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77

팽개는 사랑방에 번듯이 누워서 눈을 껌벅껌벅하며 무엇을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싹불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앉는다.
"어떻게 되었나."
싹불이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황황히 물었다.
"어떻게 되긴, 그야 여불없지."
하고 싹불은 싱글싱글 웃는다.
"그래 아무 의심도 않고 자네 말을 꼭 믿는 듯하던가."
"믿는 듯하기만 해, 내님의 말솜씨가 어떠마한데 제가 안 넘어가고 배기나."
"어유 장하다."
"장하다뿐이냐. 세상에 날고 기는 놈도 내님의 능청에 안 속을 장사가 없거든 고까짓 계집애의 여린 속쯤 뒤흔들어 놓기야 여반장이지."
하고 싹불은 의기양양하게 뽐낸다.
"그래, 자네 말만 들을 만하고 있고 아사녀는 아무 말도 않던가."
"말이 무슨 말인가, 그 자리에 그냥 고꾸라진걸."
"그 자리에 고꾸라지다께?"
"아사달이가 자식을 낳았다니까 대번에 폭 고꾸라지고 말데."
"자식까지 낳았다는 건 너무 과한데."
"장가만 들었다니까 어디 믿던가. 그래 얼른 자식까지 낳은 걸 보고 온 사람이 있다고 꾸며 대었지."
"원수엣놈, 능청맞게 자식 낳았다는 건 어떻게 생각이 났더람."
하고 팽개는 무릎을 탁 친다.
"딴은 말을 들여대자면 게까지 가기는 가야 될 거야."
"자네 시키는 대로 계집만 얻었다면 기연가미연가하지만 자식을 낳았다고 해야 아주 콱 믿는 것이거든."
"아사달이 그놈도 객지에서 삼 년이나 뒹굴었으니 그 흔한 서라벌 계집애 어느 눈먼 년 한 년 안 걸릴 리 없지만두 자식까지 낳았다는 건 생판 거짓말 같지 않을까."
"원 이런 사람 보게. 아니 그러면 귀인 댁에 장가들었다는 건 곧이들리겠나. 시골뜨기 석수장이 따위에게 어느 귀인 댁 따님이 미쳤다고 거들떠나 볼 것인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렇기도 하지. 아무러나 아사녀가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기만 하면 고만이니깐."
"그 말을 듣자 그 자리에 기급절사를 하였다는밖에."
"그래 고꾸라진 걸 어떡하고 나왔나. 또 음충맞게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껴안아 일으키고 수선을 피웠겠구나."
팽개는 능글능글 웃으며 농담 비슷하게 말은 하나마 그 눈에는 쌍심지가 선 듯하였다.
"그야말로 삼십리강짤세. 누가 눈독을 들이는 게라고 내가 손가락인들 대겠나."
"그러면 뒷수습은 어떻게 했단 말인가."
"뒷수습인지 앞수습인지 아주 학질을 뗐네. 누가 뒤에서 세찬 발길로 냅다 지르기나 한 듯이 코방아를 찧고 폭 엎어지며 숨도 쉬지 않네 그려. 그대로 기색이나 될 줄 알고 아주 쩔쩔매었네. 급한 마음으로는 잡아일으키고도 싶었지만 자네 강짜가 무서우니 손도 댈 수 없고."
"그 좋은 계제에 자네 같은 개잘량이가 손을 안 대고 배겨."
하고 팽개는 눈을 흡뜨다시피 하고 싹불을 노려본다.
"맙시사, 왜 또 작지놈의 신세가 되게, 헤헤."
한번 웃고 싹불은 개가 제 주인을 쳐다보듯 팽개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그래 할 수 있던가. 손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뒤제침을 잔뜩 하고…… 헤헤…… 입만 아사녀 귀에다 대고 초혼 부르듯 불렀지."
싹불은 두 손을 비끄러맨 듯이 엉덩이에 붙이고 입이 거의 방바닥에 닿도록 고개를 숙여 그때 시늉을 해보이었다.
팽개도 의심을 풀고 껄껄 웃었다. 싹불은 팽개가 웃는 바람에 더욱 신이 나서,
"아주머니 아주머니, 왜 이럽시오. 제발 정신을 좀 차립시오, 녜,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고 한동안 비대발괄을 하다시피 하니까 그제야 엎어진 채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하는 그 꾀꼬리 같은 고운 목소리가 들려 오겠지. 그러더니 바시시 몸을 일으키는데 그 상기된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도화빛이 돌고 어떻게 어여쁜지 송두리째 아삭아삭 깨물어 먹고 싶으데."
"에끼, 흉측하게. 남은 죽네 사네 하는 판인데."
"누가 죽네 사네 하게 만들었기에. 이번 일엔 상금이 후해야 되네."
"성사가 된다면야 주다뿐이냐."
"속기는 아주 쩍말없이 속았느니. 몸을 일으키는 길로 뒤도 아니 돌아보고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탁 닫아 버리데. 아사달을 바라고 기다리는 게 헛일인 줄 안 다음에야 자네 품속으로 기어들 것은 뻔한 노릇 아닌가."

무영탑 - 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