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불의 지레짐작과는 정반대로 그 밤을 지내고 보니 아사녀의 병은 더욱 더친 듯하였다.
팽개와 싹불이가 들어가도 인사상으로나마 몸을 일으키려는 시늉조차 못 하게 되었다.
그나 그뿐인가. 팽개의 얼굴까지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팽갭니다, 팽갭니다."
하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아사녀는 흡뜬 눈으로 잔뜩 허공을 노리며 새빨간 입술을 달삭달삭 종잡을 수 없는 헛소리를 종알거리었다. 말낱은 분명히 들을 수 없으나마 여러 번 듣고 보매 이따금씩 '아사달'이란 소리만은 그럴싸하게 짐작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사달을 그리워하는 소리인지 원망해하는 소리인지 분간은 할 수가 없었다.
"이것 큰일났네. 그럼 어떡하나. 자네와 나와 약도 달이고 미음도 끓여 보세나."
팽개는 싹불을 재촉하였다.
"별수 있겠나. 우리가 팔자에 없는 부엌데기 노릇을 하는 수밖에."
약을 달여다 주어도 물론 아사녀는 먹으려 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팽개가 숟가락으로 퍼넣어도 병자는 입을 다물고 삼키려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서너 숟갈 퍼넣으면 반나마 흘리고 말았다.
미음 역시 입을 쪼무리고는 입술에도 대기를 싫어하였다.
그래도 간간이 정신이 돌아나는 때는 있었다. 이럴 때 팽개가 억지로 권하면,
"싫어요, 싫어요."
앙탈은 하면서도 곧잘 받기는 받았으나 입에 문 채 좀처럼 삼키지 않았다.
만일 팽개의 눈만 조금 딴 데로 쏠리기만 하면 어느 틈엔지 뱉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팽개가 지성으로 꿀떡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넘기기는 넘기어도 소태나 먹는 것처럼 그 어여쁜 얼굴을 찡그렸다.
'이 계집애가 죽기를 결단하였구나.'
팽개도 어렴풋이 아사녀의 뜻을 짐작한 듯싶었다.
약 달이고 미음 끓이는 일도 서투른 솜씨라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거니와, 더구나 아사녀의 태도가 수상스러워서 일시 반시를 그 곁을 비워 놓을 수가 없었다.
낮에는 번차례로 번을 들고 밤에는 혼자 지키는 것도 무엇한 탓에 둘이서 꼬박이 밝히었다.
이러구러 사오 일이 지나갔다. 아사녀의 병은 겨우 웃불만은 꺼진 듯하였다. 헛소리하는 도수도 줄어지고 한번 잠이 들면 꽤 오래 자기도 하였다. 약과 미음은 여전히 먹기 싫어하면서도 이따금 냉수는 찾아서 벌떡벌떡 들이켜기도 하였다.
하룻밤은 아사녀의 잠든 틈을 타서 팽개와 싹불이가 봉당에서 약을 달이었다.
"여보게, 오늘 밤엔 집에 잠깐 다녀와야겠네."
하고 싹불은 웃으며 팽개에게 청을 하다시피 하였다.
"너무 여러 날이 되어서 그 무대가 또 무슨 소리를 할지."
"고 동안을 못 참는단 말인가. 집에 안 가보기야 내나 자네나 마찬가지지."
팽개는 제 짝패 놓치기를 꺼리었다.
"그만큼 돌렸으니 인제는 염려 없네. 잠깐만 다녀옴세, 헤헤."
"걱정은 내 왈패가 더 걱정인데……."
하고 팽개도 씩 쓴웃음을 짓는다.
"오늘 밤엔 내가 다녀오고, 내일 밤엔 자네가 다녀오게나. 하룻밤 사이에 무슨 변 나겠나, 헤헤."
싹불은 얼렁하는 웃음 소리를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힝 나가 버렸다.
"여보게, 여보게."
팽개가 몇 번 불러 보았으나 들은 척도 아니하였다.
"저런 사람 보게."
혼자 게두덜거렸으나 쫓아가서 잡아올 필요까지는 없었다.
팽개는 혼자 약을 다 달여 짜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병자의 방이라고 너무 불을 지핀 탓인지 방 안의 공기는 무럭무럭 찌는 듯이 더웠다.
아사녀도 더운 모양이었다.
이불 밖으로 보얀 종아리를 던져내 놓고, 풀어헤친 저고릿자락 틈으로 젖가슴이 아낌없이 내다보인다. 그 박속 같은 가슴 옴패기엔 땀이 방울방울 맺히어 누가 씻어 주기를 기다리는 듯.
손질 않은 검은 머리는 흰 베개 위에 되는 대로 흩어지고 하붓이 열린 입술은 바시시 웃는 듯하다.
팽개는 약그릇 든 손에 맥이 탁 풀리며 하마터면 약을 다 엎지를 뻔하였다.
약그릇을 다시 바로잡기는 잡았으나 팽개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엉거주춤하고 선 채 얼른 앉지를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