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78

그 이튿날 한낮이 겨워도 아사녀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아침밥을 지으려 물동이를 이고 나갈 때면 으레 사랑방을 갸웃이 들여다보고 방긋 웃으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을 뿐인가, 팽개와 싹불이가 번차례로 안을 기웃기웃 엿보았으나 아사녀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어째 일어나지를 않을까."
팽개가 싹불을 보고 걱정을 한다.
"아사달놈이 자식을 낳았다는 바람에 무척 속이 상한 게로군. 그것 보게, 내님의 구변이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재주를 가졌단 말이어."
하고 싹불은 맹숭맹숭한 턱을 쓰다듬으며 거드럭거린다.
"또 제 자랑인가. 너무 구변이 좋아서 아주 죽을 작정을 하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큰일인데."
"그쯤 되어야 아사달놈을 잡아먹고 싶을 것 아닌가."
"웬만하고 마음이 돌아서야지, 너무 애절을 하는 것도 도리어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원 그 사람 다심도 하네. 계집이란 한번 토라지면 고만이지 방해가 무슨 방해란 말인가."
"계집의 독한 마음에 자결이나 해버리면 그야말로 십년공부 아미타불 아닌가."
"죽기를 그렇게 간대로 죽어. 몇 번 쪽쪽 울고 제 손으로 제 가슴이나 뚜다리다가 말겠지. 그 기틀을 자네가 잃지 말고 슬슬 녹여 내어야 되는 법이거든."
하고 싹불은 팽개를 보며 눈을 끔쩍끔쩍해 보인다.
"괜히 섣불리 서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게. 한동안 뜸을 들여야."
하고 팽개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아무튼 계집의 질투란 무서운 거야. 아사녀같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계집도 제 사내가 외도를 했단 말에 그렇게 치를 떠니……."
"이제야 알았나."
"우리 단둘이 얘기지만 실상 이번 꾀도 내 여편네가 가르쳐 준 것이나 진배없네."
"그러면 아주머니께서도 그 켯속을 아신단 말인가."
"원 그 사람, 그 왈패가 알아보게, 큰일나게. 스승의 따님이 홀로 있는데 뭇 제자놈들이 덤비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들 극진히 보호를 해야 된다고 그럴싸하게 꾸며 대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왈패가 어디 곧이를 듣는가. 아따 성인군자 또 나셨네. 그래 당신이 아무 다른 마음 없이 아사녀를 보호만 하겠소. 그야 말짝으로 괭이에게 반찬가게를 보라는 격이지. 그래서 부부간에 대판 싸움까지 하였다네."
"그 아주머니 눈이 무섭지 무서워. 벌써 자네 속을 화경 들여다보듯 환하게 아시네그려."
"아사녀 그년도 매친 년이지. 제 서방이 벌써 삼 년째 안 올 때는 벌써 알아볼 조지, 빈방만 지키고 있으면 뭘 한단 말인고. 열녀비나 하나 얻어 걸릴 줄 알고. 냉큼 적당한 자리에 개가나 갈 게지,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 보니 딴은 아사달놈이 삼 년 템이나 계집 없이 얼무적거릴 리도 없겠고 아사녀도 제 사내가 딴 계집을 얻었단 말만 들으면 피장파장으로 놀아날 것도 같단 말이거든."
"어규 용해라. 나는 그 꾀만은 그래도 자네가 지어 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주머니 꾀란 말이지."
"슬쩍 지나가는 말이라도 얼른 듣고 터득을 해내는 것이 더욱 용하지 않은가."
"성사가 되어도 걱정은 걱정인데, 아주머니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사녀 마음이 나한테로만 쏠린다면야 그까짓 계집 열 명을 버린들 아까울 거야 있겠나. 그것도 아사녀에게서 미끄러진 바람에 화풀이로 얻은 것이니."
하고 팽개는 한숨을 휘 내어쉬었다.
실상 아사달과 경쟁을 하다가 무참히 패한 팽개는 꽃거리로 달뜬 마음을 달리었었다. 지금 같이 사는 계집은 그때에 얻은 것으로 어엿한 장가처도 아니지만, 아사녀에게로 골똘히 쏟아진 마음 때문에 다른 좋은 자리가 바이 없지도 않았으되 입때까지 그럭저럭 지내 온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어떠신데 자네가 함부로 내버렸다가는 큰코다치리. 요새도 자네는 하루가 멀다고 번을 들지 않는가."
"어떡하나. 이 일이 되기 전에야 제 비위도 맞춰 줘야지. 잠깐잠깐 다녀오는 것이지만 이틀 밤만 걸려도 마구 강짜를 부리니."
"누구 계집은 안 그런 줄 아나. 그러기에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먹지를 않는다는밖에."
"정작 둘이나 되고 그러면 좋기나 하게."
"그야 떼어놓은 당상이지, 헤헤."
"사람 놀리지 말고 아사녀에게 좀 들어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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