
아사녀는 입때까지 서라벌 갈 생각을 염두에도 못 낸 것이 기가 막히었다. 진작 이런 생각을 하였던들 그 곤욕을 당하지도 않을 것을.
집에 들러 행장이라도 꾸려 볼까 하였으나 지니고 갈 만한 것도 없거니와 집에 들렀다가 혹시 팽개한테나 들키면 말썽만 스러울 듯하여 빌어먹으며 갈지라도 나선 김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