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튿날부터 팽개와 싹불은 아사녀 집의 사랑방을 치우고 들게 되었다.
장달과 웃보 사단쯤은 오히려 깨소금이요, 무참한 작지의 흉행이 또다시 생기는 날이면 한 번은 천우신조로 요행히 모면을 하였지만, 두 번째까지야 외롭고 연약한 아사녀로 다시 막아 내기 어려운 노릇이니 돌아가신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들 멀리 간 친구의 우정을 생각한들 제백사하고라도 외동따님과 젊은 아내를 극진히 두호하고 방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팽개의 발설로 아사녀에게 그런 사연을 떡먹듯이 일러 듣기었고, 당일도 또 조무래기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엿이 공포를 하였다. 우두머리 제자들이라야 장달 웃보 작지를 빼어놓고는 팽개와 싹불뿐이요, 그 중에도 우두머리 가는 팽개의 처단하는 일이니 어느 뉘 하나 감히 반대들을 못 하였다.
딴은 그런 고약하고 흉측한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바에야 밤낮으로 파수 보는 사람 하나 둘은 있기도 있어야만 할 일이었다.
"스승의 뼈가 아직 썩지를 않고 아사달이 서라벌에 눈이 등잔같이 살아 있거늘 이런 변괴가 어디 또 있단 말이오. 아무리 말세가 되었기로 그런 인륜도 모르고 스승의 은혜도 모르는 죽여도 죄가 남을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이오."
팽개가 눈물과 소리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며 한바탕 늘어놓을 제 어린 제자들 중에는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작지의 소행에 이를 갈아붙이는 이도 있었다.
아사녀도 팽개와 싹불이가 이젠 노박이로 와 있다는 말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날 밤에 작지가 팽개와 싹불에게 얻어맞으면서 끝까지 발악을 하던 말을 아사녀가 아니 들은 것도 아니었다. 어찌하면 '그놈이 그놈이다' 하는 의심이 그의 놀란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하지마는 뒤미처,
'아니다, 아니다. 그이는 그럴 이가 아니다. 만 사람을 다 못 믿어도 그이만은 믿어도 좋다.'
이날 이때까지 팽개의 행동을 되삶고 곱삶아 보아도 그런 사색조차 채인 일이 없다.
다른 제자들은 입정도 마구잡이요, 음담패설을 함부로 늘어놓는다. 적이 염양이 있는 위인도 입으로는 딴청을 부려도 자기를 보는 그 눈에는 음탕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 중에 점잖다는 장달이 그러하였고 살살 웃음으로 발라맞추는 웃보가 그러하였다. 더구나 없는 정도 있는 듯이 척척 부닐고 추근추근하게 수작을 붙여 보려고 곱들이 끼이었다.
그러나 팽개는 언제든지 제 할 말만 하면 고만이요, 한번 자기를 바로 보는 눈길조차 보지 못하였다. 지그시 아래로 내려감든지 그렇지 않으면 딴 데를 보았지 다른 제자들처럼 낯이 간지럽도록 맞대해 바라보는 법도 없었다.
그런 이가 그런 나쁜 심정을 가졌다고 생각만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어 미안한 일이다, 은혜를 모르는 일이다, 하늘이 무서운 일이다.
작지가 악풀이로 휘동대동 함부로 팽개를 먹어 댄 데 지나지 않는다.
'그이가 그럴 리야, 그 어른이 그럴 리야.'
속으로 뇌고 또 뇌며 아사녀는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작지에게 워낙 혼이 몹시 난 터이라, 아무리 팽개를 믿지마는 밤이 되면 방문을 꼭꼭 닫아거는 것을 아사녀는 잊지 않았다.
인제 그는 아사달이가 돌아오기를 그리 몹시 기다리지도 않는다. 오지도 않는 남편을 까닭 없이 오려니 달뜬 생각을 하였다가 그런 몹쓸 변을 당하지 않았는가. 애닯은 그리운 정이 드는 것도 인제 이에 쓴물이 난다. 정말 아사달이가 왔다 해도 밤에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맹서하였다.
그런 끔찍한 일이 골똘한 제 생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줄이야, 아사달이 꿈에도 모를 노릇이로되 어쩐지 요새 와서는 남편이 야속하고 무심한 것만 같다.
아무리 부여와 서라벌이 멀다 한들 어찌 편지 한 장이 없을까. 삼 년이나 길고 긴 동안에 설마 인편 한 번을 못 얻을까.
'서라벌에는 아름다운 여편네도 많다는데!'
언뜻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아사녀는 안절부절을 못 하였다. 믿고 믿는 남편이지만 '혹시나' 하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독사와 같이 그 부드러운 창자를 물어뜯었다.
팽개와 싹불이가 사랑에 와서 지킨 지도 어느덧 달포가 넘었다.
아사녀의 어림짐작이 그대로 들어맞아 싹불은 더러 안에 드나들었지만 팽개는 이렇다할 볼일이 없고는 결코 안에를 들어오지 않았다.
아사녀가 정 심심하면 도리어 사랑으로 놀러를 나갈 지경이었다.
하루는 싹불이가 안에 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으며,
"아주머니, 난 오늘 서라벌 소식을 들었어요."
무두무미하게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