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사녀와 단둘이만 있는 줄 알았던 방 안에서 난데없는 딴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팽개는 벼락이 뒷덜미를 치는 것처럼 깜짝 놀랐다.
뒤를 힐끈 돌아본 순간 조금 꼬리가 들린 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포르쪽쪽한 입술을 바르르 떨며 제 계집, 소위 왈패가 독사처럼 노려보고 서 있는 데는 아 벌린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아니 이게, 병구완이오. 끼고 누워서 입을 마주 비비대는 것이 병구완이오."
왈패의 말소리가 변으로 종용종용한 것이 팽개에게는 더욱 소름이 끼치었다. 이것은 닥쳐올 폭풍우가 얼마나 사나울 것을 알리는 전조다.
"아니 이게, 그 알뜰한 스승의 외동따님을 돌보아 주는 법이오. 이게 멀리 간 친구의 아낙네를 싸고 도는 법이오. 왜 말이 없으시오."
하고 왈패는 발을 한번 구른다. 그 서슬에 팽개는 후닥닥 일어앉았다.
왈패는 한껏 오른 독이 차차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고개를 치흔들고 내리흔들며,
"왜 말을 못 해, 왜 대답을 못 해. 다른 제자들은 다 아사녀에게 마음을 두어서 믿지 못한다고 그랬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그랬지. 그래 그놈들 하는 것은 개 돼지만도 못하고 너 하는 짓은 이게 성인군자의 할 짓이냐. 왜 말을 못 하느냐. 그 꿀을 담아 붓는 듯이 나를 얼렁뚱땅하던 말솜씨는 다 어디 갔느냐. 왜 말을 못 해. 아사녀 입을 맞추다가 입이 붙어 버렸느냐. 이 능글능글한 도적놈아."
왈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숨을 돌리느라고 잠깐 말을 끊었다.
그 틈을 타서 팽개는 쑥스럽게 웃어 보이며,
"여보 마누라, 인제 고만두오, 고만두어."
슬쩍 어리눙쳐 보았다. 이 웃음과 말은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놈이 웃는다. 허, 이것 봐라, 누구를 또 속이려고 웃어. 이 사람을 날로 잡아먹을 놈아. 내가 또 속을 줄 아느냐. 내가 쓸개빠진 년이지, 매친 년이지. 수상히 여기기는 여겼지만 그래도 남편이라고 믿었구나. 딴 년을 품고 온밤을 고스란히 희희낙락하는 줄을 모르고 이건 샛사내나 보듯이 꾸벅꾸벅 오기를 기다렸구나. 아이 분해. 아이 분해애."
왈패는 악을 악을 쓰며 저고리를 풀어헤치고 제 손으로 제 가슴을 북 치듯 마구 뚜들긴다.
조금 아까 잠이 깬 아사녀는 웬 까닭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때에야 질겁을 하고 일어났다.
팽개는 아사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쩔쩔매며 제 여편네를 향하여,
"이게 무슨 상없는 짓이란 말이오. 글쎄 고만두래도 왜 이 야단이오. 그건 마누라가 백주에 하는 소리지."
왈패는 더욱 펄쩍 뛴다.
"내 가슴 내 치는 게 상없는 짓이냐. 뭐 두호를 한답시고 병구완을 한답시고 잠든 친구 여편네를 끼고 자빠져서 마구 입을……."
팽개는 힐끈힐끈 아사녀의 눈치를 엿보아 가며, 제 계집의 입을 막으려고 애가 말랐다.
"무슨 종작없는 소리를."
"종작없는 소리? 흥, 오 저년이 듣는다고, 저 육시를 할 아사녀란 년이 듣는다고, 염려 마라, 염려 말어. 네까짓 놈이야 곱다랗게 아사녀 저년한테 물려줄 테다. 너같이 표리부동하고 능갈친 놈은 헌신짝 팔매치듯 저 따위 년한테나 갖다 앵길 테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다. 엄숭이 밤숭이 다 헤쳐 본 나다. 세상에 서방이 씨가 말랐느냐. 너 같은 놈을 데리고 살게. 어이 더러라, 어이 더러라, 튀 튀."
하고 왈패는 팽개의 상판에 침을 뱉었다.
팽개는 소맷자락으로 제 얼굴의 침을 씻고 제 계집의 목을 잡아끌며,
"이게 무슨 짓이오. 자, 나갑시다, 나가요."
왈패는 잡힌 손을 뿌리치며,
"가기야 간다. 안 가고 왼밤 새울 줄 아느냐. 나도 노는 가락을 아는 년이다. 내어줄 거야 선선히 내어주다뿐이냐. 그렇지만 이년 아사녀 들어 봐라. 네년도 팔자가 사나워서 홀아범도 잡아먹고 소위 사내란 걸 천리 밖에 보내었지만 어디 사내가 없어서 제 애비 제자만 돌라 가며 행투를 낸단 말이냐."
팽개는 힘을 우쩍 써서, 제 계집을 떠다박질렀다.
"저리 나가, 저리로 나가래도."
하고 처음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팽개놈을 네년한테 뺏겨서 분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싹불이 계집에게 다 들어 알았다. 세상에 속 모를 놈은 이놈이니라. 이놈의 손아귀에 들었다가는 네년의 신세도 볼일은 다 보았다. 싹불이하고 두 놈이 짜고 무슨 꿍꿍이속을 하는지 네년은 모를 게다."
팽개는 제 계집의 목고개를 바싹 틀어안아 제 가슴으로 그 입을 틀어막으며 간신히 끌고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