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없이 아사달을 데려다가 줄 듯하던 세 번째 봄도 어느덧 지나가 버렸다.
탑 둘을 혼자 맡아 짓는 데도 이태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 말을 처음 들을 때 아사녀는 어마 싶었었다.
아무리 대공이기로 그렇게 날짜야 걸리랴. 아버지께서 내 마음을 눅여 주시느라고 일부러 멀리 잡아 말씀을 하시는 것이거니 하고 제 깐으로 날수로 잔뜩 일 년, 햇수로 이태만을 잡아들면 아사달은 돌아오리라 믿었었다.
그러던 것이 벌써 햇수로 삼 년에 들어 반 년이 지났으니 날수로 따지어도 이태 반이나 되어 가는 폭이다.
그렇게 까마득하게 멀리 잡으신 아버지의 말씀대로 한다 해도 아사달은 벌써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로 말하면 석수 일에는 천하에 으뜸가는 어른이었으니, 그 어른의 짐작 밖에 벗어날 공사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면 병환이 나셨는가.'
그러나 아사녀는 저의 방정맞은 생각을 곧 물리쳤다.
몸은 비록 약해 보일망정 그렇게 무병한 이가, 그렇게 강단이 무서운 이가 그런 큰일을 맡았거늘 병날 리가 없을 것 같다.
암만해도 탑은 다 이룩된 것 같다. 아버지의 둘도 없는 수제자인 그이거든 그 능란한 솜씨에 입때 일이 끝나지 않을 리는 만무할 것 같다.
'그러면 아사달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 생각은 마치 잘 드는 칼과 같이 그의 염통을 에어 내었다.
사치한 맨드리가 기름독에서 빠져나온 듯하다는 서라벌 서울 여자, 그 비싼 녹둣가루를 비누로 풀어 때를 벗겨 내고 그보담 더 비싼 은가루와 옥가루를 처덕처덕 얼굴에 바른다는 서울 여자, 먹으로 눈썹에 황을 그리고 심지어 입술에까지 주사를 올린다는 서울 여자, 울금향과 사향을 옷고름과 허리띠에 찬다는 서울 여자, 그러니 아무리 박색이라도 달과 같이 꽃과 같이 환하게 어여쁘게 보인다는 서울 여자, 십 리 밖에서도 그 그윽하고도 야릇한 향기가 사내의 마음을 호려 낸다는 서울 여자!
논다니, 활량이가 파리떼 모양으로 우글우글하다는 서라벌, 어수룩한 시골뜨기만 보면 마구잡이로 붙들어 간다는 서라벌.
그 몹쓸 계집들이 그렇게도 잘나신 아사달님을 그냥 둘까. 독사의 무리와 같이 아사달님에게 달려들지 않을까. 온몸을 친친 휘감아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엿가락 늘어진 뭇 계집의 팔과 다리의 등쌀에서 빼쳐나지를 못하고 버르적거리는 안타까운 아사달의 모양이 눈앞에 얼진거린다.
그렇게 얌전한 그가, 그렇게 단단한 그가,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아는 그가, 백명 천명 계집이 덤빈들 빠질 리가!
스스로 아사달을 위해 변명을 해보았지만 암만해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었다.
이런 판에 싹불의 그 말을 듣고 보니 흑! 하고 아니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나날이 닥쳐오는 것이란 좋은 일, 기쁜 일은 도무지 없고, 불행한 일 악착한 꼴만 겪고 나니 인제 아사녀는 제 전정의 행운에 대한 믿음성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이렇게 굽이굽이 알뜰살뜰히 궂은 노릇만 당하게 되니 앞으로도 좋은 운이 행여나 찾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앞날의 찬란한 무지개의 한 모서리가 흐릿하게 비쳐 올 때 싹불의 한마디는 그를 천길 만길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뜨리기에 넉넉하였다.
더구나 귀인 댁 따님에게 장가를 드셨다니 왜 그 좋은 호강을 마다시고 이 부여 두메로 돌아오시랴. 딸 낳고 아들 낳고 무궁한 영화를 누리려든 자식조차 없는 이 가난뱅이 석수장이 딸을 찾아올 것인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금기둥 옥기둥 속에서 으리으리하게 푸근푸근하게 지내실 것을 이 오막살이 샛풀집엘 기어들 것이랴.
"안 오신다, 안 오신다. 오실 리 만무하다."
아사녀는 열이 뜬 머릿속으로 잠꼬대같이 속살거렸다.
"안 오신다, 안 오셔."
그는 곁에서 누가 굳이굳이 아사달이가 온다는 사람이나 있는 것처럼 화를 더럭더럭 내며 중얼거리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의 한 길뿐이었다.
이만큼 목숨을 이어온 것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안 죽고 살았던고. 아버지 돌아가실 때 왜 따라 죽지 않고 살았던고!"
그는 긴 수건도 생각해 보았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사자수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자결을 결행하기에도 그는 너무 기신이 없었다.
"이렇게 몹시 아프니 앓아 죽을 날도 며칠이 남았을까."
아사녀는 몸을 바수어 내는 듯한 아픔을 억지로 참으며 고대고대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