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74

인기척이 나자 흉한의 손짓은 더욱 황급해졌다. 헤치던 옷자락을 인제 마구 찢어 제친다.
그러나 뜻밖의 사람 소리에 새 기운을 얻은 아사녀가 모질음을 쓰는 바람에 한 손에 겸쳐 쥐었던 두 손목을 놓치고 말았다.
추근추근하고 미련한 흉한도 그제야 만사가 틀린 줄 깨달은 모양이었다.
"엑, 에잇!"
혀를 한번 차고 꼬았던 다리를 풀고 달아날 문을 찾았으나 그 손길이 채 문에 닿기 전에 바깥에서 먼저 문을 열어 젖뜨렸다.
흉한의 코빼기를 지질 듯이 횃불을 들이대고 들어오는 사람은 팽개와 싹불이었다.
"이놈 작지야."
팽개는 흉한을 보고 호통을 쳤다. 흉한은 허리끈을 끄른 탓에 고이춤이 훨렁 벗겨져 내려가는 것을 두 손으로 잔뜩 쥔 채 핏발 선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 생각지 않은 방해자들을 노려본다.
이런 경우에도 찬찬한 팽개는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들어와 횃불로 먼저 초에 불을 다리고 아사녀 곁으로 와서 우선 아갈잡이한 것부터 끌러 놓았다.
풀어헤쳐진 젖가슴에는 사나운 손자국이 지나간 자취가 불긋불긋 여기저기 꽃잎을 그리고 짚수세미 다된 아래옷이 그나마 갈기갈기 찢어져 눈덩이 같은 허벅지가 반나마 드러났다. 깨문 입술에는 피가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아주머니!"
팽개는 어색한 듯이 한마디 부르짖었다.
아사녀는 긴장했던 마음이 일시에 풀리자 정신조차 잃어버린 듯 눈까지 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늘어졌는데 쌔근쌔근하는 가쁜 숨길만 지나간 모진 싸움의 벅차고 괴롭던 것을 알리는 듯하다.
"아주머니!"
팽개가 또 한번 부르짖자 그 은행껍질 같은 눈시울이 살짝 열리다가 제 꼴이 너무 사나운 것을 알아차렸던지 옳게 깔아 놓지도 못한 이불자락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돌아누워 버린다. 팽개는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작지에게로 고개를 돌리었다.
작지는 팽개가 아사녀의 곁으로 간 틈을 타서 몸을 빼치려 하였으나 싹불이가 문을 막아서서 있기 때문에 달아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숨만 헐레벌떡거린다.
"이놈,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이게 무슨 짓이냐."
팽개는 어느 틈에 작지 옆에 와서 섰다.
작지는 맹렬한 기세로 돌아서며,
"네놈은 그게 무슨 짓인지 입때 모르느냐. 네놈은 왜 아닌밤중에 남의 홀아씨 자는 방엘 들어왔느냐."
하고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도리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이놈이 별안간에 환장을 했나. 이놈아, 내가 네놈 모양으로 혼자 왔느냐."
팽개는 적반하장격으로 대어드는 작지의 기세에 적이 서먹서먹해졌다.
"이놈아, 둘이만 다니면 고만이냐. 싹불이는 네놈의 병정. 싹불이 같은 놈 열 놈을 데리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네놈이 눈 한 번만 껌적하면 언제든지 꽁무니를 뺄 놈인데……."
"이놈을, 이놈을."
하고 싹불은 펄쩍 뛰며 작지의 뺨을 냅다 갈기었다.
"오냐, 너희놈은 두 놈이고 나는 혼자다. 실컷 때려라, 때려. 이놈 싹불아, 너도 사람의 외양을 갖춘 놈이 그래 쌀됫박이나 얻어먹는다고 친구 여편네 호려 내는 데 병정이나 서고 다닌단 말이냐."
"이놈이, 이놈이."
싹불은 치를 떨며 작지의 멱살을 잡아 끈다.
"이놈 이리 나오너라, 마루로 나오너라."
"나가마, 염려 마라. 너희놈들이 헤살을 논 다음에야 내가 아사녀 방에 만년을 있으면 뭘 하느냐."
후당퉁당 두 놈은 마루에서 엎치락뒤치락하였다.
팽개도 평일의 점잔빼던 것은 어디로 갔는지 덤벼들어 늘신하게 작지를 후려갈겼다.
"이런 놈은 죽여 버려야."
싹불은 작지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어규, 어규, 사람 죽네. 이놈들이 사람 죽이네. 이놈들아, 웃보와 장달도 발을 끊었고, 나도 내일부터는 이 문전에 얼씬을 않을 테니 너희 두 놈이 아사녀를 볶아먹든지 삶아먹든지 마음대로 뜻대로 하려무나. 왜 이놈들아, 너무 좋게 되어서 사람을 죽이려 드느냐."
"이놈이 그래도 아가리를 함부로 놀려."
"그놈을 아갈잽이를 해라. 저 방에 끌러 놓은 제 벙거지와 제 허리끈으로 우리 아주머니 원수를 갚자."
"흥, 우리 아주머니! 이놈 팽개야, 이 음흉한 놈아, 낫살이나 먹은 놈이 어디 계집이 없어서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행투를 내려 드느냐. 아서라, 아서."
작지는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노상 입정을 놀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