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83

팽개가 사랑에 나와 보니 싹불은 책상다리를 하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다.
팽개는 다짜고짜로 자는 이의 책상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음, 음."
자는 이는 소태나 씹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책상다리째 모로 쓰러질 뿐 그대로 잠을 깨지 못한다.
팽개는 베고 있는 목침을 또다시 걷어질렀다. 목침이 튕겨 나가고 머리가 쿵 하며 방바닥에 떨어지자 그제야 자던 이는,
"애쿠 아야야, 이게 웬일이야."
하고 벌떡 일어앉으며 졸아붙는 두 눈을 크게 떠서 두리번거린다.
"이 사람아, 그새 잠이 무슨 잠이람."
하고 도리어 팽개가 뇌까리자 싹불은 더럭 골딱지를 내며,
"이건 사람을 제긴 줄 아나. 왜 툭툭 발길질을 하고……."
하고 그 멀룽멀룽한 눈시울을 걷어올리며 눈알을 부라리다가 팽개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것을 알아보고는,
"나는 누구라구, 헤헤."
농쳐 웃어 버린다.
"차판이 하판인데 자빠져서 코만 곤단 말인가."
팽개는 치밀어오른 분이 아직 덜 가라앉았는지 매우 우락부락한 어조다.
싹불은 제 상판을 두 손으로 치문지르고 내리문지르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어디 밤잠을 자야지. 그러니 어째 곤하지를 않겠나."
그는 격에 맞지 않는 괭이 같은 간드러진 목청을 내며 거슬러진 팽개의 비위를 얼러맞추려 하였다.
"누가 자네더러 밤잠을 자지 말라던가."
"누가 자지 말란 건 아니지만 자연 그렇게 되지를 않았나."
"무슨 일이 자연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팽개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아사녀를 지키자니 온밤을 집에 가 잘 수 없고, 틈틈이 가는 거라야 마누라가 바가지만 긁고, 낮잠은 자다가 또 자네에게 불호령이나 듣고, 어디 사람 살겠나."
싹불의 이 측은한 하소연에 성이 잔뜩 풍기어 부어올랐던 팽개의 볼은 슬며시 풀어졌다.
싹불은 저 먹여 살려 주는 주인의 낯빛이 풀리는 꼴을 보고 웃으며 너스레를 쳤다.
"그래 내 자는 새에 일은 다되었나. 아사녀가 약을 먹던가."
"약은 먹지 않아도 일은 되어 가는 낌새가 보이데."
팽개는 뻥긋뻥긋 벌어지려는 입 가장자리를 억지로 여민다.
"응 그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아무리 철석 같은 아사녀도 별수가 없네그려. 그래 그 낌새란 건 어떻게 보이더란 말인가?"
"이 사람 자네가 왜 그렇게 열고가 나서 야단인가."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거든. 자네 좋은 일에 낸들 안 좋겠나."
"인제 생글생글 웃어까지 보이데……."
싹불은 팽개의 말을 가로채었다.
"뭐 아사녀가 웃어 보여? 그 빼물기만 하던 간나이가 웃어까지 보인다면야 일은 다된 일이게."
"웃기만 한 줄 아나. 옷깃을 싹 여미고 살짝 얼굴까지 붉혀 보였다네."
"응, 얼굴까지 붉히어! 흥, 바로 새색시가 새신랑을 보고 수접을 떠는 격일세그려."
"여보게 말 말게. 나도 오입 십 년에 쓴맛 단맛을 다 본 놈이지만 아사녀가 수줍어하는 근경은 처음 겪어 보았네. 그 아기자기한 재미란 하늘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텔세."
"흥, 자네는 인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아사달이란 놈이 일 년 템이나 그 재미를 마음놓고 본 것을 생각하니 치가 떨리데, 치가 떨리어."
하고 팽개는 아사달이가 바로 앞에나 있는 듯이 허공을 노려보며 이를 득 갈아붙이었다.
"앗게, 아서. 그 계집만 빼앗으면 고만이지 지난 일까지 이를 갈 거야 무엇 있나."
팽개는 그 건성으로 도는 눈방울을 더욱 굴리며 펄펄 뛴다.
"그놈이, 그놈이, 그 아사달이란 놈이 내게서 아사녀를 빼앗아갔지. 내가 왜 남의 계집을 빼앗는단 말인가. 그 고생을 하고 그 공을 들이고 헌 계집 다된 것을 도로 찾아온들 그렇게 신통할 거야 무에 있단 말인가."
하고 노발대발하며 날뛰는 팽개의 꼴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던 싹불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길은 갈 탓이고, 말은 할 탓이라고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성도 싶네마는, 아사녀 같은 아름다운 계집을 한평생 데리고 살려는 놈은 너무 욕심이 과한 놈이지. 아사녀가 열 번 시집을 가고 열한 번째 나에게 온대도 나는 하늘에 오른 것보담 더 좋아하겠네."
하며 싹불은 어느 때 흐른지 모르는 제 입 가장자리의 침을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