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우, 흥, 누가 죽이느냐."
검은 그림자는 씨근씨근 짐승 같은 숨길을 자빠진 아사녀에게 내뿜으며 덤벼들었다.
"애구 죽겠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천근이나 되는 듯한 사내의 몸뚱어리가 무겁게 엎누르는 것을 떠다박지르며 아사녀는 바락바락 악쓰기를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악지가 무슨 악지냐."
검은 그림자는 버둥거리는 아사녀의 두 손목을 한 손에 겸쳐 잡으려고 곱이 끼었다가 소리치는 입부터 틀어막으려 들었다.
밑에 깔린 이가 고개를 사납게 뒤흔들기도 하였거니와, 어둠 속이라 누르고 있는 놈의 손은 허청만 짚고 얼른 입을 찾을 수 없었다.
"사, 사람 살려."
쇠된 소리는 연거푸 밤공기를 찢었다.
검은 그림자는 할 수 없이 깔아 붙였던 몸뚱이를 웅크리며 두 손으로 아사녀의 입을 움키려 하였다.
그 서슬에 아사녀는 잽싸게 몸을 빼쳐 화다닥 일어나며 젖 먹던 힘을 다 들여 대드는 검은 그림자를 뿌리쳤다.
"도적이야, 도적이야."
소리소리 지르며 아사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려 하였건만 문은 손쉽게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쇠깍지 같은 팔뚝은 아사녀의 가는 허리를 휘청하도록 부둥키고 말았다.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팔꿈치로 잡힌 이의 겨드랑이를 치슬러 버통개를 지르며 억센 손은 더듬어 올라와 아사녀의 코와 입을 얼싸 틀어막는다.
"끙, 끙."
아사녀는 인제 소리는커녕 숨도 옳게 못 쉬고 안간힘만 쓰며 몸부림을 쳤으나 마치 독수리의 발에 채인 참새가 팔딱거리는 데 지나지 못하였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그 흉측한 팔뚝과 손아귀에는 더욱 무서운 힘이 오르며 잡힌 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다.
"내가 매친 년이야, 매친 년이야."
경황없는 가운데에도 아사녀는 제가 저를 꾸짖었다.
천리 밖에 있는 남편이 어떻게 오리라고 그 걸신을 하였던고. 하마하마 들이닥칠 줄을 어찌 어림없이 믿었던고. 다른 날 다른 밤을 다 내놓고 하필 이 끔찍한 오늘 밤에 그가 돌아온다 생각하였던고.
아무리 잠결인들 이 흉한 놈이 울타리 뜯는 것을 번연히 듣고도 그냥 내버려두다니. 그 흉물스런 발자취를 아사달님의 기척으로 반기다니.
어림없이 마음이 달뜬 탓에 이런 욕을 볼 줄이야.
이 짐승 같은 놈을 남편으로 그릇 알아본 이 눈을 빼고 싶다. 이 흉측한 놈을 아사달님이라고 부른 입술을 뜯고 싶다. 그 더러운 몸뚱어리를 얼싸안은 이 팔뚝을 잘라 버리고 싶다…….
아사녀는 이젠 팔딱거리는 기력조차 풀려지는 것을 느끼었다.
제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용을 쓰는 순간, 그 흉한도 대항거리로 우쩍 기운을 내어 아사녀를 팔랑개비같이 쓰러뜨렸다.
아까 한번 놓친 데 혼이 났던지 흉한은 쓰러진 이의 가슴을 무릎으로 잔뜩 깔아 용신을 못 하게 하고 한 손으론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제 벙거지를 벗었다.
벙거지를 뚤뚤 말아 아사녀의 복장과 제 무릎 밑에 끼우고 나서 다시 제 허리끈을 끌렀다.
그리고 다시 제 벙거지를 빼내어 도레질하는 아사녀의 입을 아갈잡이를 하고 허리끈으로 친친 동여맨다.
"이래도 소리를 지를까, 씩."
흉한은 코웃음을 치고 발버둥치는 아사녀의 두 다리를 제 두 무릎 사이에 끼워 누르며 이번에야말로 맥이 풀린 아사녀의 두 손목을 한 손에 휘잡게 되었다.
"인제도, 인제도, 흥, 흥."
아사녀는 무엇보담도 그 흉한의 웃는 소리에 소름이 끼치었다.
놈의 말마따나 인제 아무리 앙탈을 해도 헤어날 길이 없다.
"죽여라, 죽여!"
아사녀는 울대에 피를 끓여 올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개도 제 주인으로 속았는지 짖지도 않는다.
그때였다. 뒤꼍에서 두런두런하는 인기척이 아드막해진 아사녀의 귀에도 들려 왔다.
"그놈이 여기를 뜯고 들어갔네그려."
"원 죽일 놈 같으니."
죽은 듯이 아무 소리가 없던 삽사리가 이제야 어디서 내닫는지 캥캥 하며 오르르 뛰어나온다.
별안간 방문이 환해지며 횃불을 들고 오는 듯한 발자취가 벌써 우둥우둥 마루에서 났다.



